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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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백수는 사람의 욕심이 끝도 없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그 욕심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진다. CD를 처음부터 다시 듣는다. 노래 제목은 백 세 인생이고,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이애란이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맞는 말이다. 100세 시대인데, 육십에 간다는 건 너무 이르다. 칠십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할일이 많은 나이다. 최백수는 충분히 공감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60세에 저승사자에게 불려간다는 생각을 하자 김병우 교육감이 떠오른다.
    너무 억울해서 다리를 절룩거린 걸까? 천신만고 끝에 사법 족쇄로부터 풀려나서 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다는 소문이다. 비로소 저승사자의 굴레에서 벗어난 김병우 교육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기분이다.
    얼마나 홀가분할까? 살맛이 날 것이다. 비로소 교육감이 바로 이런 것이란 기분을 만끽할 것이다. 갑자기 김병우 교육감의 얼굴이 잘생겨 보인다. 탤런트 뺨치는 얼굴이다. 노래는 계속된다.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나 같으면 팔십 정도면 서운하지 않을 텐데…. 앞으로 12년이다. 12년만 살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임각수 괴산군수다. 민선으로 3선을 했으니 천명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원종 충북지사는 3선을 눈앞에 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임각수 군수는 욕심을 부리다가 고생을 하는 걸까? 만약 2선 만하고 물러났으면 이런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죽는 사람 입장에선 팔십이라도 불만일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이니 욕심을 부리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최백수는 고개를 끄떡인다. 노래는 점점 파렴치해지고 있다.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이건 완전히 배짱이다. 역할을 망각한 것이다. 얼마나 사느냐는 판단은 염라대왕이 하는 것이고, 인간은 그저 순종할 따름이다. 그런데 알아서 하겠다니? 내가 만약 염라대왕이라면 괘씸죄에 걸겠다는 표정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얼마나 파렴치한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 자신도 아는 모양이다. 변명할 말이 없으니까 아리랑 타령으로 능청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는 점입가경이다.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자존심 상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텐데 또 왔냐고 전해라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극락왕생할 날을 찾고 있다 전해라“

    백 세까지는 그래도 봐줄 수 있다. 백 세 시대라고 하니까…. 그런데 말투가 그게 뭐냐는 표정이다. 특히 알아서 갈 텐데 왜 또 왔느냐고 전해라는 구절이 건방지다. 주객이 바뀌었다. 저승사자를 혼내는 말투라고 최백수는 생각한다.

    “백 오십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나는 이미 극락세계 와 있다고 전해라“

    이쯤 되면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노망을 부리는 것으로 봐야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요“
     노래는 끝났다. 어째서 이런 노래가 유행하는 걸까? 불로장생의 명약을 찾아 천하를 누빈 진시황의 노욕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다는 뜻 아닌가. (매주 월수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