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잔상’ 그리며 ‘추억의 글 곱씹는다’
  • ▲ 기암괴석으로 아름다운 울릉도의 모습.ⓒ이재룡 칼럼니스트
    ▲ 기암괴석으로 아름다운 울릉도의 모습.ⓒ이재룡 칼럼니스트
    울릉도 방문 첫날, 봇짐 하나 달랑 등에 메고 무작정 집을 나선다. 가는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 흥얼거린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
    6세기 초까지 울릉도를 지배하다 512년 신라 지증왕에게 정복당한 고대의 왕국 우산국(于山國)을 쫓아 발걸음을 재촉한다. 신라 장군 이사부는 우산국 사람들에게 골 때리는 ‘구라’를 쳤다. 나무로 가짜 사자를 만들어 배에 잔뜩 싣고 가서 “순순히 신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이 무서운 짐승을 풀어놓아 너희를 모조리 죽이겠다.”라며 윽박지르자 뭍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우산국 사람들은 두 손 들고 항복을 했다. 단 한 발의 화살도 쏘지 않고 거저먹었다. 완전 날 구라에 속았다.
    뱃길로 후포항→159㎞, 울릉도 87㎞→독도를 찍고 뚜벅이 걸음으로 관음도를 답사하기로 했다. 청주에서 후포까지 가는 길이 새로워졌다. 청주~영덕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더 손쉽게 닿을 수 있다. 젠장 그래도 꼬박 3시간은 내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후포항에 2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하고 승선 후에는 2시간 30분을 울렁대며 가야 한다. 조금만 참자. 2026년 1월이 되면 청주공항에서 50인승 TR 비행기로 울릉공항에 한 시간이면 랜딩 할 수가 있다. 설레고 기다려진다. 자고로 21세기 뭍의 사정을 모르는 울릉도 사람들이 혹여 뭍에서 날아온 비행기를 보고 경기(驚氣)하지 않을까 우습다. 
    2022년 7월 2일. 울릉도는 더는 날 구라에 속지 말라며 호박이 잘 열고, 오이와 참외가 많이 나올 때이니 호박 부침을 만들어 칠성님께 빌어야겠다. 울렁울렁 울렁대며 뱃머리가 물을 가른다. 이재룡 삼가 울릉도민 무릎에 앉아 예를 다해 곧은 글을 쓴다
    둘째 날, 아침을 열어젖히고 여행이 시작된다. 섬이라고? 누가 그러더냐. 대륙 같은 섬이다.
    깍새, 쪽빛 바다. 그리고 섬바디꽃, 쑥부지깽이가 지천으로 널려 미친년 치마를 붙들고 놓질 않는다. 염병할 서풍에 찢긴 치마가 속이 보일락 말락 펄럭인다.
    키재기를 할라치면 울릉도→죽도→독도→관음도 순이라 했다. 제일 작은 관음도 둘레가 800m라 하여, 우습게 알고 객기를 부려 땡볕에 걷다가 뒤질 뻔했다. 땀을 두 바가지 반이나 흘렸다.
    섬 목 지역을 지나 가파른 콘크리트 길을 오르니 예림원이 눈을 흘긴다. 흘긴 눈을 부여잡고 풍광을 훔치니 땀이 가신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도대체 저것이 뭔 글씨야. 무릎을 쳤다. 바다(海)에 뜬 달(月)도 쉬어 가려나 삐따닥하게 가로누웠으니 이 문(門)은 참이나 평안하다. 해월문 따라 나가는 길이 눈을 노려본다.
    고기 잡으러 나갔다 돌아올 때는 섬백리향 냄새를 맡고 온다. 백 리 밖에서도 콧잔등을 후벼 파는 냄새가 가득하다. 바다가 검은 줄 알았더니 구름에 가린 그림자 때문에 더욱 검다. 현포(玄浦)의 하루가 짧다. 울릉도는 참 짠하다. 
  • ▲ 아름다운 울릉동 모습.ⓒ이재룡 칼럼니스트
    ▲ 아름다운 울릉동 모습.ⓒ이재룡 칼럼니스트
    날이 밝자 새삼 그날이 오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지난날을 반추한다. 
