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무궁화공원을 기점으로 걷는다.[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세종특별자치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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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산(轉月山, 해발 259.8m)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금강과 미호천의 합류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에서 동쪽에 있는 금강을 굽어보면 강에 비친 달이 도는 것 같다고 하여 전월(轉月)‘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세종특별자치시 무궁화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하늘이 찌뿌듯이 흐린 탓인지 한산하다. 그러나 곳곳에 진분홍 철쭉과 연보라 등나무꽃 등 형형색색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과 생기 가득한 연초록의 초목들이 반갑게 맞는다.‘무궁화유아숲체험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이정표가 전월산 정상(1.15㎞)을 안내한다. 유아숲체험원 옆으로 난 인도 블록의 길을 따라 오른다. 그 길 끝에는 통나무 의자가 마련된 쉼터와 해충 퇴치 기피제 분사기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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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회색 구름을 이고 잠시 야자 매트가 깔린 길을 오르자, 이내 초록빛 소나무와 연초록의 참나무가 어우러진 우등지 숲 터널을 걷는다. 부드럽게 전해지는 발바닥 촉감을 느끼니 긴장이 풀리고, 몸과 마음은 금새 연초록으로 물들어 청량해진다.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다. 게다가 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질 때면 자연 속에 그 짐을 내려놓고, 친구랑 함께 걸으며 정겨운 대화로 위로받을 수 있어 삶이 행복해지는 길로도 좋다.보드랍고 완만한 길은 통나무 계단으로 이어진다. 그 계단 끝에서 산비탈을 우회해 연초록 심해 속을 헤엄치듯 꿈틀거리며 걷는다. 어제 내린 봄비가 만물의 생장을 북돋으니 만물들은 싱그러운 숲을 이루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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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산 정상과 우주측지관측센터 방향 갈림길에서 다시 통나무 계단이 이어진다. 키 높은 나무는 아직 어린 연두색을 돋아내고, 키 작은 나무들은 어린 연두색에서 서서히 초록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계단을 오르자 촉촉한 숲속의 습도가 몸의 열기에 더해져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계단을 다 오르면 길이 고분고분해지는가 기대했는데, 외려 나무뿌리가 드러날 정도로 헐어 거칠고 가파른 경사가 기다리고 있다.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무렵 잠시 발걸음을 멈추니 전월산이 0.38㎞ 남았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청아한 새소리의 응원을 받아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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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한 바위 옆을 지나자 데크계단이 이어진다. 아마도 바위 구간 때문이리라. 능선에 닿자 땅속에 묻힌 바위들이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길에 놓인 크고 작은 돌과 바위들은 그 주변으로 소나무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소나무 숲 끝에는 길고 널찍한 큰 바위가 세종시를 내려보며 앉아 있다. 이 바위가 바로 ‘상여바위’다. 옛날 고려시대 임난수 장군이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전월산에 들어와 은둔생활을 했다.그는 북쪽이 잘 보이는 이 큰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망한 고려를 생각하다가 결국 노환으로 목숨을 거두게 된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고려에 대한 마음이 갸륵하다 하여 그 바위를 상여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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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위에 오르면 남서 방향으로 광제사·세종호수공원·대통령기록관, 아파트 단지 등이 조망되고, 동쪽으로 금강을 가로지르는 아람찬교와 금빛노을교, 그리고 금강과 미호강의 합류점이 조망된다. 그리고 연초록 주단으로 덮인 전월산이 지척이다.상여바위에서 내려와 바위가 드문드문 박힌 길을 걷는다. 길옆으로 무수하게 열린 송화가 산들바람에 금새라도 휘날릴 것 같다. 다시 큰 바위를 지나면서 길은 부드러운 흙길로 바뀌고 전월산 행복의 숲 푯말을 지나자 오르막을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정상에 닿는다.정상에는 전망데크가 설치돼 있으나 숲이 우거져 조망은 거의 없다. 정상 주변을 따라가며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정상 옆에 전설이 있는 용천(龍泉) 또는 영천(靈泉)이라 부르는 용샘이 있고, 그 옆에 오래된 버드나무가 꿈틀거리고 있다. 