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Daily 인터뷰] 2016년 진천서 볼링 입문 ‘태극 마크’달고 맹활약23년 세계대회 金4 등 100여개 메달…올해 IBSA 美 대회 참가2028년 미국 올림픽 금메달·장애인·지역 청소년 볼링 프로그램 ‘구슬땀’ “‘생거진천’ 실감… 국가대표 넘어 70세까지 선수로 뛰며 살고 싶다”
  • ▲ 진천에서 활양중인 장애인 볼링선수 이근혜는 8년 연속 국가대표에 선발됐다.ⓒ뉴데일리
    ▲ 진천에서 활양중인 장애인 볼링선수 이근혜는 8년 연속 국가대표에 선발됐다.ⓒ뉴데일리
    충북 진천에서 25년 째 살고있는 장애인 볼링 국가대표 이근혜(51· 유영제약 소속)는 지난해 8월 영국에서 열린 IBSA월드게임(세계시각장애인 경기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휩쓸었다. 이 대회는 4년마다 열리는 시각장애인 스포츠 종합대회로 전 세계 70여 개국, 약 120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2022년에는 세계볼링투어 IBSA아시아 태국오픈 파라볼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땄다. 그는 지난해 11월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볼링 개인전 및 2인조 부문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6년 장애인 볼링에 입문한 그는 월등한 기량을 선보이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8년 ‘Para Bowling Tour-Hong Kong’에선 최초 퍼펙트(300점)를 기록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고,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선 혼합싱글 TPB2(시각)와 복식에서 금메달, 3인조에서 동메달을 땄다.

    근혜 씨는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8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지난해 말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27세 선수와 시합에서 당당히 대표로 선발됐다.

    근혜 씨는 지난해 진천에서 장애인 볼링 교실을 열었다. 볼링장에서 훈련을 하며 시간을 내 청소년과 성인 10명 씩을 지도했다. 

    볼링장에서 훈련중인 근혜 씨를 만났다.

    근혜씨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 올해 파리에서 열리는 2024 장애인올림픽대회에는 볼링 종목이 없기 때문에 4년 뒤 미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꼭 걸고 싶은 꿈. 그리고 고향이 경상남도 함양인 그에게 ‘제2의 고향’인 진천군에서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도자로서,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에게 볼링을 가르쳐 기업 소속  선수로 선발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근혜씨는 두 가지 꿈을 위해 오늘도 볼링장에 나와 훈련을 하며,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다음은 근혜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는 시각 장애가 있어 보이지 않는데.

    “저는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망막의 기능이 소실되는 망막색소변성증이 있습니다. 시각세포가 손상되면서 점차 시야가 좁아지고, 심해지면 시력을 잃게 됩니다.

    저는 교정 시력이 0.02로, 시야가 10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부딪히고,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1 년에 깁스를 한두 번은 꼭 하는 것 같아요. 발목은 부러지거나 인대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힘듭니다. 장애인 볼링에 입문할 무렵인 2016년에 중심을 잃으면서 쓰러져 도로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어요. 차도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저를 지나던 중학생이 119에 신고해 다행히 화를 면했어요. 그때 시력이 많이 나빠졌어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에 사람이 있으니까 그 방향을 집중해 대화를 합니다. 제가 시력을 잃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사물이 보였기 때문에. 사회 생활에 대한 인지를 하는 일명 ‘활동 시야’가 다른 사람보다는 좀 좋은 편입니다. 그나마 다행이죠.”
  • ▲ 이근혜가 래인 위에서 멋진 투구를 하고있다.ⓒ 뉴데일리.
    ▲ 이근혜가 래인 위에서 멋진 투구를 하고있다.ⓒ 뉴데일리.
    -진천으로 이사를 오게된 계기는.

    “서울에 살다가 2000년에 왔어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저는 패션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아버님을 도와 건축 자재 관련 사업을 했어요. IMF 외환 위기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이전할 곳을 찾던 중 진천에 터전을 마련하게 됐어요. 남편은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사업을 하고 있고, 저는 진천에서 2017년부터 유영제약 소속 볼링 선수로 할동하고 있어요.”

    -진천에 정(情)이 많이 든 이유는.

    “처음에 서울에서 와서 말 그대로 ‘생거진천’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어요. 교통이 편리하고,사람들과 동네가 무척 정스럽고 포근했어요. 진천군과 장애인체육회에서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지원이 이어지고, 선수 활동을 기반으로 유영제약 선수에 발탁이 됐어요.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된거죠. 유영제약에서 선수로 할동하는 동안 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 앞으로 국가대표를 넘어 시니어 선수 활동까지 70세까지는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요.”

