청동대불과 벚꽃으로 유명한 각원사[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천안시 편
  • ▲ 태조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청동대불과 벚꽃.ⓒ진경수 산 해호가
    ▲ 태조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청동대불과 벚꽃.ⓒ진경수 산 해호가
    줄기차게 내려온 백두대간이 용틀임해 속리산에서 분기 서진하여 금북정맥을 만들고 돌연 남쪽으로 머리를 돌려 힘을 모아 일으킨 산이 태조산(太祖山, 해발 421m)이다.

    이 산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과 목천읍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으며, 나지막하고 완만한 산세로 천안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는 천안의 진산(鎭山)이다.

    산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판단하고 군사를 양병하고 상주케 함으로써 태조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전한다.

    이 산기슭에는 천안 8경 가운데 하나인 각원사가 있는데, 국내 최대 청동대불 아미타불상(높이 15m, 무게 60톤)과 전국적인 아름다운 벚꽃 명소로서 전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태조산도 더불어 각지에서 산객들이 찾게 됐다.
  • ▲ 연두빛 새순을 돋기 시작한 느티나무.ⓒ진경수 山 애호가
    ▲ 연두빛 새순을 돋기 시작한 느티나무.ⓒ진경수 山 애호가
    태조산 산행의 들머리는 태조산공원, 성불사, 각원사, 백석대학교생활관 등 네 곳이 있다. 이번 여정은 그중에서 산행 거리도 가장 길고 그 유명한 벚꽃도 구경할 겸 각원사주차장(동남구 각원사길 181)에서 시작한다.

    아침 일찌감치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말에다 날씨도 맑고 따스하여 그간 개화를 미룬 벚꽃이 활짝 피어오를 것 같고,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그 모습을 눈과 가슴에 담기 위해 몰려들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언덕길을 내려와 각원사길에 닿자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느티나무가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연두빛 새순을 돋아낸다. 마침 아침 햇살을 받으니, 온통 황금색으로 장엄하게 치장한 듯하다.

    큰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가를 지나 힘차게 솟아오르는 봄날의 희망찬 햇살을 받으며 비탈진 길을 오른다. 그 길 위엔 오색찬란한 연등과 부드러운 태조산 능선을 품에 안고 있는 연화지가 있다.
  • ▲ 오색찬란한 연등과 태조산을 품에 안은 연화지.ⓒ진경수 山 애호가
    ▲ 오색찬란한 연등과 태조산을 품에 안은 연화지.ⓒ진경수 山 애호가
    연화지 둘레에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연화지 옆으로 드물게 자리한 벚나무에는 산객의 방문을 환영이라도 하는 듯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눈부시게 밝은 빛깔과 자태에 모든 시름이 단박에 사라진다.

    연화지에서 길을 따라 쭉 오르면 산문이나 일주문을 통과하지 않고 곧바로 각원사(覺願寺) 경내로 들어선다. 그러나 영통향각 건물 옆의 무량공덕계단(無量功德階段)을 오르면 대조산 영봉에 모셔진 청동대불을 친견하게 된다.

    108계단을 오르면서 온갖 번민과 고통을 여의고, 48계단을 오르면서 아미타불의 서원을 되새기며, 32계단을 오르면서 온 인류가 행복하기를 관세음보살께 기원하고, 32계단을 오르면서 인연법을 이해하며, 3계단을 오르면서 불법승에 귀의한다.

    얼마 전 “나답게 사는 행복(진경수, 좋은땅출판사)”이란 책을 출간하고 몇 년 동안 앓지 않던 몸살이 나서 산행을 하지 못했다. 글을 적어갈 때는 그저 행복했으나 막상 독자들을 만나려니 바짝 긴장이 됐었나 보다. 
  • ▲ 청동대불의 벚나무 군락지에서 바라본 각원사의 전각들.ⓒ진경수 山 애호가
    ▲ 청동대불의 벚나무 군락지에서 바라본 각원사의 전각들.ⓒ진경수 山 애호가
    이젠 인연을 따라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리라 여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행을 한다. 이렇게 203계단을 오르니 보송하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둥근 화단을 돌아가니 아미타부처님께 꽃 공양을 하듯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우리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 기도 도량을 창건할 것을 발원한 법인(法印)스님과 재일동포 각연거사 김영조(金永祚)의 시주를 중심으로 많은 사부대중의 성금으로 1977년 각원사가 창건됐다.

