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三月에 만나는 정상의 상고대 일품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북 상주시 편
  • ▲ 형제봉 정상의 상고대.ⓒ진경수 山 애호가
    ▲ 형제봉 정상의 상고대.ⓒ진경수 山 애호가
    형제봉(兄弟峯, 해발 832m)은 충북 보은군의 속리산면 모막리와 경북 상주시 화북면·화남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두 개의 봉우리가 형제처럼 나란히 솟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갈령(경북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산23-1)으로 형제봉까지는 왕복 약 4.0㎞ 정도이다. 형제봉은 갈령의 서쪽에 자리하고, 동쪽에는 청계산(해발 877m)이 있다. 청계산은 그 모양이 두리뭉실하게 생겼다 하여 두루봉이라고도 부른다.

    갈령(葛嶺, 해발 465m) 표지석을 지나 곧바로 가파른 산길을 치고 오르면 헬기장에 닿는다. 등산로는 마사토로 이뤄졌고, 그 위를 갈색 낙엽이 덮고 있으며, 또 그 위에 잔설이 희끗희끗하다. 이후 산길이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서서히 산허리를 펴기 시작한다.
  • ▲ 패크맨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패크맨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출발하여 약 0.4㎞를 오르자 조망 바위가 있는 기암 군락지에 이른다. 정면으로 보면 고래 입 모양과 같고 옆에서 보면 영락없는 패크맨 모습이라 ‘패크맨 바위’라 부르기로 한다. 그 옆에 조망 바위에 올라 눈과 안개에 싸인 희멀겋게 보이는 청계산 능선에 눈을 일치시킨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산등성이 어제 앓았던 두통을 싹 가시게 한다. 그래서 자연은 만병통치약인가보다. 또 하나의 바위가 눈길을 끄는데, 생김새가 길게 늘어진 코와 같아서 ‘코주부 바위’라 명명하고 기암 감상으로 지체한 발걸음을 채근한다.

    험준한 바위들이 길을 막아서니 산비탈로 돌아 오른다. 능선 위에서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머리 위에 떨어질 것 같은 지렁이처럼 생긴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자리한다. 조각가가 섬세한 솜씨로 다듬어 놓은 훌륭한 작품이나 진배없다. 참으로 자연의 오묘함과 신비로움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다.
  • ▲ 새끼 곰을 안은 엄마 곰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새끼 곰을 안은 엄마 곰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이어 계곡 길을 건너서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데, 눈이 얼음을 살짝 덮고 있어 조심해 오른다. 고도를 높일수록 쌓인 눈의 깊이가 깊어진다. 산비탈에 걸쳐 있는 ‘솥뚜껑 바위’를 지나고 백설로 분칠한 바위 군락의 한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를 보니 당차다.

    다시 능선에 닿은 후 바위 지대를 통과해 오르자 마치 새끼 곰을 안은 엄마 곰을 닮은 ‘곰바위’를 만난다. 잠시 내려가는가 싶더니 이내 가파른 능선을 치고 오르는데 몸이 후끈대며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오름의 기세가 하도 당당해 산봉우리의 생김새가 오히려 궁금해진다. 그러나 갑자기 산비탈로 접어들면서 산봉우리를 우회하여 능선을 오른다. 능선에 닿으니 우뚝 솟은 청계산과 그 중턱에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임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 ▲ 암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암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갈령 기점 약 1.1㎞ 지점에 이르자 소나무 숲에 숨겨진 암릉 구간이 속살을 드러낸다. 수북하게 쌓인 눈으로 위험한 바윗길을 걷는다. 능선 양쪽은 급경사의 낭떠러지기라 칼날 위를 걷는 듯 머리털이 곤두선다.

    바위를 내려가고 비켜 돌아가는가 하면 바위 위를 걷고 내려서기를 반복한다. 마치 한 치 앞을 모르는 우리네 삶에서 마음과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수 있으니, 항상 업(業)을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바위 구간의 끝자락에서 암릉을 내려가면서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형제봉과 그 능선을 조망한다. 마치 세필로 잘 그린 수묵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이어 능선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암반을 내려간다. 습윤과 잔설이 덮여 있어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서 하행한다.
  • ▲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바위 구간이 끝나고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오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길이라 평상시 같으면 쏜살같이 내달을 수 있겠지만, 눈길을 걸으니 힘이 곱절은 더 들고 발걸음이 더디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든지 에너지가 얼마큼 소비되든지 그건 산행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춘삼월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설산을 걷고 발걸음마다 온새미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할 따름이다. 나를 돌아보는 행복으로 깊게 스며들어 간다.

    나에게 얼마만큼 시간이 주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지금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이러한 실천의 용기와 지혜는 지금처럼 자연에 동화되어 분별없이 하나로 될 때 생기는 에너지로부터 얻는다.
  • ▲ 갈령 삼거리.ⓒ진경수 山 애호가
    ▲ 갈령 삼거리.ⓒ진경수 山 애호가
    뿌드득뿌드득 소리를 내며 얼마나 걸어 올랐을까? 들머리로부터 약 1.3㎞ 지점에 이르니 갈령 삼거리에 도착한다. 나뭇가지에는 알록달록 등산 리본이 수북하게 매달려 있다. 이정표는 비재(3.6㎞)와 천왕봉(6,5㎞)·형제봉(0.7㎞)을 안내한다.