    -볼링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진천에 이사를 와서 탁구를 좋아해서 탁구 선수로 장애인 체전에 몇 번 나갔어요. 그러던 중 그냥 취미 삼아 한 두 번 볼링을 친 것이 계기가 됐고, 2013년 무렵부터  4~5년 정도 열심히 했어요. 2016년에 장애인 볼링에 입문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비장애인으로 볼링을 잘 했어요. 그때는 한쪽 눈이 어느 정도 시력이 있는 상태라 사람들이 저에게 장애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시력이 점점 더 나빠졌고, 장애인체육회 등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볼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일상생활에 많이 불편할 텐데. 

    “많이 부딪히며 삽니다. 밤에는 불빛을 따라가기 때문에 좀 괜찮은데 해가 넘어가고 어두워지기 전인 4시에서 6시 사이가 좀 힘들어요. 저는 발 밑을 잘 못 보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시야가 좁기 때문에 발 밑을 보면 옆을 못 보고, 옆을 보게 되면 다른 쪽을 못 보니까. 그래서 늘 긴장을 하다 보니 목 뒤 근육이 늘 경직돼 있어요. 또 제가 뚜벅이라서 항상 가방을 메고 다녀야 하니 더해요. 짐을 들고 이동할 때는 불편이 장난이 아니죠. 그래도 저보다 더 심한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내하며 살아요.집안에서는 TV를 초대형으로 바꿨는데도 시청이 어려워져 불편합니다. 청소를 깨끗이 못하는 것도 처음에는 무척 신경 쓰였어요. 어느 날 ‘대충 살면 어때’라는 마음을 먹게 되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집에서 설거지를 깨끗하게 못하고, 손의 느낌으로 그릇을 오래 닦다 보니 일반 가정보다 수도 요금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하하.”

    -시야가 불편한데 볼링이라는 운동이 어떻게 가능한지.

    “맞아요. 볼링은 공을 긴 레인(lane)을 따라 굴려 삼각형 모양에 정렬돼있는 10개의 핀을 쓰러뜨리는 운동입니다. 중심을 잡고 공을 던지는 것도 힘들텐데 어떻게 멀리 있는 핀을 보이지도 않는데 잘 쓰러뜨리는 지 궁금해하죠. 저는 그래도 시력이 조금 남아있을 때 볼링을 시작했어요. 기본적인 자세는 그 때 완성됐다고 봐야죠. 저는 핀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희미한 물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레인에 표시된 스팟(spot)을 보고 자세를 잡아요.

    볼링은 레인 패턴이라고 해서 매번 바뀌거든요. 이 부분에서 기술과 응용이 필요해요. 저는 발 밑에 점을 보고, 그 다음에 신발의 각도로 조절하고, 어깨 각도, 팔 각도 등을 조절한 후 종합해서 투구를 합니다.“

    -유영제약 소속 선수로 입사한 계기는.

    2018년은 장애인 운동선수들이 직장을 구할 수 없던 때였어요. 그때 마침 진천의 사회적 기업인 유영제약에서 장애인 선수 3명을 받아줬어요. 그때 채용된 장애인 선수는 수영 1명, 청각장애인 1명과 제가 채용됐어요. 수영 선수는 이적을 했고, 청각장애인 볼링 국가대표와 저는 오래 있었죠. 저희들은 전문 선수이다 보니 섭외가 해마다 많이 들어와요. 좋은 조건이 제시되면 다들 떠나죠. 그러나 저는 첫 직장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또 다른 꿈이 있어서 지역을 지키고 있어요.”

    -‘기업에서의 꿈’이란 무엇인지.

    “지역에서 장애인 선수들을 훈련시켜 취직으로 연결시켜 주고 싶어요. 특히 자폐 장애인 볼링 선수를 지도해 저희 회사나 다른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 싶어요. 지역에 그런 선수가 아직 한 명도 없어요. 저를 받아주고, 오늘의 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은 진천군에 보답을 하며, 진천에 살고 싶었어요. 다행히 제가 1년여 동안  지도를 한 장애인 선수를 1명 추천했어요. 몇일 있으면 결과가 나와요. 잘됐으면 좋겠어요. ”

    -8년 연속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제가 지금까지 딴 메달이 100개가 넘어요. 최근에는 1년에 10개 이상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어요. 오랫동안 유영제약 소속 선수로 활동하면서 성적이 거의 최고라고 할 정도로 계속 좋아요. 올해도 장애인 국가대표 8년 차로 계속 선발됐어요. 그런 일은 거의 드문 일이죠. 저도 노력을 많이 했어요. 특히 올해는 국가대표를 한 명밖에 안 뽑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선발됐어요. 시각 부분에서도 대표 선발에 세 유형이 있어요. 저는 그 중 한 유형에서  선발된 거예요. 선발전 하는 날 컨디션 안 좋으면 그냥 끝나는 거잖아요. 작년부터 부상도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선발됐어요. 이 모든 것이 유영제약 소속 선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볼링에서 선수들은 퍼펙트 스코어를 목표로한다. 특히 장애인 선수라면 더할 텐데.

