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즐거움을 주는 山行[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아산시 편
  • ▲ 등산로에 핀 겸손한 때죽나무꽃.ⓒ진경수 山 애호가
    ▲ 등산로에 핀 겸손한 때죽나무꽃.ⓒ진경수 山 애호가
    도고산(道高山, 해발 482m)은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서로 뻗은 연봉이 아산시와 예산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에 오르면 아산만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예로부터 서해안의 초계(哨戒)와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새가 되어 왔다.

    ‘도고(道高)’라는 이름이 도(道)가 높은 군자(君子)처럼 의연하다는 뜻인 만큼 이 산을 오르다보면 편안한 듯 어려움이 있고, 부드러운 듯 날카로움을 간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도고중학교 옆 주차장에 도착한 후 준비운동을 하고 우측의 도고중학교 정문을 가로질러 도고산 들머리의 계단을 오른다. 짙은 숲속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아카시아 향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다.
  • ▲ 소나무 숲길에 놓인 평상마루.ⓒ진경수 山 애호가
    ▲ 소나무 숲길에 놓인 평상마루.ⓒ진경수 山 애호가
    이 산의 고스락은 482m로 비록 낮은 산에 속하지만 들머리가 해발 25m에서 시작하므로 결코 얕볼 수 없다.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는 폭이 넓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운동시설이 있는 곳까지 오르막이 이어지다가 약간 내려갔다가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른다. 허벅지에 잔뜩 힘주어 오른 탓에 해발 135m 지점을 지난다.

    다시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마치 누에가 번데기로 탈바꿈하듯 참나무 숲이 서서히 소나무 숲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등산로에 잔돌로 쌓아올린 돌탑을 지나고 평상마루를 만나 잠시 쉬어 간다.

    나의 여유로움은 자칫 남의 고통이 될 수 있고, 나의 풍요로움은 자칫 남의 빈곤이 될 수 있으며, 나의 한가로움은 자칫 남의 격무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 ▲ 228봉 이후에 이어지는 가파른 돌길.ⓒ진경수 山 애호가
    ▲ 228봉 이후에 이어지는 가파른 돌길.ⓒ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소나무 숲길을 오르면 벤치가 있는 해발 156m 지점을 지난다. 때죽나무 꽃들이 수줍은 듯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예쁜 자태로 발길을 붙든다.

    다시 참나무 숲이 우거지고 밧줄이 설치된 각목계단과 돌계단을 헐떡이며 오르고 나면, 어김없이 완만한 산길이 이어져서 거친 숨을 진정시킨다.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알리는 듯하다.

    그래서 행복할 때는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만과 나태를 경계하고, 고통스러울 때는 행복했던 시절을 되찾기 위해 고전분투(孤戰奮鬪)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228봉에 도착하면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은 도고중학교 기점 1.1㎞ 지점이고, 이곳에서 도고산 고스락까지는 1.7㎞를 더 올라야 한다.
  • ▲ 331봉에서 소나무 숲 사이로 설치된 데크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 331봉에서 소나무 숲 사이로 설치된 데크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228봉 이후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뒤섞인 숲속의 돌계단과 가파른 돌길을 한 동안 오른다. 거칠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길 한가운데에 쌍 바위가 자리 잡고 있어 옆으로 비켜지나간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길을 걷는데, 등산로 주변으로 군데군데 돌덩이가 흩어져 있다. 도고중학교 기점 1.5㎞에 위치한 331봉을 지난다. 고스락까지는 1.3㎞를 남겨둔다.
     
    소나무 숲 사이로 설치된 데크 계단을 통해 가파른 비탈을 내려간다. 동막골 갈림길까지 내려간 후 다시 짙은 신록의 참나무 숲속으로 각목 계단을 밟고 오른다.

    도고산 고스락을 0.8㎞를 앞두고 날카로운 바위 무더기의 암릉이 눈앞에 다가온다. 암릉을 그대로 탈까하다 비탈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돌아간다.
  • ▲ 주능선 위치한 도고산 칼바위 조망점.ⓒ진경수 山 애호가>
    ▲ 주능선 위치한 도고산 칼바위 조망점.ⓒ진경수 山 애호가>
    비탈길에서 주능선으로 올라서면 삐죽삐죽 하늘로 솟은 도고산 칼바위 조망점에 이른다. 이곳에서 도고산 고스락과 덕봉산, 그리고 도고저수지와 마을들이 내려다보인다.

    들머리부터 시작된 짙은 신록은 고스락까지 이어질 것이라 생각해 조망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런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본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첫 만남에서부터 상대방을 재단하고 평가하여 선입감을 갖지 말라고 한다. 사골을 오랫동안 끓어야 진한 국물이 우러나듯이 사람의 진국도 역시 그러하다.

