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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트레킹] 공주 公山城, 찬란했던 백제 역사 ‘향취’ 흠뻑

세계유산 품은 도시 공주 백제 숨결…호사스런 색다른 트레킹
이괄의 난으로 피난 온 인조 인절미 맛 극찬…‘일화’ 지금도

입력 2020-03-22 23:06 | 수정 2020-03-23 09:35

▲ 충남 공주 공산성 금서루와 성벽 동서남북에 배치한 황색깃발.ⓒ김정원 기자

비단결 금강이 감싸 흐르는 고풍스러운 충남 공주시 ‘공산성(公山城)’. 트레킹 코스로는 다소 호사스럽다. 고풍스러운 성곽의 야경은 더욱 아름답다.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약 700년간 이어진 한국의 고대 왕국 중 하나로  대백제의 찬란했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산성 트레킹은 가장 먼저 고풍스런 남쪽 성곽의 문인 ‘금서루’가 나온다. 이 성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조선시대 석성(石城)으로 축조됐으며 당시 삼남의 관문이었다. 금서루를 오르다 보면 우측에 과거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는 송덕비 등 비석군 47개가 일렬로 세워져 있는데, 이들의 공헌만큼이나 그 역사와 문화도 진보했으리라.  

금서루는 백제왕성을 지켰던 수문병의 당시 복식을 갖추고 근무교대식(4~10월 주말)을 재현하는데 운 좋으면 멋진 장면을 볼 수 있다.

공산성을 걸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인조가 1624년 ‘이괄(李适)의 난(亂)’을 피해 일시 파천으로 5박 6일 간 머물렀던 곳으로, 당시 인조가 맛봤던 ‘인절미’를 극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인조 덕분에 공주는 지금도 ‘인절미’로 유명하다.     

백제시대 웅진도읍기(475~538년)의 공주를 방어하기 위한 왕성(王城‧5대 64년)인 공산성은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천연의 요세다.  

공산성 성곽에 오르면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황색 깃발이 나부낀다. 이 깃발은 송산리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으로 깃발소리가 걷는 내내 단연 압도한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동쪽에는 청룡, 서쪽 백호, 남쪽 주작, 북쪽에는 현무를 각각 배치했다.

▲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공산의 능성과 계곡을 따라 축조된 천연 요새 공산성.ⓒ김정원 기자

아슬아슬한 공산성 성곽을 걷기는 스릴 만점이다. 청주상당산성 등 다른 성곽은 수십 미터 낭떠러지기의 성곽 끝에 위험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공산성은 아예 없다. 떨어지면 최하 ‘중상’이다. 

공산성의 성곽도 고풍스럽지만, 한 눈에 금강이 성곽과 나란히 펼쳐지고 공주 신도시와 구도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공산정을 지나면 조선시대 신라의 석빙고처럼 얼음창고가 나온다. 한겨울 맑은 금강물이 꽁꽁 얼면 얼음을 깨서 왕겨에 싸은 뒤 석빙고에 저장해 뒀다가 여름에 꺼내 썼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약재와 얼음을 저장했고 나중에 잡종냉장고로 사용했다.

충남 공주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공산성은 공주시민들이 가장 아끼는 곳이다. 금강 남쪽에 세워진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를 대표하는 왕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다. 공산성은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공산성을 소개하자니 과거 찬란했던 백제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인해 문주왕 원년(475)에 한성에서 옹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 백제는 공산성은 문주왕을 비롯해 산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16년(538)에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 간 백제의 왕성으로 이용됐다.

▲ 연지는 공산성 안에 있는 연못 중 하나다. 단의 형태로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동서양측에 넓은 통로를 둔 것이 특징이고 깊이는 약 9m다. 연못과 금강 사이에 만하루라는 정자가 있다.ⓒ김정원 기자

공산성은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성으로 불렸다. 이 성은 금강에 접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됐다.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선조 이후에 석성으로 개축됐다. 현재는 동쪽의 735m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석성이다. 

성의 길이는 2660m(토성 735m, 석성 1925m), 동서남북 네 곳 중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 있다. 공주시가 1993년 동문 영동루와 서문 금서루를 복원했다.

공산성은 백제, 신라, 조선시대의 유적지가 혼재돼 있다. 

공산성에는 백제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의 감영을 비롯해 중군영 등 중요한 시설이 있었고 백제시대 추정왕궁지(웅진시대 초기 왕궁터)와 임류각(신하들의 연회장소), 연지가 있고,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 조선시대 유적인 쌍수정, 영은사, 쌍수정사적비, 만하루, 명국삼장비 등을 볼 수 있다.

2011년에는 백제의 옻칠가죽찰갑옷과 마갑, 화살촉, 철제 무기류 등이 출토됐는데, 갑옷의 제작 및 사용 시기를 알 수 있는 645년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 쌍수정은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일시 파천했을 때 5박 6일간 머물렀던 곳이다. ⓒ김정원 기자

공산성 트레킹은 금서루~쌍수정~왕궁지~진남루~영동루~광복루~만하루와 연지~영은사~공북루~공산정~금서로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또 금서루~쌍수정~왕궁지~영은사~공북루~금서루, 금서루~공산성~공북루~만화루와 연지~영은사~금서루는 각각 30분 소요된다.

공산성은 다른 트레킹 코스와 달리 역사유적이 많아 제대로 걷기 힘들다. 찬란했던 백제시대 등의 역사공부를 할 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해설사 이야기를 들으면 백제 역사의 스토리가 귀에 쏙 들어온다.  

한편 2015년 독일에서 개최된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후기의 문화유산으로 공주의 공산성 왕궁지, 왕궁부속시설지, 백제토성과 송산리고분군의 무덤양식, 국립공주박물관,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지다.

▲ 공주 공산성 S자 형태의 성곽 둘레.ⓒ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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