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각운 스님의 노력으로 재탄생[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보은군 편
  • ▲ 세조길 중 수변테크길에서 바라본 수정봉(2023년 6월 촬영).ⓒ진경수 山 애호가
    ▲ 세조길 중 수변테크길에서 바라본 수정봉(2023년 6월 촬영).ⓒ진경수 山 애호가
    수정봉(水晶峰, 해발 569m)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위치하고 있으며,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속리산 법주사의 서북방향을 지키고 선 수정봉은 비법정탐방로이지만 속리산 법주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다면 수정봉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수정봉의 목이 자린 거북이가 지난 5월 3일 법주사 각운 스님의 부단한 노력 끝에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정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이번 산행은 ‘법주사 소형주차장~뚱뚱이와 꼬맹이바위~적층바위~전망대바위~화두바위~슬랩바위~수정봉~거북바위~법주사~법주사 소형주차장’으로 원점회귀 코스이다.

    법주사 소형주차장에 도착해 수정초등학교 방향(사내8길)으로 약 180m를 이동하면 사내4리교를 만난다. 이 다리를 건너기 전 우측으로 충청북도 민속문화재 제19호인 ‘보은 사내1리 산제당(報恩 舍乃一里 山祭堂)’이 있다.
  • ▲ 보은 사내1리 산제당.ⓒ진경수 山 애호가
    ▲ 보은 사내1리 산제당.ⓒ진경수 山 애호가
    2011년 9월 충청북도 민속문화재로 등록된 산제당은 정면 2칸, 측면 1칸 크기의 목조 맞배지붕을 한 기와집으로 현재의 건물은 여적암에서 옮겨와서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산제당 안에는 오른쪽에 칠성도, 왼쪽에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다. 이곳은 해마다 음력 1월 2일에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 공동체 신앙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산제당에서 우측으로 선행자의 흔적이 보일 듯 말 듯 한 길을 찾아 가파른 비탈을 스틱이 없으니 네팔로 기어오른다. 산행 초입부터 숨차게 오르니 싸늘한 영하의 기온을 느낄 겨를이 없다.

    능선에 이르니 앙상한 나뭇가지에 선행자의 등산 리본이 달려있다. 딱딱한 초목들이 맑은 아침 햇살을 받아 희멀겋고, 온산을 덮은 갈색의 낙엽이 잠시 삶의 쉼표를 찍는 여유로움을 준다.
  • ▲ 꼬맹이와 뚱뚱이 조망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꼬맹이와 뚱뚱이 조망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산객들의 흔적이 역력한 산길을 따라 작은 구릉을 넘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오른다. 산길 우측의 빽빽한 숲 사이로 레이크힐스 관광호텔이 보인다. 정면에는 호텔에서 사용했던 낡은 취수탱크가 길을 막아서지만, 그 좌측으로 비켜간다.

    이어 평탄한 길을 걷다가 이내 오르막을 오르는데 산길의 흔적이 거미줄처럼 사방팔방으로 제멋대로 흩어져 뻗어나간다. 그러나 고민하지 않고 가능한 조망이 있을 것 같은 좌측으로 바싹 다가가 능선을 오르면 조망바위를 만난다.

    너른 암반 위에 앉아 있는 뚱뚱이와 꼬맹이 바위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사내리 마을을 내려다보며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주차장을 출발해 불과 0.6㎞을 이동해 약 100m의 고도를 높였는데 이처럼 멋진 뷰포인트를 만나니 멋진 산행이 예상된다.

    이곳에서 발아래 펼쳐진 주차장을 비롯해 수정초등학교, 사내리 마을을 조망하고, 맞은 편 산중턱에 불끈 솟아 있는 ‘주먹 쥔 바위’를 조망한다. 그리고 앞으로 오르게 될 거대한 적층 바위가 우측으로 절벽을 이룬다.
  • ▲ 적층 바위에서 조망한 수정초등학교와 주먹 쥔 바위(오른쪽 작은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적층 바위에서 조망한 수정초등학교와 주먹 쥔 바위(오른쪽 작은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뚱뚱이와 꼬맹이 바위에서 0.1㎞ 정도를 오르자 적층 바위에 닿는다. 고도를 조금만 더 높였을 뿐인데 조망은 이전보다 훨씬 더 시야각이 넓어진다. 이처럼 우리네 마음의 키 높이를 조금만 더 키우면 분쟁과 갈등을 멀리하고 포옹하는 사회가 될 터인데 말이다.

    이 적층 바위를 내려다보니 네 계단으로 올라앉은 모양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묘봉 능선 끝자락에 우뚝 솟아있는 ‘애기 업은 바위봉’을 조망한다.

