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자동전화 DDD…‘요상스런 전화’ 등장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얘야, 우체부가 와서 군대니 뭐니 하더니 이걸 놓고 갔다.” 병무청에서 보낸 입영통지서였다. 

    다음 날 아침나절이 되자 탁탁 대문 밖에서 수곡동사무소 방위가 먼지가 잔뜩 달라붙은 군화 터는 소리가 들린다. “계세요? 계십니까?” 목청을 높이더니 달랑 32절지 종이 한 장을 내민다. 1982년 1월 10일 8시까지 내수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집결하라는 징집통지서였다. 

    삭발을 위해 꽃다리에서 석교동 아침 시장 가는 길목에 섰다. 조심스레 석교이발소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서자 커다란 주물 연탄난로, 연통 철사에 걸어 놓은 수건, 거품 솔, 파란색 물뿌리개와 양동이가 보인다. 이발사 아저씨가 다가와 흰색 가운을 입혀준다. 날이 바짝 선 면도칼을 다시 한번 소가죽 피대에 쓱쓱 문지른다. 장발을 삭발로 변장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머리만 감고 나왔다. 

    새벽이 시리고 어둡다.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입에선 하얀 입김이 너저분하게 분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대문을 밀치고 수곡동 충북은행 앞 버스정류장으로 종종걸음을 재촉한다. 만감이 교차한다. 미평에서 증평까지 가는 첫차 1번 버스를 탄다. 내수농협 앞에서 내려 굽은 골목길을 따라 내수국민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운동장 문이 굳게 닫혀버렸다. 철문 사이로 들여다보니 머리를 빡빡 밀은 수백 명의 고만고만한 또래들이 운동장에 열을 맞춰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외친다. 열 사이사이로 모자를 깊게 눌러쓴 군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에라 모르겠다. 담장을 넘었다. 순간 두세 명의 군인들이 달려들어 쫄보(겁쟁이)를 에워싼다. ‘군바리(군인)’와 민간인의 첫 기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군바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본다. 320명 장정 중에 쫄보만 장발이니 놀랄 만도 하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의 군 복무 당시 모습.ⓒ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의 군 복무 당시 모습.ⓒ이재룡 칼럼니스트
    어느새 민간인들이 열을 맞춰 선다. 군바리한테 쫄았나? 내수역으로 행군하면서 힐끔 돌아보니 저만큼 비스름한 운동복을 입은 또래들이 몰려온다. 으잉? 최순호 국가대표 축구 선수도 꼽사리 끼여 있다. 팡파르도 없이 까만색 군화를 신은 군바리가 손을 내밀며 열차에 오르라고 점잖게 다그친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차창 밖에서는 눈물을 짜며 호들갑을 떤다. 일신여고 은경이, 충주 엄정면 목계 다리 밑에서 라면을 끓이던 증평여고 현숙이도 보인다. 하기야 교복 입고 뮤직 박스 속에서 DJ로 이름을 날렸던 업력(業力)이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금란이는 보이질 않았다. 뿌욱뿌욱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가 조치원쯤 지나자 군바리가 설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발이다. “야, 대가리 숙여! 이것들이 국방부 알기를 ×같이 아는 것 같은데…. 어디 두고 보자. 코에서 ‘대진 내’ 나게 해 주겠다.” 엄청난 공포이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난다. 민간인 쫄보 알기를 흑싸리 껍데기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이도 잠시 군바리가 쫄보의 장발을 낚아채더니 이내 ‘바리깡(이발기)’으로 머리 한가운데를 밀어버렸다. 젠장 금란이가 보고 있다면 군화로 조인트 까이더라도 쪽팔려서 맞짱 뜰 기세였다. 

    그러나 열차가 연무대역에 멈춰 서자 금란이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국방부는 고작 별사탕 열 개 들어있는 건빵 한 봉지를 주면서 쫄보를 논산훈련소로 데리고 갔다. 연무대역에서 논산훈련소 수용연대 가는 논둑길에는 코끝이 까만 아이들이 즐비하게 서서 소릴 지른다. “건빵 주세요, 건빵 주세요.”
  • ▲ 옛날 장거리 자동전화(DDD) 안내문.ⓒ이재룡 칼럼니스트
    ▲ 옛날 장거리 자동전화(DDD) 안내문.ⓒ이재룡 칼럼니스트
    그렇게 황금란과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한 채 민간인 옷을 벗었다. 어머니는 7일 만에 우체부가 가져온 쫄보의 겨울옷을 받아 들고 통곡했다. 집을 나갈 때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인데 어머니께서 왜 그리도 서럽게 우셨는지를 30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지지리도 불효막심한 쫄보다. 통일화 밑창이 다 닳아서 날굿 하지만 유격훈련을 받고 사내가 되었다. 

    쫄보는 장장 30개월 동안 국방부 자식이 되어 논산, 청량리, 원주, 인제, 신남, 현남, 양양, 고성을 떠돌며 군바리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금란이 소식을 듣지 못했다.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아는 것이라곤 이름 석 자 황금란, 충북 괴산군 사리면 가곡리 월현마을 황 씨네 큰 딸, 대농 방직 근무하면서 양백여상을 다니던 공순이, 마지막으로 쫄보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긴 ‘올리비아 핫세’가 전부였다. 육군 병장의 마지막 월급 4800원을 손에 쥔 채 개구리 복장으로 갈아입고 원주시 태장동 1군 사령부 위병의 경례를 받으며 속세로 나왔다. 

    세상에나 천지가 개벽을 했다. 장거리 자동전화라는 DDD, ‘요상스런(이상스러운)’ 전화가 나왔다. 원주시 우산동 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골목 영빈다방으로 들어가 카운터에 올려진 불그스레한 공중전화를 들고 1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넣었다. 꾹꾹 눌렀다. ‘0431 3국 1084’ 따르릉따르릉….
    2024년 3월 27일. “그대와 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기에 전화 다이얼에 맞춰 남몰래 그대를 부르네, DDD.” 이재룡 전화 수화기를 들고 고이 간직해 두었던 글을 꺼내 소리 없이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