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接近性과 풍부한 山村 정서 만끽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보은군 편
  • ▲ 구병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 구병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구병산(九屛山, 해발 876m)은 충북 보은군 마로면·장안면·내속리면과 경북 화북면에 걸쳐 솟아 있는 산으로, 아홉 폭의 바위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수려한 풍경으로 ‘충북 알프스’라는 명칭도 얻었다.

    이번 산행은 원점회귀가 가능한 보은군 마로면 적암리를 산행의 기점으로 삼는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당진-영덕고속도로에 있는 속리산휴게소에서 ‘구병산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보은드론비행교육원 부근의 주차장을 이용한다.

    마을 쪽으로 이동해 개울을 건너지 않고, 개울을 거슬러 마을 길을 걷는다. 이곳에서 신선대를 거쳐 구병산까지 5.5㎞이다. 만일 개울을 건너서 간다면 쌀난바위를 거쳐 구병산에 오를 수 있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으면서 저 멀리 운무 속에 감춰진 구병산 자락의 골짜기로 숨은 술래를 찾으러 나서듯이 깊숙이 들어간다. 마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포장길에 세워진 이정표가 이제부터 숲속을 걸으라고 한다.
  • ▲ 운무 속에 숨은 구병산 자락을 향해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 운무 속에 숨은 구병산 자락을 향해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물방울을 머금은 풀잎을 스치는 느낌이 물 마시는 새가 된 듯하다. 색동저고리처럼 알록달록한 등산 리본이 달린 청록의 숲속으로 들어서자마자 계곡을 건넌다. 완만한 산길을 걸으면서 팔각정과 들풀꽃, 그리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돌더미를 지난다.

    이후 우측으로 물소리를 품고 있는 계곡을 거슬러 자잘한 산 돌멩이가 깔린 길을 오른다. 853봉과 신선대 갈림길을 만나서, 1.3㎞ 남은 신선대 방향으로 간다. 산길의 돌들이 점점 작아지고 경사도를 느낄 무렵 좌측으로 등산 리본이 매달린 가파른 길을 오른다.

    생명력이 가득한 청록의 참나무 숲은 시원한 공기를 내뿜고, 달아오르기 시작한 몸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안경에 성에를 만든다. 돌과 바위가 많아지면서 참나무는 소나무로 바뀌고 좌측으로 적암리 방향의 조망이 터진다.

    울창한 참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가려진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다가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으면 비탈길로 우회한다. 이렇게 오르다 보면 신선대와 형제봉 갈림길을 만나다. 이곳은 적암리 주차장 기점 2.7㎞ 지점이고, 신선대까지는 1.0㎞만 이동하면 된다.
  • ▲ 해발 785m의 구병산 신선대.ⓒ진경수 山 애호가
    ▲ 해발 785m의 구병산 신선대.ⓒ진경수 山 애호가
    형제봉 갈림길에서 완만한 산길로 시작해 바윗길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밧줄을 잡고 암벽 구간을 오르면 해발 785m의 신선대에 도착한다. 신선대의 암반 위에는 초탈(超脫)한 신선(神仙) 같은 소나무가 자리를 지킨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등성이 형제봉(兄弟峯, 해발 832m)을 거쳐 속리산 천왕봉(天王峯, 해발 1058m)까지 이른다. 형제봉 최단코스는 갈령(葛嶺, 해발 445m)에서 오르면 2.0㎞이다.

    신선대를 출발하여 바윗길을 걷다가 등산로에서 좌측으로 약간 벗어난 바위 조망점에서 지나온 신선대와 앞으로 가야 할 824봉을 조망한다. 암봉인 824봉은 직접 오를 수 없고 산비탈을 따라 우회하게 된다.

    흐렸다 개었다가 하는 날씨가 참으로 변덕스럽다. 하루 동안에도 날씨가 이러할진대 사람의 마음인들 오죽할까? 우리네 삶도 이렇듯 흐린 날도 맑은 날도 있지 않은가? 그 모든 것들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사라지니 이러쿵저러쿵 탓한들 무엇하리.
  • ▲ 구병산 853봉으로 가는 계단 길.ⓒ진경수 山 애호가
    ▲ 구병산 853봉으로 가는 계단 길.ⓒ진경수 山 애호가
    824봉을 우회하여 습윤의 진흙 길을 내려간다. 간간이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치 가을에 다 익은 도토리가 떨어지듯 툭툭 소리를 내는데, 세월의 눈물 같기도 하다. 좌측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끼고 비탈길을 따라 이동한다.