    창건 오십여 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각원사는 이젠 태조산 서북쪽 산기슭에 자리한 고려시대 사찰인 성불사와 더불어 천안 시민의 힐링과 휴식공간이자 어엿한 천안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연꽃 모양의 크고 작은 77개의 봉우리로 형성된 대좌에 앉아 계신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한다. 일체중생을 모든 고통에서 건져내시는 대자대비하신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온화한 눈빛은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다.
  • ▲ 산길 초입의 숲의 탄생길.ⓒ진경수 山 애호가
    ▲ 산길 초입의 숲의 탄생길.ⓒ진경수 山 애호가
    청동대불에서 각원사 전각을 내려다보니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과 같이 들려오는 풍경 소리가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더한다. 그런가 하면 만개한 벚꽃 향연에 흥건히 젖어 들어 이곳을 찾는 이들과 함께 즐기니 더더욱 산행한다는 걸 잊는다.

    청동대불 뒤편에서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계단 직전에 이정표가 없는 평탄한 산속 길로 들어선다. 작은 새순의 등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이제 너의 세상이라고 너의 꿈을 펼치라고 용기를 던져주는 듯하다.

    양 길가로 크고 작은 돌탑들이 예사롭게 보이지만 옹골찬 모습에 담긴 정신과 혼은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산길 초입은 온순하게 시작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은 허리를 펴기 시작한다. 언제 그랬느냐고 말할 정도로 거칠고 험한 돌길이 이어진다.

    흑백의 농담으로 아름다움을 지키던 산은 조잘대며 흐르는 계곡이 주는 물을 잔뜩 머금고 연두빛 새순을 돋아낸다. 그 생명에 에너지를 더하는 따스한 봄빛, 그 탄생을 축복하듯 노래하는 새소리가 지난 일에 집착하지 말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며, 그저 지금 행복에 충실하라 말을 건네는 듯하다.
  • ▲ 매애관음보살상이 있는 암벽.ⓒ진경수 山 애호가
    ▲ 매애관음보살상이 있는 암벽.ⓒ진경수 山 애호가
    돌길 산행이 시작되자마자 계곡에 걸터앉아 있는 커다란 바위를 기단 삼아 세워진 오층석탑과 마주한다. 이 탑은 각원사를 바라보고 있다. 이어 크고 작은 돌탑이 이어지다가 괘나 큰 높이로 정성스럽게 쌓은 두 개의 돌탑 사이를 지나 구불구불 가파른 돌길을 계속 오른다.

    다시 만난 큰 바위 위엔 어김없이 각원사를 바라보는 작은 불상이 자리를 지키고, 이어서 돌탑 비탈이라 불려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수많은 돌탑 구간을 지나고 또 만나기를 반복한다. 이어 급하게 허리를 세운 바윗길을 밧줄에 의지해 오른다.

    병풍처럼 펼쳐진 거대한 바위가 갈 길을 막아선다. 이곳이 태조산 각원사 관음도량이다. 바위 양쪽에는 호법신들이, 바위 아래 샘물 옆 암벽에는 관음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좌측 호법신과 관음보살상 사이의 깊숙한 바위틈 위쪽에 산신이 모셔져 있다.

    관음보살상을 조각하기로 한 석공이 꿈속에서 호랑이에게 허리를 물린 꿈을 꾼 후 거동조차 힘들게 됐다. 그러자 각원사 스님이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석공이 쾌차하여 이 마애관음보살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 ▲ 진달래꽃이 피어난 태조산 능선길.ⓒ진경수 山 애호가
    ▲ 진달래꽃이 피어난 태조산 능선길.ⓒ진경수 山 애호가
    이 매애관음보살상 앞에 서면 ‘하늘 아래 편안한 마을’인 천안(天安) 시내가 조망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평탄한 길을 돌아가면 작은 석굴을 지난다. 이제부터 다시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급경사의 거친 길을 오른다.

    오백 미터가 채 안 되는 작은 산이라고 우습게 봤다간 그야말로 큰코다칠 수 있는 코스다. 그러나 힘든 산행에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산비탈 여기저기에 피어난 진달래의 연분홍 물결이다.

    발길을 멈추고 들여다보니 새색시 볼처럼 부드럽고 얇은 꽃잎, 속눈썹처럼 치켜세운 암·수술이 수십 년 전 결혼 당시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니 그야말로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이 꽃은 내년 이맘때면 다시 피겠지만, 떠나간 아리따운 색시와 나의 모습은….

