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온 국민의 평안과 부귀를 기원하며[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보은군 편
  • ▲ 겨울 들판에서 바라본 금적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겨울 들판에서 바라본 금적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금적산(金積山, 해발 652m)은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과 옥천군 안남면․안내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보은의 삼산(三山, 속리산·구병산·금적산) 중의 하나다. 

    속리산 천왕봉(天王峯, 해발 1058m)을 지아비 산, 구병산(九屛山, 해발 876m)을 지어미 산이라 하며, 이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산을 금적산이라 한다.

    2024년(갑진년) 새해를 맞이하여 온 국민의 안녕과 부귀를 기원하기 위해, 전 국민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보배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금적산을 오른다.
  • ▲ 안개구름이 서서히 걷히는 등산로 초입부의 초지.ⓒ진경수 山 애호가
    ▲ 안개구름이 서서히 걷히는 등산로 초입부의 초지.ⓒ진경수 山 애호가
    이번 산행은 ‘서원소류지 주차장(보은군 삼승면 서원리 211번지)~정자~중계탑~금적산 고스락~바위능선~원남리~서원소류지’로 원점 회귀하는 약 7.5㎞ 코스다.

    서원소류지 주차장을 출발하여 안개구름이 내려앉은 소류지 옆의 콘크리트 포장길을 오른다. 길을 걷는 동안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세상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마치 참살이가 뭔지 몰라 헤매다가 돌연히 지혜를 얻어 광명을 얻은 것처럼 고도를 높여가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적산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 ▲ 정자쉼터.ⓒ진경수 山 애호가
    ▲ 정자쉼터.ⓒ진경수 山 애호가
    서원소류지에서 0.8㎞ 지점을 지나면서 비포장 임도가 시작된다. 따스한 햇살이 바싹 마른 초목을 포근하게 감싸 안으니, 필자도 겉옷을 벗는다. 이와 같이 따뜻한 말 한마디도 용기를 북돋을 수도 있고,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경사진 길이지만 갈색 낙엽을 밟으며 편안하게 걷는다. 출발기점 1.2㎞ 쯤 이동하여 정자쉼터를 지난다. 이제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된다. 한참 동안 통나무 계단을 오르면서 몇 분의 산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며 스쳐간다.

    계단 구간은 낙엽이 수북이 쌓인 가파른 산길로 모습을 바꾼다. 산객들이 무리를 지어 내려오고 있어 일일이 인사를 나누기도 벅차지만, 모든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받아준다. 웃음과 인사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 ▲ 하산하는 산객들.ⓒ진경수 山 애호가
    ▲ 하산하는 산객들.ⓒ진경수 山 애호가
    산객의 일행들은 주로 50~60대 분들로 보인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하산을 하니 혹시 신년 해돋이를 보러 다녀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종아리 근육이 뻐근하다. 잠시 쉬어갈 겸 산길 옆으로 비켜서서 하산하는 일행들과 다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보은군 주민을 만난 것이다. 만나려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만나게 되고, 만나려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날 수 없는 것이 인연이라 하지 않던가.

    경산대혜고선사(徑山大慧杲禪師) 답문 중에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떠오른다.
  • ▲ 가파른 산길에서 드문드문 만나는 바위들.ⓒ진경수 山 애호가
    ▲ 가파른 산길에서 드문드문 만나는 바위들.ⓒ진경수 山 애호가
    오늘 주민들이 산행을 한 이유는 삼승면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금적산 정상에서 봉행했기 때문이란다. 매년 정월초하루에 삼승면 풍년기원제를 지난다고 한다.

    다시 흙길과 돌길이 반복되는 낙엽이 수북한 가파른 산길을 치닫자니 드문드문 커다란 바위들이 힘내라고 기운을 준다. 요동치는 심장소리에 혈관이 터질 것 같아 발길을 잠시 멈춘다.

    그 참에 나뭇가지 사이로 삼승산(해발 576m)을 바라보니 안개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수줍은 듯 가물가물 산봉우리를 내민다.

    자갈 위에 무심하게 늘어뜨린 밧줄을 지난다. 산허리를 지나면서 더 이상 치고 오를 수 없어 앙상한 참나무가 빼꼭한 사면을 갈지(之)자로 힘겹게 오른다.
  • ▲ 금적산 고스락에서 바라본 풍광.ⓒ진경수 山 애호가
    ▲ 금적산 고스락에서 바라본 풍광.ⓒ진경수 山 애호가
    드디어 능선에 닿으니, 처음으로 서원2리(1.9㎞) 갈림길의 이정표를 만난다. 낡아서 훼손된 이정표이지만, 좌측으로 가면 원남리(2.5㎞), 우측으로 가면 서원1리(2.8㎞)라고 알린다.

    능선을 따라 조금 이동해 하행한 후 잔설이 남아 있는 그늘진 산길을 오른다. 날씨가 풀린 탓에 낙엽위에 쌓인 눈이 녹아 팥빙수처럼 질퍽거린다.