    등산로의 나지막한 청록의 단풍나무가 붉은 가을 풍경을 예고한다. 안부에 도착하니 853봉이 0.7㎞, 구병산이 2.0㎞ 남았다고 알린다. 가파른 능선을 오르자 너른 암반이 잠시 쉬어 가라 한다. 암반 꼭대기에 올라 적암리 마을과 속리산휴게소를 내려다본다.

    이곳에서 뾰족하게 솟은 853봉으로 가는 윗길은 바윗길 벼랑으로 추락 위험이 있다. 그래서 안내판의 알림대로 아랫길 계단을 따라 이동한다. 계단의 난간 결합부에는 너트의 길이가 삐죽 튀어나와 있어 난간을 붙잡고 이동할 때 자칫 손을 다칠 수 있어 조심한다.
  • ▲ 구병산 853봉.ⓒ진경수 山 애호가
    ▲ 구병산 853봉.ⓒ진경수 山 애호가
    계단을 내려와 암릉을 우회하는 비탈길로 이동한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곳마다 암릉 등반을 하지 말라는 ‘위험표지판’과 ‘등산로 아님’의 푯말이 걸려 있다. 단애를 이룬 암릉 밑을 우회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자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좌측의 853봉을 향해 0.1㎞을 되돌아가는 방향으로 오른다. 흙길을 걸어 853봉에 도착하니 나무숲으로 아담하게 둘러싸인 돌탑과 ‘853봉’의 이름 판이 있고, 소나무 가지에 또 다른 이름 ‘학봉’이란 푯말이 매달려있다.

    이곳에서 지나온 824봉에서 신선대까지 이어지는 산등성의 몸짓과 앞으로 구병산을 지나기 전에 넘어야 할 815봉을 조망한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가 구병산 0.9㎞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라 815봉으로 하행한다.

    계속해서 속리산 탐방로처럼 산비탈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이동한다. 바위와 자갈이 뒤섞인 등산로를 조심해서 내려가다가 밧줄 구간을 내려간다. 직벽을 이룬 바위에는 발판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게 내려간다.
  • ▲ 판이 설치된 직벽 바위 하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판이 설치된 직벽 바위 하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직벽을 내려와서 다시 밧줄을 잡고 암반을 내려가면 절터 갈림길을 지나 구병산으로 향한다. 암벽으로 이뤄진 가파른 비탈길을 밧줄을 잡고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815봉 역시 비탈길로 안전하게 우회한다.

    다시 산등성이로 올라와 완만한 돌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이동하다가 구병리 갈림길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구병리까지 1.3㎞이고, 구병산까지는 0.5㎞이다. 구병산을 향해 능선을 오르는 도중에 누운 바위 위에 쌓아 올린 작은 돌탑에 돌 하나를 더 올린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암반을 만나면 우회하고, 걸을만한 암릉은 그대로 이동한다. 다부진 직벽 바위를 만나 밧줄을 잡고 올라 지나온 851봉, 853봉, 신선대를 차례로 내려다본다. 
  • ▲ 직벽 암벽을 오른 후 바라본 신선대.ⓒ진경수 山 애호가
    ▲ 직벽 암벽을 오른 후 바라본 신선대.ⓒ진경수 山 애호가
    능선을 따라 오르막길을 이동하다가 잠시 하행하여 위성지국 갈림길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0.1㎞를 오르면 구병산이다. 정상을 다녀와서 여기서 위성지국으로 2.6km를 하산하게 된다.

    너덜지대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밧줄을 잡고 암반을 오르고 나서 바윗길을 오르면 해발 876m의 구병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너른 암반 위에 잔돌이 널려 있고 북쪽을 제외하고 훤하게 트여 조망이 좋다.

