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성지서 하흑공소까지 17.7㎞ 3시간… 순교자 발자취 따라 걷는 길“봄엔 개구리소리·모내기철엔 물위 걷는 느낌·밤엔 달빛‧별빛도 함께 걸어”솔뫼성지 곧게 뻗은 소나무가 없는 것은 순교현장을 보며 고통스럽게 굽어 오른 ‘탓’오랏줄에 굴비 묶 듯 묶인채 끌려간 순교자 부조에 새긴 ‘상흔’ 마음 저려
  • ▲ 대한민국 산티아고로 불리는 충남 당진 버그내순례길은 솔뫼성지 정문에서 출발, 합덕성당~합덕제 중수비~원시장‧원시보 우물~무명 순교자의 묘~신리성지~거더리공소~세거리공소~하흑공소 구간 13.3km 구간이다. 사진은 솔뫼성지 앞 버그내순례길 출발지.ⓒ김정원 기자
    ▲ 대한민국 산티아고로 불리는 충남 당진 버그내순례길은 솔뫼성지 정문에서 출발, 합덕성당~합덕제 중수비~원시장‧원시보 우물~무명 순교자의 묘~신리성지~거더리공소~세거리공소~하흑공소 구간 13.3km 구간이다. 사진은 솔뫼성지 앞 버그내순례길 출발지.ⓒ김정원 기자
    사람들은 왜 끝도 없이 길을 걸어갈까? 

    그 해답은 “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이 행복하고, 걷는 사람보다 자기 집 문 앞에 앉아 지나가는 순례자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 하는 것을 보았다”(이홍식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칠레 산티아고 순례길, 잉카 트레일, 파타고니아, 제주 올레길 등을 걸으며 ‘동적 명상’을 강조한 이 교수가 걷기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걷기는 나를 위로하는 숭고한 행위’라는 말로 귀결된다.

    길을 걷는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고 ‘마음’을 강건하게 키우며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숭고한 행위다. 특히 나와 대화를 하며 걷는 수련의 길이기도 하다. 즉, 현대인들이 받은 많은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보듬는 행위를 순례길의 걷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살아가지만, 정작 나 자신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걷기는 명상 이상으로 현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고 깨진 마음의 상처’ 등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충남 당진 ‘버그내순례길’은 척박한 길을 걷는 고난의 여정이지만 나 자신과의 이야기를 하며 걸을 수 있는 ‘대한민국 산티아고(Santiago)의 길’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버그내순례길은 단순한 관광 여행길을 걷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단 그늘이 많지 않다. 그야말로 산티아고를 걷는 그런 순례자의 자세가 돼야 걸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성지순례는 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가는 길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기 위한 길이어서 그렇다.

    버그내길은 한국 천주교회의 초창기부터 이용됐던 순교자들의 길이었다. 내륙 깊숙이 포구(內浦)가 형성됐던 서해 삽교천의 물줄기는 조선 수군의 눈을 피해 들어올 수 있는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로이자 주요 활동무대였다. 

    버그내순례길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金大建‧1822~1846) 신부가 탄생한 ‘솔뫼성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출발전에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라는 뜻을 가진 솔뫼성지를 둘러보면 좋다. 이곳에는 복원된 김대건 신부 생가와 기념관, 성당, 아레나 광장, 수녀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 ▲ 버그내순례길 인도에 설치된 부조. 녹슨 철 ‘부조’에 오랏줄에 굴비 묶듯이 묶인 채 끌려가는 순교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아 있다.ⓒ김정원 기자
    ▲ 버그내순례길 인도에 설치된 부조. 녹슨 철 ‘부조’에 오랏줄에 굴비 묶듯이 묶인 채 끌려가는 순교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아 있다.ⓒ김정원 기자
    솔뫼성지의 소나무는 곧게 뻗은 소나무가 없다.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현장을 지켜본 소나무들이 함께 고통스러워 하며 굽어 오른 탓일게다. 

    순례길의 걷기는 김대건 신부 생가를 둘러본 뒤 솔뫼성지 정문에서 출발, 합덕성당~합덕제 중수비~원시장‧원시보 우물~무명 순교자의 묘~신리성지~거더리공소~세거리공소~하흑공소(복자 김시집 프란치스코 기념공소)까지 무려 17.7㎞에 이른다. 소요시간은 보통 걸음으로 3시간, 느린 걸음으로는 4시간이 소요된다. 

    인내심을 필요로 한 트레킹은 중간 중간에 만나는 천주교 유적과 고니떼 등이 걷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한다. 

    합덕읍 소재지를 거쳐 충청도 최초의 본당인 합덕성당에 이르는데, 이 성당은 천주교 신앙이 가장 적극적으로 전파된 내포교회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지상에서 계단 양쪽에 일렬 종대로 자라고 있는 반송을 지나 높이 세워진 합덕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고풍스럽다. 

    이어 성당 뒷편 합덕재(연호재)에 이르면 연달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고니’ 떼의 날갯짓이 장관이다. 고니 떼 특유의 소리가 그리 시끄럽지 않을 만큼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내니 내친김에 한동안 쉬어가며 평화롭게 노는 고니떼를 관찰하며 사진찍기에 딱 좋다. 

    버그내순례길은 잘 포장된 길, 아스팔트‧시멘트포장 길, 보도블록길, 도심을 통과해 농로길, 둑방길을 걷는데 지극히 평범한 길을 내내 걷는다. 마치 동네를 걷는 것 같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순례자임을 깨닫게 되고 인격 수양은 물론 신앙인들은 신앙인다운 모습을 되찾는 계기가 된다고 하니 이길을 걷기를 마다 하지 않는다.     

