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巖盤을 가르는 시원한 龍湫溪谷[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북 문경시 편
  • ▲ 수줍은 듯 청록에 숨은 대야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 수줍은 듯 청록에 숨은 대야산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대야산(大耶山, 해발 931m)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속리산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다.

    이번 산행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용추계곡 주차장에서 출발해 ‘용추폭포~월영대 삼거리~피아골~대야산 고스락~밀재~월영대~용추계곡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다.

    주차장에서 ‘대야산 등산안내도’와 ‘선유동천 나들길 종합안내판’를 살펴보고, ‘대야산 용추계곡’이라 새겨진 표지석 옆의 계단을 통해 작은 구릉을 넘는다.

    풀숲을 가르며 조금만 이동하면 대야산장을 지나서 대야산 4.8㎞라고 알리는 선유동천 나들길 이정표를 만난다. 용추계곡의 맑고 경쾌한 물소리에 이끌려 콘크리트 포장된 식당가를 지난다.
  • ▲ 용소암을 지나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 용소암을 지나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이어 생명력이 넘치는 싱그러운 숲속으로 계단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청량한 계곡물을 거슬러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용추계곡에 살던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다가 바위에 발톱 자국을 남긴 용소암(龍搔巖)을 지난다.

    산비탈 옆으로 점점 다가오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물소리에 귀가 호강한다. 곧이어 만나는 명소 중의 명소이자 비경 중의 비경이라는 용추(龍湫)에 이른다.

    매끈한 암반을 미끄럼틀 타듯 흘러내리는 밑 용추에는 등산객들이 북적인다. 그 바로 위에 거대한 화강암반에서 쏟아 내려 소(沼)를 이룬 위 용추에는 하트 모양의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비늘 흔적이라 전한다.

    사랑이 얼마나 깊었길래 단단한 바위에 사랑의 표식을 남겼을까? 아마도 두 마리의 용은 애정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서로가 지닌 얼결을 진심으로 헤아렸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 ▲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비늘 흔적인 용추.ⓒ진경수 山 애호가
    ▲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비늘 흔적인 용추.ⓒ진경수 山 애호가
    용추에서부터 맑고 청정한 계곡과 함께 걷는다. 완만한 길로 시작하여 수차례 짧은 계단과 데크로드를 걸으면서 물처럼 흐르는 삶이란 무엇일까? 화두를 챙기고,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린다.

    용추에서 약 1.0㎞를 이동하면 청량한 물소리와 청아한 새소리, 울창한 청록 숲의 싱그러움과 상쾌한 맑은 공기가 넘실대는 데크로드 쉼터, 그 옆으로 밀재-피아골 갈림길 이정표에 이른다. 이곳에서 파아골 방향으로 대야산까지 1.9㎞를 오르기 시작한다.

    계곡 옆으로 형성된 세월의 이끼를 안은 채 제멋대로 자리한 바윗길을 오른다. 이 바윗돌처럼 뭇사람들과 뒤섞여 인연에 따라 살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자기 색깔대로 사는 것이 멋진 인생이 아닐까?

    고도가 높아지면서 계단을 만나 오르고 이어서 철제 난간과 밧줄이 설치된 가파른 암릉 구간을 안간힘을 쓰며 오른다. 몸의 열기가 오른 만큼 산세의 기운을 더욱 거세진다.
  • ▲ 피아골에서 대야산을 오르는 철계단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피아골에서 대야산을 오르는 철계단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철계단을 오르던 중에 대야산이 0.3㎞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지만 가파른 경사의 철계단은 끝이 없는 듯하다. 기쁨과 슬픔, 안락과 고통도 바람처럼 잠시 스치듯 지나가고, 그 흔적이 오래가지 않듯이 이제 돌계단으로 오름의 형상이 바뀐다.

    다소곳하고 단정한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은 돌계단이 발걸음을 맞이한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화강암 직벽 옆으로 돌계단을 밟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오르자 다시 철계단이 배턴을 이어받는다.

    고스락 아래로 다가서자 몸을 일으키는 대야산을 미워하기보다 철계단 좌측으로 내려가 잠시 숨을 고른다. 묵묵하게 걸으면서 순응한 탓일까?

    예상치 못한 기암의 출현에 엔돌핀이 솟구친다. 벼랑 끝에 자리한 바윗돌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아차 바위를 만난다. 자세히 살펴보니 쇠밧줄로 꽁꽁 묶여져 있다.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우리네 마음을 붙들어 놓으라고 다그치는 듯하다.
  • ▲ 대야산의 아차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대야산의 아차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달콤한 휴식으로 다시 철계단을 오르고, 이어 바위들 사이사이에 뿌리를 내린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숲속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계단을 오른다.

    철제 난간이 설치된 암봉이 눈앞에 다가서자 대야산 고스락임을 알아차린다. 드디어 사방이 훤히 트인 대야산 고스락에 올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외유내강의 산들을 넋을 잃고 감상한다.

    신세가 웅장하여 눈에 확 들어오는 희양산과 뇌정산, 가까이 둔덕산과 조항산이 조망되고 멀리 속리산 줄기가 희미하지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이곳에서 밀재까지 하산하는 코스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이룬다. 대간의 위세답게 암봉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당당하고 우렁차다. 소나무 숲이 감싸 유순하게 보이는 속살은 여지없이 암릉을 오르내리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 ▲ 대야산 고스락에서 바라본 희양산을 비롯한 명산들.ⓒ진경수 山 애호가
    ▲ 대야산 고스락에서 바라본 희양산을 비롯한 명산들.ⓒ진경수 山 애호가
    백두대간의 정기를 듬뿍 받고, 황홀한 풍광을 만끽하였으니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한 다른 암봉을 향해 하산을 시작한다. 철제 난간을 붙잡고 고스락에서 소나무 숲으로 내려선다.