    주전부리가 널브러진 전방(廛房) 앞에서 ‘울릉도 마른오징어’와 ‘울릉도 미역’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주섬주섬 담았다. 즉석에서 편지를 써서 택배 상자에 넣어 달라고 응석을 부린다. 
    인영아, 매형이다. 울릉도에 왔다. ‘울릉도 마른오징어’와 ‘울릉도 미역’을 보낸다. 아버님 입맛 살아나도록 정성을 다해 올려 드리거라. 늘 눈에 밟히는 인길이가 매형을 슬프게 한다. 불쌍한 막내 인길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인영아, 음식은 사랑이다. 도톰하고 실한 ‘울릉도 마른오징어’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해풍에 말린 이 녀석은 나트륨이 증발하여 짜지 않고 달달하다. 바닷물 속 미네랄이 범벅이다. ‘울릉도 마른오징어’는 굽지 않는다. 그냥 손으로 찢어 곰상스럽게 씹으면 그 맛이 황홀하다 못해 완전히 반한다. 오징어 뭇국을 끓여도 제격이고 잘게 썰어 밀가루 발라 오징어 전을 내놓아도 가 일품이다. ‘울릉도 마른오징어’는 당일바리다. 말린 바로 그날 마니아 식탁에 오른다. 오직 울릉도에서만 가능하다. 열 마리를 묶어 놓고는 한 축이라 부른다. 
    ‘꼬부랑 할매’는 울릉도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조류 한 다발을 훑어 긴 대나무 걸개에 올려 말린다. 철분과 엽산 성분이 듬뿍 들어있어 뼈를 튼튼하게 하고 빈혈에 좋다. ‘울릉도 미역’은 고만고만한 미역 가운데 따봉을 석권하고 이제는 압권이다. 미끈하고 달며 구수하다. ‘울릉도 마른오징어’를 뚝뚝 잘라서 ‘울릉도 미역’과 함께 섞어 넣고 걸쭉하게 끓여 내면 죽었던 입맛도 돌아온다.
    일평생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장모님이다. 장모님 생각을 하자니 울컥하여 택배 상자를 보듬어 담는다. 장모님은 청주시 상당구 목련공원에 곤히 잠들어 있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면 장인어른이다. 그런 장인어른께 자연의 맛을 들이고 싶어 택배 상자에 ‘울릉도 마른오징어’ 한 축 ‘울릉도 미역’ 한 다발을 담는다. 
    2022년 7월 3일. 울릉도 마른오징어 더하기 울릉도 미역에 푹 빠져 보는 둥 마는 둥 팔자걸음 휘젓고 노닐다가 이재룡 깜깜한 밤 가로등에 기대 달궈놓은 글을 꼬나본다. 
    셋째 날,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을 ‘찰나’라 하고, 가장 긴 시간을 ‘겁’이라 합니다. 인연(因緣)을 들어 보셨나요? 불타에서는 인(因)을 ‘영겁의 시간’이라 하고, 연(緣)도 ‘영겁의 시간’이라 합니다. 그러니 이병주 사장님과의 인연은 아주 오랜 시간 영겁의 시간 속에서 만난 것입니다. 이 귀한 인연을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 뭍에서 섬으로 숨어든 남자 이재룡 올립니다.
    배가 고프다. 가파른 언덕배기에 올라 다시 급경사 꼬불꼬불 골목길 따라서 오면 몸뚱이 하나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대문이 보인다. 며칠 묵어갈 민박집이다. 식당을 수배하러 오른 길을 내려간다. 
    그녀의 고향은 춘천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울릉도 남정네 만나 뭍을 버리고 섬을 않은지 훌쩍 40년이 지났다. 무정한 사내는 딸 둘 아들 하나를 남겨둔 채 홀라당 자연으로 가버렸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눈물로 지새운 밤이 샐 수 없다. 까맣게 그을린 인생을 잊으려 홍합밥을 지으며 남매를 키웠다. 그렇게 세월을 잊었다.
    두 사람이 지나기엔 벅차다. 신작로에선 보이질 않아 자라목 쭉 빼고 킁킁대야 보인다. 도르래 달린 조막만 한 간판에 끌려 샛길로 들어가니 프로판 가스통 곁에 ‘보배식당’이 간드러지게 부른다. 도동2길 50-4 여기가 길손의 발을 묶어 놓은 그녀의 집이다. 그녀는 임진년(壬辰年) 음력 6월 6일에 귀 빠진 이병주다.
