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어도 신발 빨리 신는 자형의 마음새 마냥 좋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자형(​慈兄)에게.

    새삼 되씹어 보고자 몇 자 끄적인다. ‘상현고노(商現高老)’라 했다. 

    때는 2024년 4월 26일 오후 4시쯤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 519번지 ‘그집주꾸미 산남점’에서 벌어진 희대의 사건이다.

    주꾸미가 동나서 낙지로 해치웠다. 와우 힘이 장사다. 뽀빠이 이상용도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는 낙지에는 지방 성분이 거의 없고 타우린과 무기질과 아미노산이 왕창 들어 있어 보양 음식으로 ‘왔따’라고 했다. 뚝심 좋은 황소가 비실거릴 때 입을 벌리고 낙지 한 마리를 넣어주면 벌떡 일어선다니 쏘팔메토 옥타코사놀 보다 한 수 위다. 

    ​“아니 쫄보가 저녁엘 초대했는데, 자형께서 계산서를 홀라당 채가서 저녁값을 내셨네요?” 

    자형은 왜 나서서 저녁값을 냈을까? 원래 말은 안 했어도 쫄보가 저녁을 사기로 했던 것인데 어찌하여 참질 못하고 욱하는 성정을 발산했을까? 한발 물러서서 갸우뚱 고갤 돌렸다. 

    ​자형은 보이지 않는 밥값 내는 원칙을 깔끔하게 실행한 것이었다. 이 원칙은 네 글자로 정리된다. 

    ​첫째는 ‘상(商)’이다. 말 그대로 사업을 하고 있거나 기업에서 큰 녹을 받는 사람이다. 
  • ▲ 쭈꾸미집 내부.ⓒ이재룡 칼럼니스트
    ▲ 쭈꾸미집 내부.ⓒ이재룡 칼럼니스트
    둘째는 ‘현(現)’이다. 현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완장을 찬 사람도 이에 해당된다.

    셋째는 ‘고(高)’이다. 현직에 있을 때 직급이 높았던 사람이다. 은퇴했어도 신발 빨리 신는 사람이다. 

    넷째는 ‘노(老)’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늘 슬리퍼만 신고 다니던 사람이 유독 밥 먹을 때는 끈 달린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온다. 식사가 끝나면 좀생이 자세를 하고 움츠려 신발 끈을 느릿느릿 묶는다. 에라 볼썽사나운 사람 같으니라고…. 
    ​저녁값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현고노(商現高老)’를 어김없이 지킨 자형의 마음새가 마냥 좋다. 늦었지만 인사를 한다. 꾸벅.

    ​2024년 4월 29일. 쫄보 이재룡 힘을 주체하지 못해 입을 헤벌레 벌리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