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시사칼럼] ‘맨입’으로 될 일과 안 될 일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 최종편집 2016.09.27 15: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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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아는 사람한테나 낯선 사람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야 될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럴 때, 부탁을 받은 사람이 농반진반으로 “맨입으로 되겠어?”라고 말한다. 그 부탁이 매우 중요한 일이면 절대로 맨입으로 안 될 테고, 부탁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후일을 생각해 가볍게 들어주고 인심을 얻을 요량이면 맨입으로도 부탁을 들어줄 터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맨입’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아니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설명돼 있다. ‘맨입’에 대한 영어 예문에서 ‘Nothing comes free in life’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서양에서도 맨입 청탁은 사절이고, 모든 청탁에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요즘 한 공중파 방송에서 내보내는 ‘옥중화’라는 주말 사극 드라마를 보면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을 밀도 있게 잘 표현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권력자의 못된 짓도 흥미있게 포장돼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웃어넘기긴 하지만 만일 극 중의 일이 현실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다르고 배경이 다른 극 중 이야기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정치 상황과 갈등 구조가 오늘날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우리 민족의 정치적 역량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도 진화하지도 않은 것 같다. 드라마에서도 맨입으로는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당연지사인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의 정치가 극중 이야기 같은 정치가 된다면 나라의 미래가 어려워질게 뻔해서 걱정이 된다.

지금 나라 안은 국회의장의 ‘맨입 발언’ 파동이 정치바닥을 시끄럽게 흔들고 있다. 야당의 발의로 김재수 농수산부장관 해임건의안이 상정되고, 야 3당만의 표결로 해임건의안이 의결되는 과정에 녹취된 정세균 국회의장의 ‘맨입 발언’이 공개되면서 사단이 났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기간 연장) 아니면 그 어버이(어버이연합 청문회)나 둘 중 하나 내놓으라고 했는데 절대 안 내놔. 그러니까 그냥 맨 입으로, 안 되는 거야, 지금”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국회의장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금도를 넘어섰다면서 여당대표가 거세게 항의하고 국회의장 사퇴 시까지 단식투쟁을 한다면서 정치판이 난리법석이다. 

그렇지 않아도 울고 싶었는데 국회의장이 뺨을 때렸으니 여당이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기에 딱 좋은 빌미가 됐다.

정치판에서 맨입으로는 되는 일이 없다는 건 공공연한 얘기였지만, 나라가 위태롭고 국제정세가 엄중한 시기에 하지 않아도 될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의결 같은 짓을 저지른 야당의 치졸함이 일을 크게 벌린 게다.

‘맨입 론’으로 흥정하면서 국민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안건을 끼워 넣는 것이 마치 유능한 협상 행위를 하는 걸로 치부하는 정치판의 민낯이 국회의장의 녹취록에서 그대로 드러나서 국민들은 혀를 차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과거 야당대표시절에 천안함폭침에 대해서도 북한의 소행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인사였다. 국회의장인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생각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필자의 견해로는 아마도 북한의 소행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아직도 노력을 하고 있을 거라 추측된다. 그래서 정치적 중립성 여부가 심히 의심되는 국회의장의 묵시적 편향행보는 남은 2년의 임기동안 국회를 더 시끄럽게 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그런 우려를 불식하고 국민들에게 정세균도 이 나라의 훌륭한 정치인이고 지도자가 될 자질과 품격을 지녔다는 인상을 주려면 ‘맨입’ 사태를 대충 ‘퉁’치면서 얼버무리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정세균 의장이 꿈꾸는 세상과 정치적 목표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그의 말대로 맨입으로 해결 못할 처신을 한 것이므로 그의 맨입 발언 파동은 이제 맨입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게 돼버렸다. 맨입으로 넘어가지 말고 ‘쿨’하게 대가를 치르겠다는 전향적 생각으로 지금의 정치 난국을 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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