    계속되는 바윗길을 오르면서 주먹 쥔 바위를 가까이서 조망한 후, 낙엽이 수북이 쌓인 비탈길을 따라 우측으로 방향을 튼다. 바위 끝자락에 서니 고사목의 손가락 끝이 속리산 천왕봉과 남산을 가리킨다.

    다시 흙길의 능선으로 돌아와 곳곳에 널려 있는 바위 옆을 지나가면서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주차장에서 1.1㎞ 쯤 이동하니, 우측으로 오리 알같이 둥근 전망대 바위에 올라 속리산의 수려한 산줄기 풍광을 즐긴다.
  • ▲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본 속리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본 속리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전망대 바위에서 속리산 산등성의 우측으로부터 천왕봉, 비로봉, 입석대, 신선대, 문수봉, 문장대,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런 아름다운 산줄기가 수정봉과 남산이 이루는 골짜기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법주사를 포근하게 감싼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지척에 깎아 자른 절벽의 암릉에서 시작해 수정봉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도 바라본다. 그 능선 뒤로 뾰족하게 튀어 오른 애기 업은 바위봉과 톱니처럼 솟아 하늘을 자를 듯 산세를 자랑하는 묘봉 능선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전망대 바위에서 내려와 우측으로 바위 사이를 지나 암릉에 오른다. 암릉 꼭대기에 오르자마자 움푹 파인 두 개의 구멍에 물이 고여 있는데, 마치 그 모양이 해골처럼 느껴져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자리에는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으신 원효대사가 나투신 듯하다.

    한 발짝 더 진행하니, ‘화두 바위’가 묻는다. ‘너는 누구며, 여기는 왜 왔니?’, 또 묻는다. ‘여기를 지나 어디로 가려고 하니?’ 잠시 자연이 주는 화두에 멈칫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산행을 멈출 수 없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하나 낭떠러지기고, 내려간다고 해도 다시 그 앞에는 무지막지한 암벽이 기다린다. 
  • ▲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암벽 위에 형성된 화두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암벽 위에 형성된 화두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암릉을 내려와 아무런 표식이 없는 산길을 감각에 의지해 길을 찾는다. 암벽을 우회하여 비탈길을 걷는다. 서쪽으로부터 서서히 구름이 밀려와 맑은 하늘을 덮기 시작한다. 병풍처럼 펼쳐진 거대한 바위와 참나무 숲 사이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능선에 오르자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알 바위, 매미 바위, 악어 바위, 모래무지 바위 등등 보는 사람마다 가지가지 형상으로 다가오는 바위 전시장을 천천히 오르면 주차장에서 1.5㎞ 지점에 위치한 슬랩 바위에 닿는다.

    밝은 회색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산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게 느껴지니 금방이라도 하얀 눈발이 날릴 것 같다. 한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늘이 이처럼 맑고 흐림을 오고가니 사람의 마음인들 오죽하겠는가.

    다시 암릉을 만나자 주저하지 않고 낙엽을 수북이 떨군 비탈진 참나무 숲길로 우회한다. 온갖 모양의 바위들이 모인 암릉 구간을 지나 아무런 표식이 없는 길을 따라 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걷다보면 우측으로 속리산 상수도수원지를 조망한다. 
  • ▲ 슬랩 바위에서 바라본 묘봉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슬랩 바위에서 바라본 묘봉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능선에 놓인 커다란 공기돌 바위 등 여러 형상의 바위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또다시 오를 수 없는 암릉을 만나니,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암릉 왼쪽 비탈길로 내려가 우회한다.

    이전의 바위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검푸른 바위 절벽 옆을 지나면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용이 누워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깎아 자른 바위벽에 뿌리를 박고 옆으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만나니 행운이 가득하다.

    산의 고도는 높지 않지만 능선에서 만나는 거대한 바위들의 품격은 높은 명산에 결코 뒤지지 않고, 조망 역시 거침이 없고 손색이 없다. 이끼를 잔뜩 머금은 바위와 층층이 쌓아 올린 바위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에는 산객들의 흔적이 선명하다. 산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등줄기에 땀이 흐르니 입에서 물을 달라한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데도 금방 식는 몸이 추위를 느낄 정도다. 이젠 보온 등산복을 지참할 때가 되었다. 
  • ▲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를 품은 장엄한 암릉.ⓒ진경수 山 애호가
    ▲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를 품은 장엄한 암릉.ⓒ진경수 山 애호가
    드디어 주차장에서 2.25㎞를 이동하여 수정봉 꼭대기에 도착하니, 둥근 돌 세 개가 둘레를 지키고, 가운데에는 육각형 모양으로 놓인 주춧돌만 남겨져 있다. 어떤 연유로 정자가 해체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자재들이 한쪽 곁에 쌓여 있다. 

