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허 생원은 오늘도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 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 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단편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얘기이다. 

    허 생원은 물방앗간 처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왕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상대방인 조 선달이 듣든 안 듣든 허 생원은 늘 그랬듯이 우연한 기회로 물방앗간에서 마주친 시골 처녀와의 하룻밤 연애 이야기를 즐거이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생의 가장 멋있는 순간이었음을 되뇌는 것이다.
      
    요즘의 MZ 세대들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흔히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즐겨 얘기하는 군대 무용담도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의 추억과 마찬가지이다. 예비군 아저씨들 얘기를 듣고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맞는 것이지만 그들 중 역전의 용사가 아닌 사람이 없다. 한때는 모두 아주 잘 나갔던 군인 아저씨들이다. 특히 장교로 복무했다가 사회에 나와서 별 볼 일 없이 지내고 있는 사람일수록 잘 나갔던 그 시절의 군대 얘기만 나오면 침을 튀기며 군대 얘기에 열을 올린다. 신났던 군대 시절과 현실의 괴리가 커서 생긴 일종의 심리적 콤플렉스를 보상하려는 행동일 수도 있다.

    다만 허 생원의 ‘물방앗간 추억’이든 예비역 장교 아저씨의 잘 나갔던 ‘군대 추억’이든 현실적으론 다시 그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野, 169석 거대 국회의석 오만·교만 밖에 안 보여

    #2. 우리 헌정사에서 국회의 대통령 탄핵이 두 번 있었다. 그중 한 번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이다. 2004년 3월 12일,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의 의원 195명이 참석하여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기습적으로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에 소추의결서가 접수되었고,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두 달 동안 계속된 대통령의 권한 정지는 자동으로 해소되고, 탄핵사태는 종결되었다. 

    두 번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다. 2016년 12월 9일에 국회 재적 300명 중 여당 의원까지 가세한 234명이 찬성하여 탄핵이 가결되었다.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에 따라 이전까지 대통령직을 맡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격을 완전히 잃었고, 이후 국정농단의 책임자로 영어의 몸이 되었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에 의한 대통령 파면은 무어라 해도 큰 국가적 불행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와 정파에 대한 국민의 호불호는 더 명확해지고, 분열과 갈등은 더 커졌다. 불행한 탄핵 사건의 후유증으로 남겨진 상처가 너무 크다. 자유 우파에게 탄핵의 추억은 좌절과 불행이고, 종북 좌파의 탄핵 추억은 집권의 희망과 행복이다.

    #3. 촛불의 힘으로 권력을 얻은 문재인 정권은 좌파적 사회주의 정책으로 자유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크게 뒤집어 놓았다. 사회주의식 주택 정책은 ‘사글세> 전세> 대출을 낀 주택 구매’ 등의 과정을 거쳐 온전한 집을 마련했던 전통적 내 집 마련 과정을 부동산규제 3법이라는 괴물 법으로 뭉개버렸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일거에 뭉개 버린 거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 서민들은 삶이 무척 고단하다. 부동산 3법은 해괴한 논리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함께 좌파 정권의 재창출 실패의 큰 이유가 되었다. 

    좌파들은 그런데도 정책 실패를 원인으로 여기지도 않고 반성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여전히 169석이란 거대 국회 의석을 가지고 있다는 오만과 교만밖에 안 보인다. 충무공에겐 12척의 배만 남아 비장함이 있었지만, 그들에겐 169석의 거대 의석이 남아 있어서 비장함보다는 숫자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법 만들기를 밀어붙인다. 거대 의석을 무기로 입법 폭주를 하고 있다. 그들이 집권당처럼 보인다. 그렇게 만든 법이 결국 부메랑이 될 터인데 후환 걱정보단 대통령을 흠집 내 탄핵할 궁리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정은, 무기고 열어 놓고 ‘핵 협박’ …한·미훈련엔 ‘경기’

    #4.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야권은 시시콜콜한 온갖 흠집을 찾아내어 외교 참사라며 정쟁거리로 만든다. 문 정권은 “대화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라며 펼친 종북 친중 외교는 어떠했었나? 국민의 기억에는 문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중 혼밥 사건과 기자가 폭행당한 사건’, 김여정의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라는 욕설’만 남아 있다. 외교 참사는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나라 사이에서든 동네 골목의 꼬마들 사이에서든 평화는 힘이 있어야 얻을 수 있지 힘도 없으면서 대화만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대화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라는 문 전 대통령의 제스처에 돌아온 건 ‘삶은 소대가리와 특등 머저리’라는 북 김여정의 욕설뿐이었다. 

    문 정권 5년 동안 ‘대화로 평화를 지킨다’라는 핑계로 북한이 싫어하는 한미연합훈련을 도상(圖上)으로만 했다. 그 덕분에 군인들이 군대 생활을 편하게 했는지 몰라도 우리 군대가 당나라 군대가 될 뻔했다. 우파로 정권교체 후 올부터 다시 시작한 한미연합훈련에 북의 김정은이 경기(驚氣)를 일으키고 있는 것만 보아도 지난 5년간 문 정권의 국방 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지금 북의 김정은은 무기고를 열어 놓고 그들이 감춰둔 온갖 무기까지 꺼내서 대남 도발을 하는 중이다. 핵 협박은 잘 먹히지도 않고 인민은 굶고 있는데, 외려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니 경기(驚氣)가 일어날 법도 하다.

    ◇강성 야당 의원은 ‘탄핵의 추억’에서 꿈 깨야
     
    #5. 윤 대통령 취임 후에 한 달도 안 된 시점부터 강성 야당 국회의원들 입에서 탄핵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169석의 거대 의석을 가지고 있을 때 대통령의 흠을 빨리 찾아내어 탄핵해야 한다는 초조함의 표출로 보인다. 야당은 간 보기로 행안부 장관을 탄핵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 사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야당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는 사안으로 행안부 장관을 탄핵했고 헌법재판소로 탄핵 판결을 넘겼다.

    야당은 외교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 탄핵도 거론하고 실제로 탄핵 절차에 돌입할 태세이다. 야당 강성 의원들은 윤 대통령 임기 시작 때부터 탄핵을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 들먹였다. 대통령 자리는 자기들만 해야 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더하여 여자 대통령을 손쉽게 탄핵하여 권력을 잡더니, 아무 때나 탄핵을 해도 되는 걸로 착각하고 탄핵을 즐기려는 모양새이다. 그들은 탄핵의 즐거운 추억에 빠져있다. 

    탄핵이 야당 인사들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은 콩가루 정치판에 휘둘리는 정정 불안으로 아프리카 나라들처럼 될 터이다. 그게 가당키나 할 일인가? 국민이 그걸 그냥 보고만 있을까? 우방국들이 용인하겠는가?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의 추억’처럼, 예비군 아저씨의 ‘군대 추억’처럼, 그런 운 좋은 추억은 일생에 한 번 정도 올까 말까 한데 탄핵 사태가 두 번이나 오겠는가? 국민이 그걸 용납하겠는가? 우국지사도 아닌 탄핵지사가 되었다간 내년 총선에서 동티가 날 것이므로 탄핵을 입에 달고 다니는 강성 야당 의원들은 ‘탄핵의 추억’에서 꿈 깨야 한다. 국가 원수의 탄핵은 한 번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