    ”장애인 볼링 선수라면 퍼펙트(300점) 플레이가 꿈이죠. 저는 퍼펙트를 한 15번 정도 기록했어요. 시각장애인 최초로 제가 공식 대회에서 퍼펙트를 쳤어요. 2019년도에 홍콩대회에서 퍼펙트를 기록했고, 2017년에도 일본 대회에서 세미 퍼펙트라고 하는 299점을 기록했어요. 지체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은 퍼펙트를 기록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각장애인 중에는 아직 없어요. 그만큼 어려운 점수입니다.“
  • ▲ 볼링 국가대표 이근혜는 4년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꿈꾼다.ⓒ 뉴데일리.
    ▲ 볼링 국가대표 이근혜는 4년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꿈꾼다.ⓒ 뉴데일리.
    -올해 진천에서 열리는 도민체전 준비는.

    “도민체전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이 운동을 하면서 사회적인 욕구를 가지게 되고, 체전을 통해 서로 화합하고 즐기는 대회여서 의미가 커요. 진천은 볼링을 하는 인구가 적어서 걱정했는데 작년에 체육회에서 볼링 교실을 열어줬어요. 아무래도 제가 국가대표 선수다 보니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겨서 그런지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많았어요. 그 덕분에 볼링 교실 선수들 중에 도민 체선 선수가 뽑혔어요. 진천에서 지도자로서 만들어낸 소중한 결과여서 무척 행복합니다. 벌써부터 대회가 기다려집니다.”

    -국가대표로서 중요한 경기가 있는지. 

    “전국체전, IBSA 미국 세계대회, 동남아시에서 열리는 2024 Para오픈 등 많아요. 국가 대표로 선발되면서 IBSA(월드시각장애인경기대회) 출전권을 땄어요.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도민체육대회보다 더 큰 대회가 전국체전입니다. 제가 지난해에는 1등을 하지 못했어요. 대회 관계자들이 늘 1등을 하던 제가 1등을 못하니까 ‘이근혜도 이제 끝났나 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사실 지난해에는 훈련량이 너무 많고, 부상이 었었어요. 그래서 훈련을 3분의 1 정도로 줄였어요. 올해는 부상 관리와 함께 운동량을 너무 과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중 입니다. 올해 참가하는 모든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지도자로서 계획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우선 진행하고, 진천군 청소년수련관에서 운영하는 특별 프로그램 ‘두런두런(Do run Do run)운동해’를 진행하고 있어요. 작년 12월에 시작해 이제 2회 차를 했어요. 아무래도 국가대표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제가 장애인이지만 아이들이 국가대표, 뭐 이런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30명이나 참여해요. 아주 호응이 좋아요. 많은 아이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있는 날은 제가 거의 쓰러질 정도죠. 목소리가 터져라 외치면서 교육을 하다보니 힘이 들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하려고 해요.”

    “볼링은 신체적, 사회적 측면에서 다양한 효과를 가지고 있어요. 신체적으로 근육을 활용하는 활동으로, 상반신과 하반신 근육을 강화하고, 균형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긴장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볼링을 즐기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 모두에게 볼링은 좋은 운동입니다.”

    근혜 씨는 “저는 볼링 선수로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훈련만이 정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지켜줄 거라고 믿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나이가 50을 넘었지만 앞으로 2년 더 국가대표에 선발돼, 10년 연속 국가대표라는 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또 2028년 미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뒤 후배들을 위해 내려오겠습니다. 그리고  ‘제2의 고향’이 된 진천군에서 ‘이근혜배 장애인 볼링대회’를 꼭 개최하고 싶습니다” 라며 크게 웃었다.

    근혜 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사실 저 정도면 장애인들이 다 부러워하는 장애인 아니냐”고 물었다.

    “저 같은 약시 장애인들도 생활이 힘들지만 정부의 지원은 중증 장애인 위주로 배정이 되는 것이 현실이지요. 다행스럽게도 저는 운동 장애인으로 잘 풀려서 국가대표가 되고, 기업 소속 선수가 됐어요. 더욱이 제가 입문하자마자 아시안게임 때 연금 제도가 생기고, 메달을 따서 매달 연금을 받게 됐어요. 작년에는 성적이 좋아 포상금도 받았어요. 여름에 에어컨이 고장나서 고생을 했는데 포상금으로 에어컨을 샀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많이 만들며 진천에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