    월영대-밀재 갈림길에서 밀재 방향으로 1.0㎞를 이동하는데, 이 구간이 대야산 풍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암릉에 설치된 철제 난간의 도움을 받아 제1암봉인 조망처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대야산 고스락을 바라보니 정수리의 하얀 속살이 등산객들을 품고 있다. 이제 진행할 제2암봉을 조망하자 부드러운 바위들이 솟아난 사이 공간을 분재처럼 소나무가 얼결을 채운다.

    제1암봉에서 데크로드와 철계단을 이용해 제2암봉으로 이동한다. 중간쯤에서 무심코 데크로드를 걷다가 허공에 뜨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이 제1·2암봉을 잇는 다리다.
  • ▲ 제1암봉에서 바라본 제2암봉으로 가는 탐방로.ⓒ진경수 山 애호가
    ▲ 제1암봉에서 바라본 제2암봉으로 가는 탐방로.ⓒ진경수 山 애호가
    제2암봉에서 대야산 고스락까지 이어지는 암릉을 따라 설치된 철계단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 한층 조화로움과 신비함을 더해 황홀한 풍광을 연출한다. 무위와 유위가 공존하는 속세를 대변하는 듯하다. 이것이 대야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제2암봉에서 좌측으로 큰 바위를 끼고 돌아 밀재까지 하산한다. 이 구간은 하마, 코끼리, 발바닥, 용트림 등과 같은 기암괴석이 즐비하여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렬로 늘어선 암릉 길을 내려가면서 우측으로 중대봉과 그 비탈에 자리한 곰바위를 감상한다.

    이어지는 경사가 가파른 계단 구간이다. 상행하던 등산객들이 풍경에 취해 발걸음을 쉽사리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화감암을 조각조각 쌓아 올린 듯한 암봉들이 신비하고 경이롭다. 등산로 주변에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 ▲ 대야산 제2암봉에서 밀재로 하산하면서 바라본 중대봉.ⓒ진경수 山 애호가
    ▲ 대야산 제2암봉에서 밀재로 하산하면서 바라본 중대봉.ⓒ진경수 山 애호가
    계단을 내려와 잠시 완만한 산길을 걸으면 집채만 한 바위를 만난다. 옆으로 비켜지나 가니 어마어마한 바위들이 군락을 이룬다. 두 바위가 이루는 틈새 공간을 빠져나간 후, 작은 바위 위에 큰 바위가 바람 불면 넘어질 듯 위태롭게 올라앉은 대문 바위를 만난다.

    대문 바위를 지나 철계단을 내려오면서 직각으로 꺾어지는 모퉁이에 선 커다란 바위에 담은 세 가지 표정의 얼굴을 만난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면 볼 수 없는 숨은 그림이다.

    이렇듯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것이 따라 일어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모든 것도 따라 없어지는 것이니 그리 괘념치 않는다.

    계단을 내려와 참나무 숲을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 위에 걸쳐 있는 발바닥 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 역시 앞만 보고 가는 등산객들에겐 단지 하늘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간절함이 기적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 ▲ 대야산의 대문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대야산의 대문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하산 도중 좌측으로 널찍하고 큼직한 바위가 잠시 쉬어 가라 유혹한다. 탐방로에서 벗어나 그 바위에 오르니 대야산 용추계곡에서 승천하던 용이 이곳에 머물 듯한 모습의 용트림 바위를 만난다.

    용트림 바위에서 잠시 명상에 잠겨 자연과 하나로 동조되어 본다. 다시 탐방로로 내려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하행하다가 좌측으로 이동 흔적이 있어 올라가 보니 거북 발바닥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곳곳에 숨겨진 기암괴석을 찾는 재미도 산행의 흥미를 더한다. 이제 마지막 계단 구간을 내려간다. 계단을 따라 길게 늘어진 바위를 따라 내려와서 돌아보니 이게 코끼리 바위인 듯하다.
  • ▲ 대야산 코끼리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대야산 코끼리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철계단 이후에는 흙길을 하행하고 나무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해발 689m인 밀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월영대까지 1.9㎞를 더 하행한다.

    키만큼 웃자란 조릿대 숲을 가르며 내려가자 바윗길이 이어진다. 이때부터 계곡과 만날 준비를 한다. 해발 약 500m 지점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계곡이 시작되면서 물소리가 몸의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여러 지류의 계곡물들이 합쳐져서 용추계곡으로 흘러든다. 계곡물의 흐름을 따라 발길은 계속 이어진다. 매끈한 화강암반을 받침 삼아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만났다.

    물(水)이 흘러가는(去) 것이 법이니, 법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삶인가?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니 가르치거나 간섭하러 들지 말고 그냥 지켜보다 필요할 때 힘을 덜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닌가 싶다.
  • ▲ 월영대.ⓒ진경수 山 애호가
    ▲ 월영대.ⓒ진경수 山 애호가
    널찍한 암반 위를 흘러내리는 월영대(月影臺)를 만난다. 휘영청 밝은 달이 중천에 높이 뜨는 밤이면, 계곡을 흐르는 맑디맑은 물에 어리는 달빛이 아름답게 드리운다는 곳이다.

    우리네 삶은 진짜 달보다는 이처럼 물 위에 비추는 달을 보고 진짜 달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이 몸뚱이가 정말 나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정말 나일까?

    월영대에서 월영대 삼거리를 거쳐 20분 정도 하행하면 용추에 이른다. 이후 대야산장을 지나 용추계곡 주차장에 도착하여 약 10㎞의 대야산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