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 최조 재배지와 천년사찰 보석사 품어[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금산군 편
  • ▲ 봉황천 옆의 장광로에서 바라본 진악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 봉황천 옆의 장광로에서 바라본 진악산 산등성.ⓒ진경수 山 애호가
    진악산(進樂山, 해발 733.3m)은 충남 금산군 금산읍에 위치하고 있는 금산의 진산이다. 충남에서 서대산, 대둔산, 계룡산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산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의 장엄함에 걸맞은 기암괴석과 암애가 일품이다.

    진악산 산행기점을 개삼터공원으로 정하고, 그곳으로 이동하던 중 봉황천 옆의 장광로에서 잔악산을 바라보니 우람하고 장중하며 군자의 기상이 뚜렷하다. 첫눈을 안은 진악산이 환희에 젖어 웃음꽃을 피우고 있어 보는 필자의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이번 산행은 ‘개삼터공원~도구통고개~도구통바위~물굴봉~진악산~관음굴~개삼저수지~개삼터공원’의 약 7㎞ 원점회귀다. 개삼터공원 무료주차장에 도착해 ‘뿌리깊은 인삼체험마을’ 건물의 좌측 길로 들어선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0.3㎞을 걸으면 진악산 표지석을 만나면서부터 야자매트 위에 설탕을 뿌려 놓은 듯 잔설을 밟으며 경사진 길을 오른다. 가파른 ‘갈 지(之)’자로 이어지는 비탈길이 끝나자마자, 그 너머로 얼굴을 내민 진악산 고스락과 교감을 나눈다.
  • ▲ ‘갈 지(之)’자 비탈길 너머로 얼굴을 내민 진악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 ‘갈 지(之)’자 비탈길 너머로 얼굴을 내민 진악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비탈길을 오르면서 군불을 지피기 시작한 몸뚱이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서 온돌 장판이 타들어가듯 뜨겁게 달아오른다. 머리부터 쏟아지기 시작하는 땀줄기를 주체할 수 없고, 안경에 끼는 성에는 발걸음을 성가시게 한다.

    긴 계단을 오르고 나니 개삼터공원에서 0.9㎞을 올랐고, 진악산 고스락까지는 3.3㎞를 더 가라한다. 이제부터는 흙길에 수북이 쌓인 촉촉한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발바닥에서 느끼는 푹신한 촉감과 울창한 소나무들이 주고받는 은근한 대화, 활엽수의 울긋불긋 물든 마지막 잎새들의 로맨스, 경쾌하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행복으로 가득하게 한다.

    잠시 내리막길을 가다가 이내 오르막길을 오른다. 온돌 장판이 점점 까맣게 타들어가듯 뜨겁게 달아오른 몸뚱이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겉옷을 벗어던지니 살만하다.
  • ▲ 골짜기 계단에 내려앉은 첫눈.ⓒ진경수 山 애호가
    ▲ 골짜기 계단에 내려앉은 첫눈.ⓒ진경수 山 애호가
    양지바른 구릉을 넘어서자 거무스레한 빛깔의 앙상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골짜기로 들어선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돌계단에는 콩고물을 묻힌 듯 낙엽이 깔려있고 그 위에 달콤한 설탕가루처럼 첫눈이 뿌려져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짜기는 그늘이 져서 눈이 채 녹을 새가 없으니 감사하게도 첫눈을 밟아보는 영광을 누린다. 한참을 눈길을 걷다가 햇볕이 드는 능선으로 올라서자 노적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윤곽을 드러낸다. 높은 나뭇가지에서 오줌을 지리는 눈이 제법 시끄럽다.

    잠시 능선을 걷다가 이내 그늘진 산비탈의 눈길을 오른다. 코끝을 시리게 하는 찬바람이 오르막길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로 발생되는 열을 식히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원하고 맑고 깨끗한 공기는 더럽고 찌든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개삼터공원을 출발해 2.3㎞를 오르니 드디어 도구통고개에 닿는다. 이 고개를 넘어서 하행하면 보석사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가면 도구통바위를 지나 물굴봉에 오른다. 도구통고개에서 우측으로 병풍처럼 생긴 바위를 지나 0.1㎞를 오르면 도구통바위를 만난다.
  • ▲ 도구통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도구통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도구통바위는 모양이 절구처럼 생겼다. 풍수적으로 노적봉이 노적가리이고, 금산읍이 확이며 도구통바위가 절구이고, 방아고개가 방아다리 형국이라 금산이 부족함이 없이 풍요롭게 사는 지방이라고 한다.

