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삼키고, 추억을 씹으며, 추억을 달랜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예비고사 보기 수일 전, 작은 불꽃이 바람 타고 날아와 쫄보 가슴에 달라붙었다. 불꽃은 이내 뜨거운 불이 되었다. 주성중학교 벤치 위에 파란색 손수건을 펴주던, 공단 오거리 가는 버스에 올라타던, ‘청원제과’에서 단팥빵과 소보로빵을 마주하던, 추운 겨울날 충북은행 앞에서 ’올리비아 핫세‘ 판넬 사진을 들고 기다리던, 무작정 물레방아 룸살롱으로 쳐들어가던, 남주동 송죽여인숙(훗날 일배집)에서 긴 밤을 지새우던 바람이 잦아들길 기다렸지만 여전하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자신했건만 쫄보는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어리석은 탓이었을까? 여전히 ‘또라이(미친놈) 불변의 법칙’을 고수하고 있다. 바람 때문에 불은 더 강하게 활활 타올랐다. 

    ​‘혼란의 시대, 혼돈의 시대’가 점차 노골화되던 암울한 시대를 경험했다. 피 끓는 대학생들은 ‘학우여 가자’ 구호를 외치며 민정당사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간다. 12월 12일과 5월 17일 이후 일당독재 체제를 제도화해버린 군부세력과 군사정당은 즉각 물러가라는 ‘꼬장(시위)’이었다. 이도 잠시 새벽닭이 울기 전 학생들은 모두 순사한테 연행되었다. 각개전투를 배운 예비역은 비겁하게 눈을 가렸다. 겁이 났다. 1984년이 피 묻은 석양에 기대 물 들어가고 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쫄보는 모른 채 물러서기 위해 사촌 동생이 운영하던 청주시 수곡동 49-34 대원석유(석유 부판 점)에서 무면허로 기름 배달을 시작했다. 화물칸을 내리고 ‘투바이 오비끼’ 두 개를 걸친 후 드럼통을 굴려서 싣는다. 1t 봉고차에는 11 드럼이 실리고, 1t 세렉스에는 9드럼이 실린다. 조심조심 운전해야 한다. 드럼통에 들어있는 기름이 출렁거리기라도 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핸들이 돌아가고 꼬라박는다. 고꾸라진다. 배달부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기아 마스터 1t 봉고 화물차가 선연하게 그려진다. 

    ​석유 20말을 실었다. 청주농협 본점(구법원 사거리 현재 대원칸타빌아파트), 석교동분소, 남주동분소, 모충동분소, 신봉동창고 히터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땀이 난다. 경리는 거금 5000원짜리 수동식 금전등록기를 열면서 대뜸 지른다. “서울 세검정이라고 하면서 찾는 전화가 왔었어요.” “서울에서? 이름이 뭐라고 하던가요?” “황금란 씨라고 했어요.” “누구?” 화들짝 놀랐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1623년 광해군을 폐위시킨 후 인조를 왕위에 앉힌다. 인조반정을 계획하면서 이귀, 김귀 거사 동지 둘이서 칼을 씻은 바위가 곧추세워져 있다. 세검정 삼거리를 가기 위해서 봉고 화물차 시동을 건다. 경복궁에서부터 넘어야 하는 자하문터널, 불광동에서 구불구불 넘어가는 구기터널, 정릉동에서 넘어야 할 반듯한 북악터널이 가로막아 선다. 금란이가 있을 만한 업소를 죄다 뒤졌다. 헛물켰다. 분명 세검정이라며 전화를 했다고 했지만, 기생이 출몰하는 업소였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물레방아 룸살롱 전력을 두고 지레짐작해 버린 쫄보의 큰 실책이었다.  

