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의병 오덕홍·김일언·정래의 등 ‘6월의 독립운동가 전시회’
  • ▲ 일본군에 붙잡힌 의병들.ⓒ독립기념관
    ▲ 일본군에 붙잡힌 의병들.ⓒ독립기념관
    일제 강점기 일본군을 척결하기 위해 기습 공격·매복작전을 수행한 의병장을 사진으로 다시 볼 수 있다.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오덕홍, 김일언, 정래의 선생을 2023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이달 한 달간 전시한다고 4일 밝혔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이달까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1909년 호남 의병장들의 모습, 산남의진의 4차 결성지 거동사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오덕홍, 김일언, 정래의는 전라·경상도에서 결성된 호남 의병과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해 일본군의 탄압에 지속적으로 항쟁했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1885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오덕홍은 1909년 일제의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으로 호남 의병의 세력이 위축되자 나주에서 독자적으로 의병을 결성했다. 

    그는 30여 명의 유격부대를 이끌고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거나 밀고 행위자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09년 9월 23일 나주군 아계면 일동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일언은 1907년 4월 산남의진의 우포장(右砲將)으로 선임돼 일본군과의 교전 과정에서 활약했다. 그는 산남의진이 8월 18일 경북 청하군 죽장면에서 일본군과 교전할 당시 일본군 척후병(斥候兵) 1명을 사살했고, 8월 24일에는 일본군 영천수비대 1명을 처단했다. 

    같은 달 29일 입암전투에서 김일언은 조암으로 이동해 매복하는 등 작전을 수행했지만, 교전 끝에 정용기 의병장을 비롯한 산남의진의 주요 병력이 전사했다. 

    이후 김일언은 산남의진의 3대 의병장 최세윤(崔世允)을 보필해 소규모 유격전을 전개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10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정래의는 187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산남의진의 우익장(右翼將)으로 선임돼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정환직, 최세윤 의병장 아래에서는 좌익장, 참모장으로 임명돼 경북 흥해·영해·청하군 등지에서 활동했다. 

    정래의는 1908년 8월 산남의진이 해산된 이후에도 산남의진 생존자 모임인 참동계(參同稧)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밀정의 밀고로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다가 1927년 10월 기소중지로 풀려났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22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