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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 시사칼럼] 삼권분립의 ‘민주 공화정’이 위태롭다

입력 2019-12-13 06:27 | 수정 2019-12-13 18:06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참여정권 때 한 명문 사립대학교 총장이 청와대 비서실장 직을 제의받았다. 총장의 임기가 상당히 남았음에도 그는 미련 없이 청와대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의 총장이 권부의 핵심인 청와대 비서실장직 제의를 고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소위 굴지의 명문대학 총장을 했던 인사들은 임기를 마친 후에 국무총리 정도의 벼슬에나 나갔다. 총장 임기 중에는 그렇게 벼슬자리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정권에서도 그런 제의를 하진 않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아탑 학자의 긍지가 있었다는 게다.

그 총장이 임기 남은 총장 자리를 미련 없이 내 던지고 청와대비서실장 자리로 옮기면서 그때 이후로 고고한 학(鶴)처럼 보였던 상아탑의 수장인 대학 총장 권위가 청와대비서실장 아래 세속(世俗)의 서열로 추락했다. 대학 총장의 권위가 청와대 비서실장의 권력 아래에 있다는 것을 총장이 국민에게 행동으로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해마다 졸업 시즌이면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미래의 등불이 됨직한 명사들 연설이 SNS에 올려진다. 가끔은 미국 대통령의 졸업축사도 올려진다. 적어도 1980년대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졸업과 입학 시즌에 소위 3대 명문대학 총장의 축사가 유명일간지 첫 면에 실렸었다. 그 시절 유력일간지에 대학 총장의 졸업식 축사가 실렸다는 건 적어도 대학의 총장은 국민적 존경 대상이었다는 의미이고, 총장 축사는 우리 사회 지도자의 교훈적 메시지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며, 대학 총장의 권위를 우리 사회가 그만큼 인정했다는 의미였을 게다. 

세태가 바뀌어 사회 지도층의 권위가 사라지는 시대이긴 하지만 문재인 정권 들어서 그 도가 더 심해지는 경향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유난히 파격적 인사가 많았다. 경륜과 능력이 충분한 인재보다는 소위 적폐청산이라는 명분과 정권 코드 맞추기 인사가 파격의 도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 각 부처에서 기존의 행정체계나 조직질서가 흐트러질 정도의 무리한 인사 결과로 정책이 난맥에 빠지고 정권 후반기에 와서 나라 전체가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지금 차기 국무총리 자리에 직전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의원이 하마평에 올라 있다. 애초에 하마평에 올랐던 김진표 의원이 민노총 등에서 친노조 성향의 인사가 아니라고 반대를 한대서 지명이 미뤄지더니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의원을 지명한다는 기사가 나돈다. 

본인이 처음에는 고사했다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질 것 같은 모양새이다. 고희 연배의 정세균 의원의 경륜을 보면 국무총리 자격은 넘치겠지만 삼권분립이 엄연해야 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입법부 수장을 지낸 인사가 행정부의 대통령 아래인 국무총리를 굳이 맡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려되는 바가 크다. 

국회의장직을 마치면 정계를 떠나는 게 그동안의 관례였지만 정세균 의원은 계속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의지로 지역구 관리를 해온 터라 국무총리라는 자리도 그리 나쁘진 않다고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탈권위가 세상의 추세라 하더라도 넘어선 안 되는 금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정세균 의원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벼슬자리의 위계나 권위가 무너지고, 최고의 직에 이르면 물러날 줄 아는 미덕의 관례가 그렇게 하나하나씩 사라진다면, 우리의 국격과 정체(政體) 질서가 무너지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정신도 함께 무너진다. 

이미 위계가 무너진 사법부의 권위에서 보듯, 입법부 수장을 역임한 인사가 행정부의 수장 아래로 다시 입각한다면 삼권분립의 균형이 무너지고 민주 공화정 정신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현명한 판단과 처신이 그래서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삼권분립이 바로 서야 민주 공화정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삼권분립의 민주 공화정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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