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창호 대장 희생으로 돌아본 충북 산악인들고상돈‧지현옥‧고미영 씨 등반 도중 희생…허영호씨 현역활동허씨 “걸출한 산악인 희생에 안타깝고 답답하다”
  • ▲ 지난 13일 네팔 히말라야에서 숨진채 발견된 김창호 대장(왼쪽)과 허영호 씨, 그리고 한 사람 건너 엄홍길 씨. 사진은 허영호 씨가 한 달 전 한 행사장에서 김창호 대장 등과 기념촬영을 했다.ⓒ산악인 허영호 씨 제공
    ▲ 지난 13일 네팔 히말라야에서 숨진채 발견된 김창호 대장(왼쪽)과 허영호 씨, 그리고 한 사람 건너 엄홍길 씨. 사진은 허영호 씨가 한 달 전 한 행사장에서 김창호 대장 등과 기념촬영을 했다.ⓒ산악인 허영호 씨 제공

    산악인들은 왜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그토록 기를 쓰고 산에 오를까?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8000m급 완등에 성공한 김창호 대장(49) 등 5명과 현지 가이드 등 9명이 네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등반 도중 눈 폭풍으로 숨진 채 지난 13일 발견(해발 3500m지점)되면서 또 한 사람의 걸출한 산악인이 쓰러져 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특히 유명 산악인을 많이 배출한 충북 산악인들도 김창호 대장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충북 산악인들도 생전의 김창호 대장과 교류가 잦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장은 생전에 “산에 왜 가느냐”는 물음에 “히말라야 정상에 올라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여유를 갖고 살아가고 싶다”며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산악인의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충북은 고인이 된 고상돈‧지현옥‧고미영 씨와 허영호 씨 등 걸출한 유명 산악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상돈 씨는 북미 매킨리 봉 등반 도중에, 지현옥씨는 안나푸르나 등반 도중, 고미영 씨는 히말라야 등반과정에서 각각 목숨을 잃고 말았다.

    1977년 에베레스트(8848m)를 한국인 최초로 등정한 고(故) 고상돈 씨와 여성 산악인으로 1993년 에베레스트를 한국인으로 최초, 세계 여성으로는 3번째 등정에 성공한 고 지현옥 씨가 공교롭게도 등반과정에서 사고로 숨졌다.

  • ▲ 우리나라 산악인으로는 1977년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고 고상돈 씨가 정상에서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제주도청
    ▲ 우리나라 산악인으로는 1977년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고 고상돈 씨가 정상에서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제주도청

    고상돈 씨는 1977년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고 씨의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 등정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고 씨는 당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으며 첫 교신으로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데가 없다”고 완등의 쾌거를 타전하기도 했다.

    제주출신으로 청주상고와 청주대를 수료한 고 씨는 한국전매공사 청주연초제초장에 근무하면서 대한산악연맹 충북연맹 이사를 지냈으며 1965년 충북산악회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산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79년 북아메리카 최고봉인 알래스카 매킨리(6194m) 원정대 대장으로 참가해 우리나라 최초로 정상을 정복했으나 하산하다 웨스턴 리브 800m 빙벽에서 자일사고로 추락, 안타깝게도 이일교‧박훈규 대원과 함께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고 씨는 제주도 한라산 해발 1100m 고지에서 잠들어 있다.

    고 지현옥 씨는 충남출신으로 서원대 산악반에서 활동하다 세계적인 여성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지 씨는 1993년 한국 첫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고 정상에 올랐으며 1993년 가셔브룸 2봉(8035m)을 무산소 단독 증정해 한국에 8000m급 여성 단독 등반시대를 연 인물이다.

    지 씨는 1988년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산맥의 매킨리 산(6194m)을 대원 중 가장 먼저 오르면서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93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 대장으로 13명의 대원을 이끌고 에베레스트를 한국 여성 최초로 성공, 한국 산악사에 역사적인 쾌거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 씨는 1999년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지만 하산하다 해발 7800m지점에서 실종됐다.

