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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의 시사칼럼] 민심의 ‘호루라기’ 경고음

입력 2020-08-11 10:24 | 수정 2020-08-12 00:34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어느 마을의 큰길에서 대낮인데도 아이들이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여자들이 사라져갔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걸 두려워했다. 어른들도 밤에 되면 무서워 밖에 나가기 꺼렸다. 

어느 날 이 마을의 학교에서 마을 사람들이 참관하는 어린이 회의가 열렸다. 다음 날부터 아이들이 호루라기를 하나씩 목에 걸고 학교로 나왔다. 그날 한 아이가 하교하다가 지나가는 학생을 괴롭히는 불량배를 보았다. 그 장면을 본 아이가 목에 건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힘껏 불었다. 불량배가 놀라서 호루라기를 부는 아이를 잡으러 쫓아갔다. 

아이는 달아나면서 계속 호루라기를 불었다. 호루라기 소리를 들은 다른 아이들도,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도, 집에 있던 마을 어른들도, 마을 슈퍼마켓 주인아저씨도 어린이 회의에서 나눠준 호루라기를 불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천둥소리만큼 커졌다. 불량배들이 천둥소리에 겁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호루라기 천둥소리에 도망가는 불량배들 따라 더 큰 천둥소리가 쫓아갔다.(퍼옴, 고친 글)

#2. 요즘 정권 실세들이 위세를 부릴 때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말이 ‘선출 권력’이다. 국민의 민주적 선택으로 부여받은 권력이니까, 관리 입문 시험에 합격해서 공무원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거나 자기들이 임명하여 벼슬하는 사람은 선출 권력이 아니므로 모두 자기들 발아래 있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의 발로이다. 

그 선민의식은 국민이 다수의 표로 자기들에게 준 권력이므로 임기 동안 자신들이 하는 모든 정치적 행위를 국민이 용인할 거로 생각한다. 무슨 일을 저지르든 그 행위는 정당하고 합법적일 거라 착각한다. 그래서 자기들 가는 길 앞에서 방해되는 법이 있으면 그 법을 고쳐서라도 방해요인을 제거하려고 한다. 4‧15 총선 압승 이후 선출 권력의 그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선출 권력이 아니면서도 선출 권력인 양 거들먹거리는 장관 벼슬도 있다. 4‧15 총선에서 절대다수 의석으로 의회 권력을 거머쥔 민주당과 그 언저리 벼슬들의 만용이 이렇게 도를 넘고 있다. 

권력의 근육질이 늘어나니까 근육질이 완력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선출 권력이 무소불위 권력인 줄 착각하는 게다. 서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정책에도 이념 논리로, 진영논리로,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면서도 내뱉는 말에는 진중함이나 겸손함이 터럭만큼도 없다. 국민이 뽑아준 선출 권력이 되레 상처 난 국민 가슴에 염장을 지른다.

#3. 자칭 선출 권력들이 벌이는 오만(傲慢) 정치로 국민이 나라의 미래를 의심하고 심각하게 실정(失政)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나라가 니꺼냐?”다. 처음에 소수의 사람이 외치더니 이제는 많은 사람이 외치고 있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주말 도심 집회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그 외침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코로나19의 전염위험에도 불구하고 오래지 않아 광화문, 시청, 종로와 을지로, 남대문 거리를 꽉 채울지도 모른다.

불량배를 쫓아냈던 아이들 호루라기 소리처럼 “나라가 니꺼냐, 왜 너 맘대로 해?” 라는 국민의 외침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커지면 선출 권력의 벼슬아치들은 그 소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도망갈 건가, 맞설 건가, 성찰이라도 하며 승복할 것인가? 

게임에서 규칙이 중요한 이유는 규칙의 틀 안에서 게임을 해야 재미가 있고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 세계에도 생존의 룰이 있다. 생존의 룰이 깨지면 그 종족이 사라지는 게 자연의 섭리다. 

범여권 180석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내 맘대로 입법 정치는 게임 중에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게임 규칙을 바꿔서 게임을 기어이 이기려는 탐욕과 다르지 않다. 세상이 아무리 만만히 보여도 법을 준수하는 최소한의 금도와 체면이 있어야 서로 믿을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그런 게 하나도 안 보인다.

법을 업신여기고 법을 마음대로 고치는 입법부는 존재 의미가 없다. 그런 입법부는 국민이 외면할 게다. 절대 왕권 시대의 조선에서도 절대권력자 연산과 광해가 반정으로 쫓겨난 건 민심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4. 갑자기 꺼내든 천도(遷都)론은 더 오만한 발상이다. 선거에 이용하려고 천도를 그렇게 쉽게 꺼내고 실행하려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수도는 나라의 상징이다. 선진 강국은 천도라는 말도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 수도는 나라의 얼굴이고 국민 마음의 고향이고 국민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수도를 옮기는 그런 중요한 일을 500명 대상 여론조사에서 약간의 우세 결과가 나왔다고 법을 바꿔서 천도하면 된단다. 500명이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발상이 경망스럽다. 정말 천박한 정권이다. 

‘서울’이란 단어는 수도를 뜻하는 순수우리말 보통명사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수도 지명의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대한민국의 서울은 서울이다’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관습 헌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서울’은 ‘서울’이다. 국민에게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권력이 ‘서울’이라는 말의 함의를 함부로 바꾸려고 한다. 600여 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그런 서울을 몇 년 만에 후딱 급조하여 성냥갑 아파트로 가득 채운 도시 세종으로 옮긴단다. 알량한 권력을 잠시 쥐었다고 600여 년 국민 마음속에 자리한 서울을 그렇게 쉽게 옮기려는 용기가 대단하다. 용기가 아니고 만용(蠻勇)이다. 

#5. 부동산 3법 날치기 통과를 ‘주거 정의실현’으로 합리화하고 포장하는 정권의 조어 능력이 놀랍다. 그런데 부동산 난리를 진정시키려는 게 목적인가 아니면 나랏돈 펑펑 쓰다가 텅 빈 곳간을 채우려는 증세 목적의 꼼수인가? 왜 모든 국민이 1가구는 1주택에만 살아야 하는가? 

장마와 홍수에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산사태를 부른 태양광 발전 시설 현장을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탈원전으로 세계 초일류 원전기술력이 뒷걸음치고 원전생태계가 망가지는 데도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AI 시대에 필요한 영재를 한 명이라도 더 발굴 육성하는 수월성 교육을 권장해도 모자랄 판에 왜 자사고와 국제고를 없애는 하향 평준화 교육정책을 벌이는가?  

민심 경고 호루라기가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경고음이 천둥소리만큼 커질 땐 이미 민심이 떠나고 권력은 추락할 게다. 민심은 권력의 날개이다. 추락하는 권력에는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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