  • ▲ 울릉도 골목길.ⓒ이재룡 칼럼니스트
    ▲ 울릉도 골목길.ⓒ이재룡 칼럼니스트
    홍합밥을 주문했다. 이윽고 아홉 반상이 올려진다. 보는 것만으로 침샘이 돌고 목젖이 꿀꺽하며 깔따구 죽이는 소리를 낸다.
    1) 상추를 명이나물 먹고 남은 간장에 절여 냈다.
    2) 더덕을 간장과 물엿에 섞어 자글자글 조려냈다.
    3) 부지깽이를 참기름과 소금에 버무려 조물조물 무쳐냈다.
    4) 취나물을 약한 불에 들들 볶아냈다.
    5) 도라지를 바람 잔 그늘에 말려 고추장으로 옷 입혀 무쳐냈다.
    6) 미역을 잘게 잘라 물엿에 데친 후 무쳐냈다.
    7) 마늘을 살짝 쪄서 부뚜막에 말린 다음 무쳐냈다.
    8) 콩나물을 삶아서 물을 버린 후 물엿을 넣고 살살 졸여냈다. 
    9) 아삭한 고랭지배추에 천일염으로 간을 해 내놓았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미친 맛? 일품이다. 맛이라 하기엔 걸맞지 않다. 예술이다. 저동항 너른 바다가 휘영청 달 받을 준비를 한다. 그 너머로 음력 6월 6일 초승달이 오른다.
    빨간 실고추, 파란 오이, 노란 지단, 속살 뽀얀 밤(栗)이라도 좋다. 그 무엇이 되고 싶어 간절하게 살핀다. 고명이다.
    고명이 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음식의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짙은 녹색 길섶에 도드라진 빨간 장미 역시 고명이다. 
    지난겨울 족히 2m 넘는 함박눈이 쌓인 나리분지 거친 땅바닥을 비집고 나온 명이, 부지깽이, 삼초, 취나물을 거친 손으로 달래어 옅은 간장에 담가 우려낸 억척스러운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 손맛이 진정한 고명이다.
    도동항 너른 마당 한복판에서 행인에게 노래 한 소절 날리며 저녁을 차지게 하는 무명가수 버스킹은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누구라 이를 고명이라 하지 못할까 미덥다.
    울릉도에는 파지를 줍는 허리 굽어버린 고명, 호박엿 공장에서 밤을 새우는 고명, 주방에서 고두밥을 지어내는 고명, 금세 뭍으로 올라온 생선 배를 가르는 고명, 잡아 온 고기를 경매에 부치며 코 먹은 소리와 연신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는 고명까지 차고도 넘친다.
    그렇게 우매하다. 구름이 지난다. 놓친 것이 있다. 사랑(愛)도 고명이다. 나무에 파인 글을 목이 빠지라 본다. “구름은 바람 없이 못 가고 인생은 사랑 없이 못 가네”
    울릉도에는 사랑이 천지에 널려있다.
    울릉도는 고명 덩어리다.
    2022년 7월 4일. 배고픔보다 먹고 품이 무섭다 ‘홍합밥’ 덕분이다. 집어등이 꺼지니 동해가 열리고 오늘도 고명으로 시작한다. 울릉도 마지막 날 ‘홍합밥’ 똥을 한파 내기 싼다. 이재룡 밑 닦은 호박잎에 글을 삶는다. 
    넷째 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야트막하지만 그래도 오르막길이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3길 33 순간 늙수그레한 삭은 간판이 눈에 든다. 한참을 뜯어보니 참신한 간판이다. 하기야 6년을 같은 장소에서 태풍, 폭설, 폭우를 이겨냈으니 그리 보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잘 보이라고 백승빈 변호사 여섯 글자는 LED로 다시 장만했다. 울릉도에 변호사가? 놀라 자빠졌다.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이내 미닫이 창틀 문을 스르르 여니 젠장 텅 비어있다. 주인장을 꼭 봐야 싶었다. 그 용기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아야 했다. 어디에도 주인장 인기척을 들을 수가 없다.