용샘의 깊은 꽤 깊고 물도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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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이 용샘이 금강까지 이어져 있어 금강에서 살던 이무기가 용샘까지 올라와 승천하던 중 부정을 타서 승천하지 못하고 용천에 떨어진 후 버드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 같은 생기 가득한 모습이다.올랐던 길을 다시 쉬엄쉬엄 무궁화공원으로 하행한다. 주차장 200m를 남겨두고, 원수산을 다녀오기 위해 생태통로 방향의 유아숲체험원 뒤편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섶으로 자그마한 들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로 봄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가든스테이 방향으로 내려서자 원수산 방향의 이정표를 만난다. 진분홍 철쭉에 에워싸여 있는 연두색 숲속 쉼터를 지난다. 화장실 건물이 이색적인 디자인으로 시선을 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을 세우려는 노력이 여실히 엿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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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원수산 등산로로 접어들 수 있는 생태통로 입구에 닿는다. 몇 계단을 올라 진분홍 철쭉이 만개한 생태통로를 지난다. 또 다시 몇 계단을 오르니 세종시둘레길 푯말이 길을 안내한다. 완만한 경사의 부드러운 흙길, 연초록으로 물든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길이 어린아이 발바닥처럼 연하고 부드러워 맨발로 걷는 이들도 종종 만난다. 길은 서서히 오르막길로 모습을 바꾸고 갑자기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능선과 맞닿는 그 길 끝에서 벤치에 앉아 거친 숨을 고른다. 들숨 때마다 피톤치드가 잔뜩 몸속으로 번진다.이제 능선을 따라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흙길을 걷는다. 등산로 옆으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위한 걷기 길도 마련돼 있다. 능선은 서서히 땅속으로 들어가는 듯 기울어지면서 철탑을 지나자 이전보다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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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끝에서 좌우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만나지만 이정표가 없다. 초행길에 이런 경우를 만나면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잠시 자연의 숲에 영감을 맡겨보니 좌측으로 가라 한다. 그러자 나타난 이정표가 전월산(1.8㎞)·습지생태원(1.4㎞)·원수산 정상(350m)를 안내한다.몇 걸음 이동하자 다시 만난 갈림길, 한쪽은 흙길이고 다른 한쪽은 돌계단이다. 발길이 돌계단을 향하니 맡겨두고 계단을 오른다. 흙길과 짧은 돌계단이 반복되다가 이젠 끝이 보이지 않는 돌계단이 한없이 이어진다.힘든 계단 길에 위로가 되어주는 건 싱그러움이 가득한 숲, 만물이 활기찬 생기로 가득하고 분주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다. 주어진 계절에 최선을 다하는 만물에서 지금 한순간도 방일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행복’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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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계단을 올라 비지땀을 흘리며 능선에 닿으니 시원한 봄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준다. 좌측으로 원수산 정상(120m), 우측으로 형제봉(50m)을 안내한다. 일단 원수산을 올랐다가 하행할 때 형제봉을 둘러보기로 한다.가파른 통나무 계단과 암반, 그리고 통나무 계단을 오르니, 원수산 정상이 몇 걸음만 남은 지척에 있다. 곳곳에 마련된 쉼터를 지나자 원수산 정상석과 그 옆으로 전망데크가 널찍하게 마련되어 있다. 산들바람에 몸의 열기와 마음의 고뇌를 함께 실어 보낸다.원수산(元帥山, 해발 251m)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에 있는 산으로 전월산을 마주 보고 있다. 전월산과 함께 시민들에게 휴식과 행복도시의 전망을 제공하는 구릉성 산지이다. 원수산은 차령산맥의 정기를 이어받은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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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 전망대에서 전월산, 세종호수공원, 정부세종청사 방향으로 돌아가며 행복도시의 전경을 감상한다. 푸르른 산너울로 둘러싸인 도시, 잔잔한 물결이 생명을 일깨우는 도시, 이 행복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숱한 수모를 겪어야만 했던 故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지난날 기억의 조각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바쁜 일상에 빠져 허덕이다가 나를 잃고 헤매던 시절, 그 깨달음은 산을 찾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누구를 위한 삶, 누구에 의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이되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닐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든다. 그래서 산 이야기 속에 “나답게 사는 행복”이 깃들어 있다.원수산 정상에서 내려와 형제봉을 잠시 둘러보고 세종시 무궁화공원으로 돌아와 봄비를 머금고 분주하게 요동치는 만물과 교감하는 시간을 갈무리한다. 이번 산행은 나지막한 산이지만 숲속 명상에 더없이 좋은 길이었다. 총 걸은 거리는 약 8.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