    메마른 입에 감로수로 생기를 불어넣고, 후끈 달아오른 몸뚱이의 열기로 쏟아지는 땀과 그로 인해 시야를 방해하는 안경의 성에를 닦아낸다.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보이는 형제봉을 향하여 내리막길을 내려섰다가 이내 완만한 길을 걷는다.

    한동안 이어지는 편안한 길을 걸으니 산행에선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이어 산봉우리를 넘지 않고 비탈길로 우회하여 진행하니 산책길을 걷듯 사뿐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인생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인생을 살다 보면 어찌 좋은 날만 있을까?
  • ▲ 형제봉의 곧추선 산허리.ⓒ진경수 山 애호가
    ▲ 형제봉의 곧추선 산허리.ⓒ진경수 山 애호가
    산길은 형제봉 정상을 눈앞에 두고 바위 능선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허리를 곧게 세운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밟고 오르는데, 어디가 등산로인지 등산 리본이 아니면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항해하는 배가 등대 빛을 만난 것처럼, 등산 리본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이제 눈길을 한발씩 옮겨가며 정상을 향해 가파른 길을 오른다. 그러나 이 산은 정상을 호락호락 내어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아 성공을 눈앞에 두고는 뜻밖에 난관에 부딪히기 일쑤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이 길을 오를 뿐이다.

    얼마나 올랐을까? 활처럼 휘어진 지나온 능선을 내려다본다. 그 뒤로 병풍처럼 청계산이 안무에 휩싸여 바람을 막고 섰다. 암릉 곁에 붙은 오솔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찬바람을 맞으며 활엽수 지대에 곧고 당당하게 솟은 적송이 돋보인다. “나답게 사는 행복”이란 이런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 ▲ 형제봉 암봉의 상고대.ⓒ진경수 山 애호가
    ▲ 형제봉 암봉의 상고대.ⓒ진경수 山 애호가
    정상에 거의 이를 무렵부터는 거대한 바위가 암릉을 이루며 고즈넉하게 누었다. 산길도 험준한 암릉 대신에 그 옆으로 우회해 길을 낸다. 암릉 끝자락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형제봉 정상 바로 아래에 닿는다.

    그 순간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하고, 눈은 휘둥그레지고, 입은 떡 벌어져 감탄사만 연발 내뿜는다. 기대하지 않던 상고대가 펼쳐진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이 눈꽃을 툭툭거리며 떨군다. 바람이 워낙 세차서 상고대가 사라질까 걱정된 마음에 연실 카메라 셔터를 눌려대며 환희에 적는다.

    지금까지 험준한 산세와 눈길을 밟고 올라온 보상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이제 뾰족하게 선 형제봉 암봉으로 올라선다. 정상을 이루고 있는 웅장한 바위를 빙글 돌아 오르니 구름과 안무로 하늘과 산등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것이 분별이 없고 차별이 없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자연이 펼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자니 그 위대한 풍광에 경외심이 든다.
  • ▲ 형제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 형제봉 정상.ⓒ진경수 山 애호가
    층층 바위 위에는 눈꽃을 피운 나무를 배경으로 누르스름한 표지석 머리끝이 보인다. 하심(下心)으로 눈 덮인 층층 바위를 밟고 올라서자 세찬 바람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다. 산 아래에서 치밀어 오는 대찬 바람이 오는 봄을 쫓아낼 셈인가보다.

    사방으로 막힘 없이 내달리는 전망에 마음이 탁 트이지만,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과 휘날리기 시작하는 눈발이 긴장감을 더한다. 속리산 천왕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보이질 않고, 청계산만이 희미하게 지켜보고 있다. 사라진 천왕봉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정상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길, 그 사이에 눈과 가슴으로 형제봉이 주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오묘함, 그리고 극치의 아름답고 장엄한 풍광을 고스란히 담는다. 정상에서 내려와 산비탈을 걷기 시작하자 바람은 잔잔하게 사그라졌지만, 눈발은 점점 더 품 안으로 파고든다.
  • ▲ 장각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장각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정상에서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컵라면과 커피 한 잔의 여유로움을 즐기려 했지만 아쉬움을 안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갈령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 도착하니 눈발이 그친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산속 날씨, 변화무쌍한 산 정상의 날씨도 이럴진대 사람의 마음인들 오죽할까 생각이 든다.

    갈령 삼거리에서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암릉 구간에 접어들기 전에 만나는 암반에서 따뜻하게 컵라면을 즐긴다. 그런 여유로움으로 형제봉을 바라보지만, 아직도 구름에 가려 형체를 온전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후 암릉 구간을 지나서 고도를 낮추며 하행하는데 눈이 제법 많이 녹았다.

    갈령에 도착하여 4.9㎞ 떨어진 장각폭포로 향한다. 장각폭포는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시작한 계류가 장각동 계곡으로 흘러들어 6m 높이의 절벽에서 덜어지며 웅장함 이룬다. 장쾌한 낙수 소리와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노송과 금란정이 훌륭한 비경을 자아낸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