    동쪽으로 지나온 산봉우리를 조망한다. 남쪽으로 구병산의 명물이 된 ‘부부 고사목’이 속리산휴게소를 배경으로 구병산을 지키고 있다. 죽어서도 저렇게 함께 할 수 있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쪽의 쌀개봉을 바라보니 진한 먹구름이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릴 것 같다.
  • ▲ 구병산 고스락을 지키는 부부 고사목.ⓒ진경수 山 애호가
    ▲ 구병산 고스락을 지키는 부부 고사목.ⓒ진경수 山 애호가
    구병산 고스락에서 위성지국 갈림길의 안부로 다시 돌아와 하산한다. 흙과 자갈이 뒤섞인 가파른 경사를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나무계단과 흙길이 반복되는 하행길이 이어진다.

    서서히 큰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계곡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울창한 숲은 하늘을 덮고, 푸른 이끼로 치장한 바위 사이로 깊은 골이 형성되고, 썩어가는 낙엽과 촉촉하게 적은 등산로는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이런 자연과 함께하는 홀로 산행은 고독하고 힘들기보다 산행할 때마다 커지는 기쁨을 느낀다. 이러한 산행의 기쁨은 살아가는 밑절미와 맞닿은 즐거움으로 승화된다.

    등산로 양옆으로 깎아지른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두 개의 커다란 암벽이 이룬 협곡 사이로 설치된 철계단을 내려갈 때 빗방울이 제법 굵어진다.
  • ▲ 협곡을 이룬 암벽 사이에 설치된 철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 협곡을 이룬 암벽 사이에 설치된 철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폭염 속에서도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공기를 접한다. 살아가면서 짊어진 짐이 버거워 힘들 때 이곳을 찾는다면 생명력이 가득한 구병산 숲과 계곡이 보듬어 줄 것 같다.

    철계단을 내려와 수 미터의 바윗길을 내려오면 우측으로 약간 앞으로 굽어진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그 바위 아래에는 작은 동굴이 두 개가 있는데, 이곳에서 쌀이 나왔다고 해서 ‘쌀난바위’라고 한다.

    제법 굵어진 빗줄기를 피해 쌀난바위 아래에서 잠시 머문다. 어린 시절 읽었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가 떠오른다. 소나기가 멈출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릴까? 우비를 챙겨입고 우중 하행을 할까?

    그동안 멜빵끈 조절기능이 고장 나고, 레인 커버도 찢어져서 불편했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을 위해 새로 장만한 써미트(summit) 고비 45 배낭과 등산 스마트폰 파우치를 테스트할 겸 후자를 택한다.
  • ▲ 구병산의 쌀난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구병산의 쌀난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빗속을 뚫고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을 하행한다. 우중 산행은 위험하고 에너지도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계곡을 잠시 벗어났다가 다시 계곡으로 돌아와 암반 길을 넘는다. 이제 계곡을 따라 설치된 데크로드가 바윗길을 대신한다.

    이후 목교를 건너 풀숲을 가르며 지나는 데 소낙비가 그쳤다. 잔뜩 물먹은 풀숲은 발길이 지나칠 때마다 물에 빠진 것처럼 등산화와 바지를 흠뻑 적신다.

    숲길을 빠져나와 산과 들이 어우러진 주변 풍광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다. 비 온 뒤에 수채화란 바로 지금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정표에는 구병산 고스락에서 1.8㎞를 내려왔다고 알린다.

    이정표 맞은편에는 속리산둘레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적암리 마을회관까지 0.84㎞라고 알린다. 적암리 마을회관 방향으로 좌우 논밭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길을 걷는다.
  • ▲ 들길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구병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들길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구병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비가 내린 산촌 풍경이 쾌청한 날보다 훨씬 부드럽고 청순하게 느껴진다. 들녘은 푸르름이 가득하고 싱그러움으로 충만하다. 티 없이 순수한 자연이 마치 포근한 어머니 품과 같다.

    지난 산행에서 불편했던 어깨 짓눌림이 새로 산 써미트 고비(GOBI) 45 배낭 덕택에 사라져서 편안한 산행이었고, 배낭이 우중 산행에도 끄떡없는 것이 대만족이다.

    산촌의 풍광을 만끽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적암리 마을 길로 들어선다. 길 좌측 밭 너머 병풍처럼 펼쳐진 구병산 봉우리가 우아하면서 고상한 몸가짐의 선비와 같다. 개울 다리를 건너 주차장에 도착하여 약 9.0㎞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