    ​나비는 종적을 감췄다. 더 이상 나비를 잡고 싶어 안달복달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바람 타고 나부끼던 나비의 날갯짓이 눈앞에 아른거려 쉬 잊을 수가 없다. 정작 나비의 몽타주 한 장 없이 쫄보의 상상만으로 그려본다. 나비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쫄보는 석유배달을 하면서 없는 반쪽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 둘을 키우며 살가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났다. 여느 시골집 대청마루에 누워 처마 밑을 본다. 분주하다. 닥치는 대로 물어 나른다. 지지배배 노란 부리 ‘쪽새’가 기억에만 의존해 집을 짓고 있다. 어미 새가 가르쳐 주거나 어미 새에게 배운 적도 없이 타고난 유전자 더하기 기억만으로 집을 짓는다. 놀랍다. 토담집을 들락이며 작은 나뭇가지, 버려진 전선, 제초기에 잘린 마른풀, 끊긴 연줄, 심지어 담배꽁초까지 물어 나른다. 이윽고 집이 완성된다. 어둑어둑 밤이 다가온다. “문밖에는 귀뚜라미 울고 산새들 지저귀는데 / 내 임은 오시지는 않고 어둠만이 짙어가네! / 언제 님은 오시려나 바람만 휭하니 부네 / 내 님은 바람이련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피구로 내려찍는 통기타 선율에 더해 가수 김범룡이 목청을 세워 노랠 부른다. 바람바람바람 갈바람이 분다.
  • ▲ 2003년 메모지에 기록된 황금란 관련 자료.ⓒ이재룡 칼럼니스트
    ▲ 2003년 메모지에 기록된 황금란 관련 자료.ⓒ이재룡 칼럼니스트
    충주시청 기자실에서 주재 기자들과 만담이 오간다. 친구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철문 벙커를 열고 입사했다. 김대중 정부는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을 세우고 음지를 솎아내 양지로 나오게 했다. “인호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이는 우리보다 서너 살 아래인 것 같다. 황금란, 어디 사는지 알아봐 주면 좋겠다.”, “기다려봐” 탁탁탁 타자인지 컴퓨터인지 뭔가를 한참 동안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성남시  은행동 주공아파트에 산다.” 교차 검증이 필요했다. 

    2003년 2월 22일 오후 2시 50분 청주동부경찰서로 잠입하여 김대용 ‘동상(동생)’을 겁박하여 컴퓨터를 열었다. 황금란 ‘640828-2××××××’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550 주공아파트 10×동 ××××호 틀림없다. 

    다음 날 2월 23일 오후 2시 50분. 쫄보가 타던 애마 카스타(서울 52무 9552)를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 월현 마을 산날망 은영이네 집 가는 샛길에 세워두고 황 씨네 집을 내려다 본다. 우수가 지나서인지 금란이네 집 건너편 개울에는 봄기운 가득하게 파릇한 물이 흐른다. 흔적이라도 찾을 요량이었다. 

    ​2003년 3월 1일. 오후 6시 50분. 쫄보는 성남 검단산 아래 은행동 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서 10×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행여나 이 길로 걸어가는 금란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한 시간여 동안 길을 지켰지만, 나비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쫄보 마음속에 잠긴 환영은 늘 펄럭이던 하얀 나비였다. 밤이 어둑해지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인호야, 집은 찾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도와다오. 전화번호를 알아낼 방도가 없겠니?”

    ​“여보세요? 혹시 황금란 씨 아니세요?” “…제 이름을… 누구시죠?” “청주에 사는 쫄보라고 합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성남 은행동 주공아파트에 왔습니다.” “어머나…집에 있는데… 잠시 기다리시면 옷 갈아입고 나갈게요.”

    ​2003년 8월 7일. 오후 2시 50분. 지글지글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날 성남시 은행동 아주 널찍한 신작로 2층 ‘마인 카페’에서 실로 20년도 더 훌쩍 지나서야 ‘올리비아 핫세’를 만났다. 아… 마음이 가슴이 무겁게 저려온다. 

    ​쫄보에게 있어서만큼은 황금란은 ‘다은이고 단미’였다. 

    ​2024년 4월 1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봐 이 밤 지나면 나의 가슴에 이별을 두고 떠나버린 사람아. 이재룡 넘(너무) 보고싶어 추억을 삼키며, 추억을 씹으며, 추억을 달래며 가슴 시리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