    무심히 직진해 하산하다가 앙상한 나뭇가지가 보여주는 묘봉 산등성을 보고 민판동으로 가는 길임을 알아차리고, 다시 수정봉 꼭대기로 돌아와 좌측(상행 시 우측)으로 하행한다. 이처럼 비법정탐방로는 이정표가 없으므로 초보자는 산행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선행자들의 흔적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을 하행한다. 하행하는 곳곳에 바위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꽃을 피우고 종자를 떨어뜨린 후 바싹 말라 죽어있는 조릿대를 지나고, 두 그루의 소나무 사이에 밧줄로 매어놓은 급경사의 바위를 건넌다. 
  • ▲ 수정봉(水晶峰)이 음각된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수정봉(水晶峰)이 음각된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푸릇푸릇하고 낮고 조그마한 조릿대가 바윗길로 이끈다. 석문을 통과하듯 바위 사이를 지나니 작은 바위를 지탱하느라 휘어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그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운 거대한 바위와 그 옆의 바위군이 형성한 통로를 지나가니 그 큰 바위를 떠받치는 또 다른 나무가 신비롭다. 그 나무 옆에 ‘수정봉(水晶峰)’이 음각되어 있다. 이곳은 수정봉에서 약 0.3㎞ 떨어진 위치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에 온통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자연에 오랫동안 남겨두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 세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바위를 돌아가니 조릿대 숲으로 이뤄진 세거리를 만난다. 

    어디로 가야 거북바위를 만날 수 있을까? 좌측으로 조금 걷다가 아닌가 싶어 다시 돌아와 우측 조릿대 숲길로 0.1㎞를 이동하니 너른 암반이 펼쳐진다. 암반의 우측으로 거북 머리가 북쪽을 향하고 있고, 모가지는 잘린 흔적이 있는 등이 엄청나게 큰 거북 바위이다.  
  • ▲ 수정봉의 거북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수정봉의 거북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거북바위에 얽힌 전설은 이렇다. 당나라 태종이 세숫물 속에서 거북 형상을 보고 이상히 여겨 술사에게 물으니, 동쪽 나라에 있는 큰 거북이의 형상이 당나라의 모든 재물을 그 나라로 흘러가게 하니 찾아서 없애라고 했다.

    그리하여, 속리산 수정봉에 있던 거북바위를 찾아내 목을 자르고 등에 10층의 탑을 쌓아 정기를 눌렀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이 탑을 없애고 잘려나간 목을 다시 찾아 시멘트를 사용해 이어 붙였지만 엉성했다.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법주사 각운 스님께서 문턱이 닳도록 관공서를 드나들면서 거북바위 복원이 필요한 사유를 설명했다. 그 덕분에 흉한 모습의 시멘트 부분을 제거하고, 주변에 있는 동일한 재질의 암석과 특수 접착제를 이용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거북 바위에서 한 계단 내려오면 정이품송과 유사한 소나무가 한복판을 지키고 있고, 100여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평한 암반이 있다. 이곳에서 속리산의 수려한 산세와 고즈넉한 법주사 가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즐긴다.  
  • ▲ 수정봉과 일직선을 이룬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진경수 山 애호가
    ▲ 수정봉과 일직선을 이룬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수정봉 바위가 있는 세거리로 돌아가 호서제일의 가람 미륵도량 법주사로 하행한다. 상행의 산길보다 매우 가파른 길이지만,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안전하게 하행할 수 있었다.

    소나무 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길, 바위를 쪼아 만든 계단, 조릿대 구간, 얼음을 달고 있는 암벽 옆을 지나 흙길을 한동안 내려오면 법주사 팔상전을 중심으로 경내가 조망된다.

    금동미륵대불 뒷모습을 바라보며 커다란 바위에 꽂아 넣은 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를 지나 법주사 경내로 들어선다. 금동비륵대불과 능인전 사이의 계단으로 내려와 경내를 두루 돌아본다. 금동미륵대불 정면에서 합장 삼배하고 바라보니 미륵불상의 광배가 수정봉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법주사를 나와 세조길을 걷고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 거리는 약 6.5㎞로 짧고 고도도 높은 산은 아니지만, 자연의 숨결과 숨겨진 사연, 숨은 비밀을 만나는 환희의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