    조망점에서 돌길을 거쳐 0.3㎞을 오르면 해발 420m의 정자에 도착한다. 정자에는 ‘도고산국사정(道高山國師亭)’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이 정자의 명칭은 도고산 주봉인 국사봉(國師峰)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 ▲ 도고산 칼바위 조망점에서 바라본 도고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 도고산 칼바위 조망점에서 바라본 도고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정자에 오르면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직전의 전망점에서 확실하게 볼 수 없었던 도고저수지가 잘 조망된다.

    정자에 앉아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면서 ‘도(道)의 본체(本體)는 무형(無形)이요, 도의 작용(作用)과 영향(影響)이 유형(有形)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도리(道理)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도리를 지키는 것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

    예컨대, 조선 왕조를 개국한 이성계(李成桂)가 고려의 소부소감(小府少監) 김질(金秩)이 이 산에서 거적을 치고 한 사람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다가 순절한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도리를 지키는 국무위원들이나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 ▲ 도고산 국사정.ⓒ진경수 山 애호가
    ▲ 도고산 국사정.ⓒ진경수 山 애호가
    국사정을 떠나 완만한 흙길을 걷다가 두 개의 밧줄이 쳐진 안전 펜스가 설치된 암릉 비탈을 오른다. 밧줄 펜스 우측으로는 급경사의 낭떠러지다.

    해발 438m라고 알려주는 국가지점번호를 지나 경사진 산길을 오른다. 국사정에서 약 0.3㎞를 오르니 도고산 등산로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 부근은 돌무더기가 있는 너른 공간이다. 아마도 이곳이 봉수대(烽燧臺)가 있던 곳인가 짐작해 본다.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계단을 오르면 도고산(해발 485m) 고스락 돌이 세워져 있다. 계단 옆으로는 하얗게 빛바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등산로 안내도가 있다. 혹여 도(道)가 무명(無名)이라는 것을 일부러 알리려고 한 것일까, 무심(無心)한 것일까?
  • ▲ 도고산 고스락 전경.ⓒ진경수 山 애호가
    ▲ 도고산 고스락 전경.ⓒ진경수 山 애호가
    고스락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아산시 도고면 일대와 예산군 예산읍 일대를 조망한다. 고스락에는 긴 의자 두 개가 설치되어 있으나 5월 초순의 햇살이 제법 따가워 그늘을 찾는다.

    도고산 유래에 따르면, 서기 1390년(고려 공양왕 2년) 6월에는 서해안에 침입한 왜구가 이곳에 진을 치고 약탈을 자행하자 고려의 장수 윤사덕과 유용생이 이끈 관군이 적 100여명 전원을 섬멸하였다고 전한다.

    도고산 고스락에서 도고온천역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으나, 이번 산행은 올라온 등산로를 따라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봉수정을 지나 칼바위 조망점에 이르러 올랐던 비탈길이 아닌 암릉을 걷는다. 암릉 중간쯤에는 오석에 새겨진 작자 미상의 ‘道高山’과 ‘道高亭’의 시가 적혀있다.
  • ▲ 밧줄 한 줄의 펜스가 설치된 완만한 경사의 하산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밧줄 한 줄의 펜스가 설치된 완만한 경사의 하산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암릉의 우측으로 비탈에 설치된 두 개의 밧줄이 쳐진 펜스가 보인다. 다시 등산로로 합류되어 두 개의 밧줄로 만든 펜스가 설치된 참나무 숲속의 급경사 산길을 조심해서 내려간다.

    이어서 소나무 숲이 이어지다가, 다시 한 개의 밧줄로 만든 펜스가 설치된 참나무 숲의 완만한 산길을 내려간다. 다시 소나무 숲이 이어지면서 소나무 숲속으로 설치된 데크 계단을 통해 331봉을 오른다.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이 한 동안 이어지고 계속해서 평탄한 산길이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등산로 옆으로 수줍은 듯 피어있는 때죽나무 꽃에 이끌려 한 동안 머문다.

    그러면서 도(道)를 추구한다고 옛날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고, 도를 이해한다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도의 변화에 순응하며 세상의 조류를 따를 뿐임을 안다.
  • ▲ 331봉을 오르는 소나무 숲길의 계단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331봉을 오르는 소나무 숲길의 계단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오늘 도고산 산행을 통해 자연이 고정불변이 아닌 것처럼 도는 시간에 따라서,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수시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남을 안다. 이러한 도의 변화에 순응하며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 도를 추구하는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빠져 걷다보니 어느덧 아카시아의 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쳐지나 간다. 계단을 통해 등산로 입구로 내려와 도고중학교를 건너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로써 약 6㎞의 도고산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