    그래서 찬찬히 남은 구간을 오르면서 지금 ‘나답게 사는 행복’의 이야기를 엮어간다. 드디어 능선에 닿았다, 이 코스로 내려가는 이정표는 없고, ‘관음전’이라 쓴 바위가 전부다. 태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부드러운 흙산이고, 소나무 숲길이다.
  • ▲ 태조산 능선길에서 바라본 성거산.ⓒ진경수 山 애호가
    ▲ 태조산 능선길에서 바라본 성거산.ⓒ진경수 山 애호가
    소나무 숲 아래 완만한 산책길을 여유롭게 걷는다. 잔잔한 물결을 타듯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길옆으로 앙상한 가지에 곱디고운 연분홍빛 몸짓이 산객을 시인으로 변화시킨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온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쉼터와 체육공원을 지날 때면 만나는 태조 왕건의 스토리텔링 시리즈가 지루함을 달래 줄 뿐 아니라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이처럼 세심한 작은 배려가 비록 한꺼번에 대변혁이나 혁신이 이뤄지지 않겠지만 서서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수종개량 구간을 지날 때면 좌측으로 성거산이 조망된다. 얼마나 걸었을까 지금까지의 오름보다 긴 계단을 오르는 걸 보니 태조산 정상이 지척이다. 펜스를 따라 오르니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팔각정이 세워진 태조산 정상에 닿는다.

  • ▲ 태조산 정상의 팔각정.ⓒ진경수 山 애호가
    ▲ 태조산 정상의 팔각정.ⓒ진경수 山 애호가
    시간이 정오로 다가갈수록 산객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다. 팔각정에 올라 천안 시내를 조망하고 다시 각원사 갈림길로 되돌아간다. 올 때 보지 못한 것들, 느끼지 못한 것들을 찬찬히 여유롭게 걸으면서 찾아보고 느껴본다.

    길옆에 숨어서 피어난 남산제비꽃을 발견한다. 오며 가며 산객에게 건넨 인사말에 응답하는 이가 열에 한 명이라는 건, 어쩜 우리네 삶이 팍팍하고 불안하여 경계심을 보인 탓일까? 밝은 나눔과 진정한 관심은 우리네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 산을 찾았지만 어쩌다 속세의 삶을 돌아다보니 어느새 각원사 갈림길에 다 달았다. 여기서 그냥 하산하기 아쉬워 0.2km 떨어진 성거산·상명대 갈림길까지 다녀온다. 마음 같아서는 성거산을 다녀오고 싶지만….

    하산길은 급경사의 거친 돌길이라 차근차근 조심해서 내려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돌탑 정원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정겨운 물소리, 새소리, 풍경 소리가 들리고, 벚꽃과 은은한 향불 향기가 퍼져나오는 각원사 경내로 들어선다.
  • ▲ 천불전 앞에 흐드러지게 핀 수양홍겹벚꽃.ⓒ진경수 山 애호가
    ▲ 천불전 앞에 흐드러지게 핀 수양홍겹벚꽃.ⓒ진경수 山 애호가
    청동대불 아미타불 뒤태가 참으로 온화하다. 오전에 둘러보지 못한 각원사 경내와 아름다운 꽃들을 차근차근 감상하기로 한다. 칠성전 뒤편 옹벽 위로 홍겹 벚꽃과 노란 개나리, 그리고 푸른 소나무와 단청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정원을 연출한다.

    대웅전을 지나 천불전과 산신전 앞에는 수양홍엽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불전을 돌아 내려오자 수양홍엽벚꽃과 개나리가 마치 아름다운 선녀들의 춤을 보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대웅전 앞마당 오색찬란한 연등 빛깔이 꽃향기를 더한다. 관음전 앞에는 하얀 벚꽃이 뽀얀 얼굴로 탐스럽게 미소를 띠고 있다. 범종각을 내려오면 그 옆으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목련꽃이 시간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각연사 약수터에서 물 한 대접을 마시며 떠나는 아쉬움을 달랜다. 하산길 역시 울긋불긋한 봄꽃으로 가득하지만, 길을 가득 메운 차들이 아름다운 경치에 티가 된다. 오늘의 꽃향기와 진리의 향기로 더 활기찬 내일의 삶을 기약하며 산행을 갈무리한다.

    이번 산행은 ‘각원사주차장-연화지-청동대불-마애관음불상-태조산 정상-성거산 갈림길-각원사-연화지-각원사주차장’ 약7.8㎞의 원점회귀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