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예전에는 동네 골목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면 동네 골목에서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동네 골목이 와글와글했다. 그때엔 공 하나만 있으면 온갖 놀이를 할 수 있었다. 골목 놀이 규모가 좀 더 커지면 동구 밖 공터에서 옆 동네 아이들과 공놀이 시합도 했다. 

    골목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공원이었다. 아이들 세계의 모든 일은 골목 안에서 일어났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처럼 아이들 서열도 골목에서 정해졌다. 서열은 동네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맞짱 싸움으로 정했다. 동네 형뻘이 되는 아이가 심판이 되어 승패를 판정했고 빙 둘러서서 맞짱 싸움을 구경하던 동네 아이들은 그 판정을 받아들여 골목 서열을 인정했다.

    가끔 아이들이 집단 싸움을 하기도 했는데, 말로든 욕설로든 힘으로든 질 형세이면 주먹으로 감자를 먹이는 시늉하면서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가는 것은 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퍼포먼스이기도 했다. 싸우다가 논리나 힘에 밀리면 상대의 부모를 들먹이며 감자를 먹이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행동이었던 게다.

    #2. 한국적 현상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언쟁하다가 그 중 나이 든 사람이 논리에서 밀려서 할 말이 궁해지면 대뜸 “너 나이 몇 살이냐?”라고 소리 지른다. 젊은 것이 버르장머리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나이로 상대를 누르려고 한다.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도구가 나이 먹은 거밖에 없으니 그러는 게다. 아이들이 골목 싸움에서 밀릴 때 상대에게 감자 먹이면서 도망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지극히 후진적 현상이다.      
              
    #3. 아주 오래전에 TV에서 본 드라마 이야기이다. 내용인즉, 일제 강점기 때 어쩌다 일본 순사와 다투다 요시찰 인물로 잡혀가서 감옥살이한 인사가 사실과 다르게 해방 정국에 독립투쟁으로 감옥에 간 사람으로 알려져 동네의 영웅으로 귀환했다. 

    해방 정국에서 독립투사의 배경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그의 안방은 그를 찾아온 사람들로 늘 붐볐고 해방 정국에서 그의 시국 견해를 들으려 했다. 별로 배운 것도 투쟁한 것도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늘날~”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오늘날~”이란 말만 해도 머리를 조아렸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하셨던 큰 스님의 법어만으로 사부대중(四部大衆)과 중생(衆生)이 제각기 알아서 해석했듯이 해방정국에서는 “오늘날~”이란 말 한마디만으로도 당시 우중(愚衆)이 알아서 슬슬 기었던 풍자 드라마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인공은 선거에 나서서 “오늘날~”만 외치다 연전연패의 충격으로 중풍을 맞고 결국 생을 마친다.
                     
    #4. 며칠 전 출판기념회에서 저질 발언으로 법무부 장관을 질타했던 한 5선의 전직 국회의원의 일탈 성 막말이 앞의 세 가지 사례를 다 품고 있다. 5선 경력의 국회의원에 광역시장, 당대표 등 대통령 자리 빼고 다 해봤다는 86세대 정치인이 자신의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현직 법무부 장관에게 대놓고 퍼붓는 욕설이 상상 이상이었다. 오만방자한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국민에게 감자 먹이는 시건방진 짓을 한 것이고, 시대의 흐름에서 낙오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다. 

    이제 겨우 환갑 맞은 자가 국민 앞에서 자기 나이를 내세우며 무뢰한처럼 저지른 허튼짓이다. 욕설로만 채운 출판기념회 발언은 “오늘날~”만 부르짖다 생을 마친 해방정국 어느 인사의 행태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의 망발은 증거가 명백한 돈 봉투 사건의 외통수 수사에 빠져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망발은 돈 봉투는 관행적으로 모두 다 돌렸는데 왜 자기만 수사하느냐는 대국민 고자질을 하는 거다.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자 왜 자기만 단속하느냐고 뻗대는 꼴이다. 음주운전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듯이 돈 봉투도 절대로 돌리지 말았어야 옳은 게다. 그의 말을 빌리면 재수 없이 단속에 걸려서 억울하다는 건데 그것도 자기의 시운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자가 지난 20~30여 년간 이 나라의 정치 리더였다는 것이 더 자괴스럽다.

    여기에 꼼수 탈당으로 검수완박법 통과의 공로를 세운 야당 의원이 이런 송 씨의 망언에 숟가락을 얹어서 법무부 장관을 욕하는 글을 올렸다. 또 어떤 야당 측 평론가는 송 씨가 민주화 투쟁할 때 법무부 장관은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했다. 아마도 그 당시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중학생 정도였을 게다. 그런데도 운동권의 습관적 잣대로 “민주 투쟁도 하지 않은 X가 감히 운동권 투사에게 대든다”라는 오만함을 드러낸 거다.

    그동안 운동권 86세대들은 툭하면 민주화 투쟁 경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영원불멸의 공적처럼, 영원히 녹 쓸지 않는 훈장처럼 내세워서 비운동권을 공격했다. 우리 국민은 30여 년 그런 행태를 용인하며 봐왔다.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앞세우는 민주 투쟁의 공적 타령이 이제 40여 년 된 낡은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소리이고 추억에 빠진 퇴기(退妓)의 넋두리로만 들린다. 시대가 바뀌었고 86세대의 시효가 끝났다는 의미이다. 

    이 나라를 이토록 풍요롭게 일군 세대인 7090 산업 역군이 아직 시퍼렇게 눈을 뜨고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데, 이제 86세대가 환갑이라고 정계의 어른 노릇 하려고 한다. 한 법무부 장관의 반응처럼 정말 나라를 후지게 만들고 정치판을 후지게 한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후지고 역겨운 ‘운동권 어르신 호소인’이 벌인 망발에 많은 국민이 혀를 차고 있다. 한심하고 기가 막힌다는 거다. 손뼉 칠 때 폼이 나게 물러날 위인이 못 되지만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국민 중 누군가 손뼉 칠지도 모르니 이제라도 얼른 물러나기를 바란다. 이 시대의 주인공은 MZ-알파 세대이다. 시대가 바뀐 걸 알아야지 쯧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