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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 시사칼럼] ‘핵보유국’과 ‘문재인 보유국’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1-01-26 08:38 | 수정 2021-01-26 23:25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1956년 국회에서 유옥우 의원이 이른바 ‘대통령 방귀 사건’에 대하여 발언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광나루에서 낚시하던 중 방귀를 뀌자 당시 경기도 지사(그때 광나루는 행정구역이 경기도였다: 필자 註)였던 이익흥 내무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했다는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보필하고 장관 노릇을 하면 대한민국의 명의가 서겠는가”라고 폭로했다. 이 장관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는데 국회 속기록엔 남아있다고 한다.

이른바 권력자에 대한 아부의 대표적 언사로 전해오는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의 뒷이야기다. 

아부(阿附)도 시대와 정치 지형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며 교언영색(巧言令色)이 된다. 세상에서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말하는 사람이든 듣는 사람이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달콤한 아부의 유혹에 빠진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서 쓰듯이 바른말은 귀에 거슬린다. 예로부터 권력자는 아부하는 자를 멀리하고 바른말 하는 자를 곁에 둬야 화를 면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권력을 쥔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부에 길들어서 교언영색이 세상을 풍미(風靡)하고 혹세무민한다.

#2. 엊그제 1월 24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69회 생일날이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소위 ‘문파’의 생일 축하 광고가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내걸렸다. ‘달고나 커피 동호회’는 ‘빅이슈코리아’라는 잡지에 “명월(明月)이 천산만락(千山萬落)에 아니 비친 데가 없다”라는 문구와 함께 문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실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방역 일선에서 애써오신 분들과 최선을 다해주신 국민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도 곁들였다. 

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는 2018년 1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통령 지지도가 75%를 상회하여 문 대통령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런 때였으니 광고를 주도했던 사람들의 기세도 덩달아 등등했었다. 서울 지하철 10개역(광화문, 여의도, 종로3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천호, 가산디지털, 고속버스터미널, 건대 입구, 노원, 잠실 8호선)에 ‘Happy Moon Rise Day’, ‘해피 이니데이’, ‘대한민국에 달이 뜬 날’이라는 문구의 광고가 걸렸었다. 

필자는 그걸 보고 북쪽 지도자가 태양이니 남쪽 지도자가 달이 되는 세상이라며 ‘해와 달’이라는 칼럼을 기고하였다. 21세기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개인숭배’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문 대통령이 67세 되던 2019년 1월에는 ‘그대와 함께 만드는 미래에 단 한 번도 등을 돌린 적 없음을, 대한민국에 달이 뜬 그 날부터 우리는 쭉 당신의 국민입니다’라는 광고가 걸렸었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는 각자의 자유이니까 따따부따할 순 없지만, 대통령이 팬덤으로 둘러싸인 연예인이 되었고, ‘문파’는 스스로 왕조시대 백성을 자처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지난해 68회 생일에는 광주 문화전당역과 서울 합정역에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니 보전회’에서 문 대통령 사진과 함께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라는 문구의 광고를 걸었다. ‘문파’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거둬서 올리는 광고이지만 절반을 훨씬 넘는 국민은 그 광고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불편해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면서 광고를 하는 게 문 대통령에게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3. 갈수록 대통령 팬덤의 광고 문구와 민주당 일부 국회의원의 아부성 멘트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를 능가하여 여론이 들끓는다. 필자의 시각으로 봐도 올해엔 가히 역대급 아부이다. 교언영색이 따로 없다.

지난 1월 21일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그동안 내리 하향하던 대통령 지지도가 30%대에서 40%대로 반짝 반등하자 민주당 정 모 의원이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며 기쁨을 표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진보좌파 진영의 단어 선택은 일반적 상상의 틀을 벗어난다. 북한의 김정은이 지향하는 목표가 ‘핵보유국’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문재인 보유국’이란 말은 그래서 기상천외하다. 요샛말로 ‘네가 왜 거기서 나와?’이다.

이 기막힌 아부성 발언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통령 생일날인 24일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 예정인 박 모 전 장관이 대통령 생일 축하 글에서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 벌써 대통령님과 국무회의에서 정책을 논하던 시간이 그립다’라고 썼다. 앞서 서울시장선거 출마를 선언한 우 모 의원도 ‘지금껏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던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을 가질 수 있게 됐다’라고 썼다. 

또 대통령 생일날과 겹친 일요일에 KBS 열린음악회에선 엔딩곡으로 ‘Song to the Moon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을 방영했다. 권력에 대한 공영방송의 아부도 도를 넘었다.

60% 넘는 수의 국민은 지난 4년간 퇴행적 정책 시행으로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권력 내부에서 아부가 범람하는 현상은 그 권력의 끝이 그리 멀지 않다는 징조이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아부성 발언 사태 후 3년이 안 돼 4·19 혁명이 일어났다. 

만일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핵보유국이다’라는 말을 한다면 국방력의 위세로  그 말을 내세울 수 있겠지만 ‘문재인 보유국’이란 말에는 국민이 그저 창피하기 짝이 없고,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다. 그런 아부를 하고도 밥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참 말세(末世)다. 달이 차면 반드시 기우는 게 세상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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