    TV, FM라디오, 지상파 DMB방송을 서비스하는 방송 송출 중계소를 지나 금적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고스락 돌 뒤편 바위에 올라 삼승면과 탄부면 일대의 들녘, 삼승산과 관모봉(해발 561m)을 조망한다. 아쉽게도 멀리 구병산은 안개구름에 가려 아스라하다.
  • ▲ 내리막 바윗길.ⓒ진경수 山 애호가
    ▲ 내리막 바윗길.ⓒ진경수 山 애호가
    고스락을 지나 중계소 철망 옆을 지나는데, 좌측은 낭떠러지기다. 안전 쇠줄이 설치되어 있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믿을 거라곤 걷는 이의 마음과 발뿐이다.

    푹신한 느낌을 받으며 능선을 호젓하게 걷자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편안하게 이어지는 능선 길에 이끼를 잔뜩 머금은 커다란 바위가 겨울 산행의 단조로움을 덜어준다.

    이 산은 조망도 거의 없고, 속리산이나 구병산처럼 산세가 아름답거나 화려하지도 않다. 그저 수수하다 못해 촌스럽지만 손때가 묻지 않은 산의 모습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평탄한 능선은 내리막 바윗길에 이어 곤두박질하는 산길로 이어진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외줄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게 하행할 수 있다.
  • ▲ 바윗길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바윗길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한바탕 진땀을 흘리며 하행한 후 한숨 돌리며 평탄한 길을 걷는다. 이어서 바윗길 구간을 조심스럽게 건넌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금적산 봉우리가 조망된다.

    이어 흙길을 내려가는데 멧돼지들이 파헤쳐 놓은 흔적이 뚜렷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인 밧줄을 붙잡고 가파른 소나무 구간을 내려간다.

    이따금 만나는 바위 구간을 내려가기도 하고,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급경사의 길을 내려간다. 밧줄은 낙엽에 덮여 있고, 밧줄을 매어둔 말뚝은 쓰러져 제구실을 못한다.

    이정표도 없고 그 흔한 등산리본도 보이지 않는다. 감각에 의지해 매의 눈으로 능선으로 이어질 것 같은 길을 찾아 나선다.
  • ▲ 유격훈련을 방불케 하는 급경사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유격훈련을 방불케 하는 급경사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그렇게 한바탕 혼쭐나며 하행하니 기진맥진 상태라 평지에서 잠시 쉬어간다. 산객들의 흔적도 별로 없고 등산로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자칫 등린이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기운을 회복하고 다시 하행을 시작하는데, 내리막 바윗길에 이어 낙엽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거칠고 거세고 가파른 비탈을 내려간다.

    제법 긴 구간에 걸쳐 밧줄을 잡고 내려가니 마치 유격훈련을 방불케 한다. 갑진년 한 해를 굳건하게 지내기 위한 체력훈련을 단단히 한 셈이다.

    낙엽 속에 숨은 잔돌을 밟아 몇 차례 낙상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완만한 능선을 하행한다. 이후 고기를 잡으려는지 산객을 잡으려는지 투망처럼 설치된 밧줄을 만난다.
  • ▲ 날머리에서 바라본 삼승산과 관모봉.ⓒ진경수 山 애호가
    ▲ 날머리에서 바라본 삼승산과 관모봉.ⓒ진경수 山 애호가
    짐작컨대 능선으로 하산하지 말고 개방된 우측 비탈로 우회하라는 뜻인가 보다. 이런 수수께끼보다는 이정표가 훨씬 안전할 것 같은데 말이다.

    비탈길로 우회하여 골짜기로 내려와 개울을 건너니 낡은 이정표가 날머리임을 알린다. 금적산 방향의 팔은 지워졌고, 원남3구 노인회관은 0.5㎞라고 알린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원남리 마을로 내려가면서 삼승산과 관모봉을 조망한다. 원남리 마을을 빠져나와 콘크리트 농로를 걸으면서 금적산 능선을 조망한다.
  • ▲ 서원소류지로 이동하면서 바라본 금적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서원소류지로 이동하면서 바라본 금적산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서원소류지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최대한 방향 감각을 이용하지만 가끔 ‘산길샘’ 등산 웹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무심히 걷다가 두 차례 갔던 길을 되돌아오곤 한다.

    농로를 걸으면서 두 차례 축사를 만나는데 지독한 냄새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그런 곳에 사는 저 짐승들은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생각하니 이내 그러려니 한다.

    한산하지만 포근하게 느껴지는 겨울의 농촌 풍경을 한껏 즐기면서 걷는다. 이 순간은 욕망이 사라지고 욕심이 없어지니 마음이 편해진다. 올 한해 내내 그러했으면 좋겠다.

    드디어 서원소류지에 도착한다. 제방을 건너면서 저수지의 얼음에 비친 금적산 능선을 바라보며 갑진년 온 국민이 평안하고 부귀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