    고 고미영 산악인은 청주대 출신으로 충북에서 산악활동을 한 것이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됐다. 고 씨는 스포츠클라이밍과 고산 등반에서 두각을 나타냈며 2007년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브로드피크‧시샤팡마 봉에 올라 여성 등반가 최초로 한 해 3개 봉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2009년 히말라야 8000m 이상 급 11좌에 올랐으나 하산 도중 해발 6200m 지점 칼날능선에서 실족해 목숨을 잃었다.

    국내 대표적인 산악인으로 유명한 허영호 씨는 충북 제천 출신이다.

    허 씨는 “김창호 씨의 사고는 정말 안타깝고 걸출한 산악인들의 잇따른 희생에 답답하다. 김 대장을 한 달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자꾸 나서 답답하다”면서 “김창호 씨와는 한 달 전에 울주영화제에서 이틀 동안 함께 지내면서 토크쇼를 진행했고 커피를 마시며 산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 ▲ 1993년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고 지현옥 씨의 흉상이 서원대 캠퍼스에 마련돼 있다.ⓒ서원대
    ▲ 1993년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고 지현옥 씨의 흉상이 서원대 캠퍼스에 마련돼 있다.ⓒ서원대

    그러면서 “고산등정은 위험한 부분이 워낙 많다. 고산 등정은 기다리면서 체력전으로 이겨내야 하는 등반이며 자연하고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며 김 대장의 사고를 누구보다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는 “산악인들이 산에 가는 것은 중독성도 있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전정신 때문이고 나 역시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특히 허 씨는 “충북에 걸출한 산악인들이 많은 것은 좋은 산이 많은 데다 대학에서 산악인들을 많이 배출하면서 산악회 활동이 왕성했다. 1970년대 산악활동이 워낙 많았다”면서 “고인이 된 지현옥 씨는 잘 알았지만 고미영 씨는 잘 몰랐다. 특히 고상돈 형과는 속리산과 조령산 등을 여러 번 갔고 자동차 면허를 청주에서 함께 딴 기억이 난다”고 지난날의 추억을 되짚었다.

    허 씨는 “지난해 에베레스트를 6번째 등반하고 올해는 산에 가지 않았다. 지금은 가까운 분들과 산행을 하고 있다. 소득원은 교육과 강의 등을 통해 올리고 있으며 한번 등정하려면 최소 5000만 원의 경비가 들어간다. 안타까운 것은 산악인들이 지원이 없어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 스폰서를 얻어 등반을 한다”며 산악인들의 열악한 환경 조건을 지적했다.

    걸출한 산악인들을 지도하거나 함께 산행을 했던 남기창 전 청주대 교수는 “김창호 대장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김 대장과 산에 다닌 지 벌써 오래됐으나 잘 알고 있다. 산악연맹 행사 때도 자주 만났다. 국내에서 14좌 무산소 등정을 한 것은 김창호 대원 외에는 없다”며 김 대장의 희생을 누구보다도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고인이 된 고상돈 씨가 청주연초제조창에 근무하면서 청주대학교 상학과를 다녔는데 1979년 메킨로 등정 중 조난당했다”면서 “고상돈 씨와는 산악부원으로 함께 산에 다녔고 졸업 후에는 산악부 선배로서 활동을 함께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고미영 씨는 청주대 중어문학과 출신으로 산악부 활동을 스프츠 크라이밍으로 시작했다가 대학에 들어온 뒤 산악활동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코오롱에 입사하면서 세계 최고봉 14좌를 오른다고 했는데, 11봉 등정은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안타깝게도 등정 도중 숨졌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충북 출신 산악인 조철희‧김웅식(청주), 홍순덕 씨(충주) 등은 2000년 밀레니엄 기념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밟았다. 이들은 현재 청주에서 산악활동을 하고 있다.

    남 전 교수는 “결국 자연적으로 지형에 따라 산을 찾는 것도 있고 선배들의 열정을 보고 따라하는 것도 있으며, 그 후배들이 의지가 있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충북에는 걸출한 산악인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