    절구통바위를 지나 능선을 오르기 시작하자 자연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섣불리 내어줄 수 없다고 신통을 부려 상공의 바람에게 구름을 몰고 오라고 일부러 시킨 듯하다. 산자락에서 치오르는 찬바람은 벗었던 겉옷을 다시 입힌다.

    능선에서 가뭄에 콩 나듯 만나는 바윗돌이 지루함을 달래고, 이어서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워낙 가팔라서 밧줄을 잡고 오른다. 개삼터공원에서 개삼저수지를 거쳐 물굴봉으로 이어지는 세거리를 지난다.
  • ▲ 암릉 구간에서 바라본 물굴봉.ⓒ진경수 山 애호가
    ▲ 암릉 구간에서 바라본 물굴봉.ⓒ진경수 山 애호가
    세거리에서 개삼터로 하행하면 바위굴인 물굴을 만날 수 있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이 굴 입구에서 너댓 걸음 들어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하여 호기심이 발동하지만 꾹 참는다.

    이어 데크 계단을 오르면 진악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물굴봉(해발 735.7m)에 닿는다. 이곳에는 계단 바로 앞에 늘씬하게 자란 소나무와 그 옆으로 이정표, 돌탑,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남쪽으로는 푸짐한 가지의 소나무 아래 각진 콘크리트의 엉덩이 받침대가 설치돼 있다.

    잠시 쉬어가려하는데, 바람이 제법 차서 나뭇가지 사이로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진악산 고스락을 향해 계단을 하행한다. 눈 덮인 계단을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내려간다.

    계단 끝자락은 소나무 숲의 돌길 능선에게 배턴을 넘겨준다. 능선 좌측 아래로 무명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두더지게임 하듯 솟아있다. 능선 끝자락에서 바위를 넘어서니 전방으로 진악산 고스락과 그 옆으로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잔잔한 물결을 이룬다.
  • ▲ 진악산 고스락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암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진악산 고스락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암릉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가파르고 눈 덮인 바윗길을 긴장하며 내려온 후,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이동한다. 능선의 울퉁불퉁한 바위구간을 서너 번 만날 때마다, 전방으로는 진악산 고스락, 후방으로는 노적봉과 물굴봉, 그리고 우측으로 금산읍을 조망한다.

    능선을 지키는 소나무는 구부정하고 키가 작다. 거센 비바람과 눈보라에 대응하기 위한 그들의 전략인 셈이다. 뿌리는 틈새만 보이면 깊이 파고들어 몸을 지탱한다. 그런가 하면 거칠고 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계절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이정표를 만나지 못한 채 한동안 능선을 걷다가 암릉 구간으로 올라선다. 한 몸에서 분열되어 흩어진 바윗돌을 징검다리를 건너듯 딛고 지난다. 산바람이 모자를 벗기고 몸을 날려버릴 작정인지 모질고 드세게 불어댄다.

    양옆으로 깎아지른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는 암릉을 걷자니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과 상쾌한 기분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암릉 구간을 다 지나서 뒤돌아보니 암릉 우측으로 우회 밧줄이 있다.
  • ▲ 진악산 고스락 도착 직전의 칼날바위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진악산 고스락 도착 직전의 칼날바위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암릉을 만났을 때, 어찌 우회로를 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암릉 구간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조금만 더 맑았더라면 암릉 구간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짓누른 삶의 무게를 바람과 함께 씻은 듯 날려 버렸을 텐데 말이다.

    다시 돌길에 낙엽이 쌓인 소나무 숲길을 따라 눈이 녹아 질퍽질퍽한 등산로를 이동한다. 진흙탕길이 아니어서 다행스럽긴 하지만 돌부리에 차일까봐 조심스럽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 해발 711m 지점을 지난다. 잘 생긴 여인의 허리처럼 좁고 가느다란 능선을 지나 길을 막아선  바위를 만난다.

    바위를 올라서니 비스듬히 자리 잡은 암반이 소나무 덕택에 낭떠러지로 미끄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성긴 소나무 사이에 매여진 밧줄이 천길 바위벼랑의 위험을 알린다. 아슬아슬하게 발아래를 굽어보니, 금산읍내와 개삼터저수지, 노적봉과 물굴봉, 그리고 앞으로 하산하게 될 진악산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 ▲ 진악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 진악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곧이어 진악산 고스락을 만나기 직전에 넘어야 할 고비와 마주한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을 세운 바위 능선이 매우 위협적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밧줄이 매어져 있어 팔뚝 근육이 불끈 일어날 정도로 꽉 잡고 건넌다.

    사람 사는 것도 이와 같아 성공을 목전에 두고 항상 위기에 봉착할 때가 많다. 또 사업을 하다보면 이른바 죽음의 계곡에 빠져서 허덕이기도 한다. 이러한 위기를 직감하고 사전에 대처하거나 위기에 부딪쳤을 때 발휘하는 총명한 지혜가 삶과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다.