    버드내순례길은 성지순례이기 때문에 성지 등 천주교 유적 곳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길은 농로 등으로 주로 가지만 방향표시가 돼 있어 걷기에 편하다. 성지순례길 참여자는 일부러 순례길을 걷기 위해 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와서 걷는다. 

    전국 각지의 천주교 신도들이 단체로 이 곳에서 미사를 드린 뒤 걷기도 한다. 최근에는 젊은 여성이나 부부가 많이 찾고 혼자 오거나 둘이 오는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걸어야 할 긴 여정은 혼자서 걷기는 쉽지 않지만, 순례길을 걷는 내내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호수와 산, 그리고 해안가를 걷는 여느 트레킹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가 나온 내포는 버그내 장터와 합덕방죽을 걸어가는 순교여정이 걷는 발자국마다 그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서려 있어서다.
  • ▲ 당진 버그내길순례길에서 만나는 합덕성당. 합덕성당은 충청도 최초의 본당이자 과거 내포교회의 중심이었다.ⓒ김정원 기자
    ▲ 당진 버그내길순례길에서 만나는 합덕성당. 합덕성당은 충청도 최초의 본당이자 과거 내포교회의 중심이었다.ⓒ김정원 기자
    특히 순례길을 걷는 내내 당시 박해를 받았던 신도들의 고통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그들에게는 이 길이 ‘죽음의 길’이었다는 점에서 ‘오금이 저려’ 걷기조차 힘겨웠으리라. 아무리 확고한 신앙심을 가졌더라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죽음의 길을 걷기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절망적인 상황은 박물관의 전시물이나 버그내길 인도에 설치된 녹슨 철 ‘부조’에 오랏줄에 굴비 묶듯이 묶여 끌려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아 있다. 

    순교자들은 관원들에 의해 ‘예숫돌’ 위에서 물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가슴이 저려오며 숙연해진다. 그들의 신앙심이 어떤 것이었기에 목숨까지 내주며 종교와 신앙심을 끝까지 지키려했을까? 걷는 내내 생각에 잠긴다.

    ‘버그내’는 내포, 삽교천, 바닷물이 내륙 깊이까지 들어와서 교통시설이 없었던 당시 바닷길은 덕산까지 배로 이용했는데, 아산 온양의 더 큰 천을 으뜸으로 하되 삽교천을 버금간다는 유례에 따라 지명이 합덕(버그내 장터)으로 불리면서 버그내순례길로 지어졌다. 

    성지순례로 유명한 내포는 초창기 천주교 박해에도 천주교인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내포가 단연 으뜸이다. 더불어 버그내순례길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뒤 전국에 많이 알려졌다. 솔뫼성지는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지난해 11월 15일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버그내순례길은 천주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천주교 성지 등 유적을 관찰하고 신해박해,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까지 많은 순교자들이 거쳐 간 곳이어서 성지가 많을 뿐더러 내용과 의미가 단순히 걷는 것에만 의미가 부여돼 있지 않다. 
  • ▲ 버그내순례길과 신리성지.ⓒ김정원 기자
    ▲ 버그내순례길과 신리성지.ⓒ김정원 기자
    산티아고는 순례길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버그내순례길은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지면서 종교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산속으로 피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대구에서 순교한 사람들도 내포지역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도 종교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 깊은 산속인 ‘골배마실’로 피했다. 전국이 이들의 피신지가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종교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이들이 피신했던 길은 산티아고처럼 아주 길게 순례길을 조성할 수 있다. 

    개화기의 내포는 종교활동 영역과 신앙의 깊이에서는 산티아고와는 감히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버그내순례길은 산티아고보다 신앙적으로 의미와 뜻이 더 깊고 넓다고 하겠다. 

    솔뫼성지 한 해설사는 “버그내순례길은 그때그때 다르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며 “합덕재 제방을 따라 걷는 순례길은 큰 도로 역할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끌려간 곳이며 지금도 합덕성당에서 둑을 따라 걷는 ‘성채거동’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해설사는 “버그내길 순례는 심적인 변화가 있을 때 농로를 걸으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다짐하기에 좋다. 도심처럼 번거로운 주변도 아니고 주변과 자연과 함께 하기에 더욱 좋다. 

    봄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리고, 모내기철에는 마치 물위를 걷는 느낌이 들고 밤에는 달빛‧별빛과 함께 걸으면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등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리가 돼가는 느낌을 준다. 걷는 자체도 좋지만 이곳에서 걷는 자체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성지순례를 마쳤다면 먹을거리를 찾는 것은 당연지사. 이 곳에서 당진항까지 승용차로 30분 이내에 갈 수 있고 삽교천은 10분 거리에 있다. 또한 당진에서 ‘바다회’로 요기를 한 뒤 포구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해는 리아시스식 해안으로 복잡한 데 지금은 제방을 막아 옛날 같지는 않지만 삽교천 제방~석문~대호방조제를 따라 바다를 경계로 승용차로 달려보는 또다른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인근에 도비도를 비롯해 함상공원, 아미산,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등 당진 9경도 볼만하다.

    버그네순례길은 대전~당진고속도로를 이용해 고덕IC, 서해안 고속도로는 송악IC를 이용하면 20여분이면 솔뫼성지에 도달할 수 있다. 
  • ▲ 한국 최초의 신부이자 첫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생가인 솔뫼성지. 2014년 솔뫼성지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좌상.ⓒ김정원 기자
    ▲ 한국 최초의 신부이자 첫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생가인 솔뫼성지. 2014년 솔뫼성지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좌상.ⓒ김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