    곧장 뱃길 따라 포항으로 도망갔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어촌계장 등쌀에 파양한 것일까? 주인장이 없으니 몹시도 흥분된다. 남들은 주인장을 주둥이로 먹고사는 쟁이라 부른다. 속상하다.
    주인장은 그 어떤 쟁의도 손절매하는 여기 울릉도에서 불혹을 맞았다. 그 용기가 가상하다. 그 봉사가 뜨겁다. 단 한 번도 만나거나 본 적도 없는 주인장의 면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부끄럽고 숙연해진다. 그런데도 주인장을 헐뜯는다. 울릉도 태생이 아니라는 이유 단 하나다. 
  • ▲ 정갈한 울릉도 음식.ⓒ이재룡 칼럼니스트
    ▲ 정갈한 울릉도 음식.ⓒ이재룡 칼럼니스트
    “예나 이제나 사람들은 서로 헐뜯는다. 말이 많으면 많다고 헐뜯고, 말이 없으면 없다고 헐뜯으며, 적당히 말해도 역시 헐뜯는다. 헐뜯기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법구경).” 껄껄껄 그래도 울릉도는 조금은 다른 세상이다.
    주인장을 보지 못하고 미닫이 샤시문을 드르륵 닫고 내리막길에서 고개를 떨구며 중얼댄다. “덜 헐뜯기는 세상은 없을까?”
    백승빈 쟁의를 만나고 싶었다. 수첩에 적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변호사 백승빈. 
    2022년 7월 5일. 울릉도 저동항을 깨우며 독도로 향한다. 이재룡 울릉도에서 쥐어짠 짧은 생각, 정성스레 다듬은 짧은 느낌을 한데 모아 조신하게 글로 담는다. 
    다섯째 날, 울릉도에서 돌아오니 말수가 적은 처남이 카톡을 보냈다. 간단하고 담백하다. “고마워요. 매형” 처남 휴대전화 바탕화면에는 이런 글이 올려져 있다. ‘이름 없는 잡초라 무시하지 마라. 산천이 뒤집혀도 살아남았다.’
    잡초(雜草)? 풀이라고 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그래서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취급되는 풀이 곧 잡초다. 아니다. 농사를 짓는 이들에겐 오히려 ‘없었으면 하는 풀’이 바로 잡초요 잡풀이다. 사전을 뒤적여도 잡초 또는 잡풀이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대수롭지 않은 풀'로 풀이돼 있다. 
    대수롭지 않은 풀? 대단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수로움의 당사자는 누구인가? 대단한 우문이지만 그 당사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우리다.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니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을 리 없고 대수로울 리 만무다. 그동안 우리에 의해 순전히 타의 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당해온 풀들엔 상당히 기분 나쁘고 화가 나는 말이다. 풀의 처지에서 보면 그보다 더 서럽고 야속한 말이 없다. 그래서 더욱 속상하다. 
    ‘그날’이 아니고 ‘그날’이 오면 쑥부쟁이 싹이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했다. 예리한 예초기 칼날에 꽃대가 잘려나가도 꽃자루에 달린 꽃가루가 날려 다시 꽃이 핀다. 그날이 오면 쑥부쟁이를 잡초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비 한 방을 내리지 않은 흙먼지 속에서도 쑥부쟁이는 지난해처럼 어김없이 남보랏빛 꽃을 피우고야 만 것이었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어둑어둑했던 사위가 우암산 능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이길 수 없었는지 잰걸음으로 사라진 시간이다. 시간이 6시 5분을 지난다. 출근해야겠다. 
    아, 울릉도
    2022년 7월 7일. 울릉도가 남긴 쑥부쟁이는 잡초가 아니었다. 이재룡 칠월칠석날 쑥부쟁이 달인 물로 글을 빚고 말린다. 
    땅꾼 둘이서 뱀 사냥을 한다. 잠시 몸보신하러 간다. 어디로? 캄보디아. 260번 게이트 브리지에 발동 걸린 대한항공 KE689 비행기가 덜커덕 걸리고 탑승구에는 길게 줄이 선다. 
    2024년 3월 5일.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면 마냥 즐겁다. 여보게, 그때나 지금이나 여여한가? 되묻는다. 이재룡 두 해 전 울릉도의 잔상을 그리며 추억의 글을 솔깃하게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