    칼날바위 능선을 무사히 넘어서자 능선 한쪽 곁에 한가로운 긴 의자가 마음에 여유의 공간을 만든다. 전방으로 옅은 파랑색의 산불초소와 데크전망대가 보이니 진악산 고스락임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자연석 계단을 올라서니 진악산 고스락 돌과 마주한다. 하늘이 진악산 꼭대기에 오른 것을 축하라도 하듯이 순간 광명의 빛으로 영접한다. 데크 전망대에 서니 동쪽에서 서쪽으로 월영봉, 갈기산, 서대산, 계룡산에 이르기까지 구름에 가려 희미하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아름다움 풍경을 감상한다.
  • ▲ 진악산 관음봉.ⓒ진경수 山 애호가
    ▲ 진악산 관음봉.ⓒ진경수 山 애호가
    고스락은 느닷없이 단체 등산객들의 왁작대는 소리와 함께 몰려들면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물러날 때가 되었다 싶어 관음굴로 발길을 향한다. 이정표의 ‘광장’ 방향으로 헬기장을 표시를 밟고 지나 내리막길을 0.15㎞ 정도 하행한다.

    암봉을 지나자마자 마주한 이정표가 관음굴은 우측으로 0.17㎞ 내려가라 한다. 눈으로 뒤덮인 계단을 하행하다가 선공암과 관음굴 갈림길에서 암봉을 휘돌아 관음굴로 오른다.

    깎아지른 암벽 옆으로 설치된 밧줄 난간을 붙잡고 물기가 흥건한 계단과 바윗길을 간신히 올라 진악산 주봉으로 알려진 관음봉(해발 732.3m)을 온새미로 조망한다.

    백제시대 강처사가 이 봉우리 아래에 있는 관음굴에서 기도를 하여 인삼의 씨앗을 얻었다고 하여 관음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철제 난간에 의지해 관음봉 아래에 있는 관음굴로 내려가 잠시 기도하고 쉬어간다.
  • ▲ 진악산 관음봉아래 있는 관음굴.ⓒ진경수 山 애호가
    ▲ 진악산 관음봉아래 있는 관음굴.ⓒ진경수 山 애호가
    관음굴 안은 대여섯명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우물처럼 움푹 파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다. 이곳에 앉아 강처사의 애절하고 간절한 기도를 상상해 본다.

    단애를 이룬 암벽에 설치된 발판과 난간을 덕택에 무사히 관음굴을 나와 다시 관음봉 꼭대기에 올라 멀리 희미하지만 대둔산과 계룡산 능선을 조망한다.

    다시 발길을 진악산 고스락으로 돌려 사람이 인삼을 처음으로 재배한 곳인 개삼터(3.4㎞)로 하산한다. 물굴봉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계단을 내려오지만 이내 거칠고 험난한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몽실몽실한 자갈이 깔린 가파른 내리막엔 낙엽이 수북하여 불안감을 더하고, 가끔씩 만나는 물기가 흥건한 침니바위를 밧줄을 잡고 내려갈 때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러한 봉우리 두 개를 지나 하산하는데 추락이나 낙상의 위험이 매우 높아 등산로 정비가 필요할 것 같다.
  • ▲ 진악산 하산길.ⓒ진경수 山 애호가
    ▲ 진악산 하산길.ⓒ진경수 山 애호가
    하산하면서 진악산 고스락과 관음봉을 조망하기도 하고, 노적봉과 물굴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을 감상하기도 한다. 하산하는 능선에는 눈이 거의 다 녹아 뽀송뽀송한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약사굴가는길’ 표지판이 세워진 곳까지 거친 산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남자 성인 네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버너 불로 음식을 요리하며 먹고 있다. 이 아름다운 산을 다 불태울 작정인가? 만일 그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양심에 가책을 치통처럼 아프게 느끼고, 인간과 자연보호를 위해 다시는 산을 찾지 않기 바란다.

    이후로 낙엽이 덮인 가파른 길을 조금 하행하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간다. 우측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개삼저수지에 닿는다. 이곳은 물굴봉과 진악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이며,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0.7㎞를 더 이동하며 개삼터공원으로 복귀한다.

    개삼터공원에서 약 5㎞ 떨어져 있는 진악산의 또 다른 등산로입구가 있는 보석사를 둘러본다. 보석사는 가을에 피는 꽃무릇이 예쁘고, 단풍이 아름답고 수령이 천년이 넘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이 은행나무는 둥글게 여섯 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해졌다고 하며, 나라에 이변이 있을 때는 24시간을 운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