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송웅 진짜 한 마리 원숭이 그 자체였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목에 힘을 주고 복학을 했다. 걸음걸이도 뒷짐을 지고 느릿하게 걸었다. 청평, 가평, 양수리, 영등포 일대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술독 꽤 부숴버렸던 친구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젠장 모처럼 ‘도꼬다이’로 화신백화점 벽에 붙은 골목 끝 극장식 카바레 ‘초원의 집’을 찾았으나 명색이 예비역인데 떠가리가 큰 문지기 엉아(형)한테 혼만 나고 들어가지도 못했다. 화류계에서 예비역 따위는 인정해 주질 않았다. 종로 2가를 가로질러 무교동을 끼고 회현동으로 뚜벅이 걸음으로 발길을 돌려 전영록이 DJ로 출연하는 명동 학다방(지하 음악다방)에 자리를 잡았다. 킁킁대고 사냥을 시작하는데, 좀처럼 걸리지 않는다. 군바리 삼 년 동안 국방부 냄새가 밴 나머지 ‘극성여대(미팅에서 오죽 극성스러웠으면 덕성여대를 그렇게 불렀다)’조차 눈길도 주지 않았다. 허탕이다. 

    격세지감을 느껴 학다방 ‘헌팅’을 포기하고 명동성당으로 간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걸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걸려다오. 저만치 차를 마시면서 연극을 보는 극장식 카페 ‘살롱 떼아뜨르 추’ 간판이 내리막길 2층에 걸려 있다. 원숭이를 모델로 시작한 ‘빠알간 피터의 고백’으로 추송웅(1941~1985) 모노드라마 장을 열었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다. 추송웅은 진짜 한 마리의 원숭이 그 자체였다. 쫄보는 마지막 공연을 본 후 말없이 서울을 떠난다. 

    ​경부고속도로 청주 톨게이트에 들어서면 수십 년 동안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킨 플라타너스 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서서 넓은 잎새를 맘껏 흔든다. 그 넓은 잎새가 만들어 주는 시원한 그늘 덕분에 대한민국 가로수길 명소가 되었다. 플라타너스? 테스형 제자 플라톤이 제자들에게 강의할 때 그 나무 밑에서 즐겨했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란다. 한때 폭풍처럼 젊음을 낚아챘던 하이킹 코스 원조이자 청주의 관문에는 지금도 플라타너스가 반갑게 웃고 있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했던가, 가진 재주라곤 입대하기 전 일 년 남짓 남문로 한일은행 지하 ‘갈채 음악다방’에서 남는 시간 땜빵 보조로 시작하여, 서문대교 맞은편 2층 ‘금상 음악실’, 사직동 삼주카바레 지하 ‘탄생 음악 다실’, 북문로 청주경찰서 입구 고속정육점 4층 ‘늘봄 음악다방’, 석교동 청주신협 지하 ‘타박네 음악감상실’ 판돌이 경험이 전부였다. “사장님, 종훈이랑 일일 찻집을 해보려고 합니다.” “10만 원은 줘야 해.” 겨우겨우 사정해서 8만 원으로 ‘쇼부(흐정)’를 쳤다. 동창들에게 안경 강매를 하던 현대안경원(지금도 그때 그 자리에 남아있다)이 번뜩 떠올랐다. 거래라고 하기엔 다소 쑥스럽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거래하던, 현대안경원을 찾아가 2만 원으로 결가하여 광고를 받았다. 

    이 돈이면 티켓 500장 정도 세련되게 2도 칼라 옵셋 인쇄비로 충분했다.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바탕에는 쫄보를 열광시켰던 영국 듀엣 가수 ‘유리스믹스’를 아미로 깔았다. 장당 1000원에 강매를 시작했다. 어마어마하게 남는 장사였다. 금상 음악실 대여료 8만 원, 티켓 인쇄비 2만 원, 종훈이 인건비 5만 원, 천연사이다‧쿨민트‧맥스웰 내리는 커피 원가 2만 원, 손님 접대는 효주, 희경이, 현숙이, 은경이가 무임 노동해 줘서 17만 원이었고, 티켓 매출 30만 원 정도였으니 일당 13만 원을 챙긴 셈이다. 

    늘 그랬듯이 남은 돈을 가지고 영동 청주연초제조창 지하 ‘미리내 학사주점’으로 달려가 작살냈다. 늦은 가을 늦은 밤에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 가수 최헌의 허스키한 노랫소리가 쫄보 일당을 거나하게 취하게 만든다. 

    ​생일날 뭘 해야 할지 나름대로 작전을 짜고 있는데, 하복 입은 경찰들이 왠지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염병할…. TV에서 때깔 좋은 양복을 입은 아나운서(누구든 알 말한 사람이다)가 앵무새처럼 낑낑댄다. “불순한 세력들이 서울 을지로 미문화원을 기습 점거한 후 ‘광주 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죄하라’ 구호를 내붙이고 주한 미국 대사와의 면담과 내외신 기자회견 보장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에 혼란을 일으키는 불순분자를 척결하기 위해 군과 경찰이 진압에 나서고 있다.” 

    ​쫄보는 골프가 뭔지를 모른다. 청주약국 맞은편 2층에 네덜란드식 발코니 창문이 달린 음악다방이 문을 열었다. 간판도 간지게 세련된 ‘꽃잎커피살롱’ 이라니?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단어 살롱? 작달막한 키에 야무지게 생긴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말씨가 곱다. 서울에서 내려온 전직 국가대표 골프선수 김찬이라 했다. 
  • ▲ 음악감상실 티켓.ⓒ이재룡 칼럼니스트
    ▲ 음악감상실 티켓.ⓒ이재룡 칼럼니스트
    “사장님 개업 약발을 받으려면 일일 찻집을 때려야 합니다. 똑소리 나게 키워 드릴 테니 하루만 10만 원에 빌려주세요.” 티켓 인쇄비 확보를 위해 잔머리를 굴려 현대안경원과 신광사 안경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신광사 안경과 5만 원으로 ‘딜(협상)’을 봤다. 청주 시내 분위기 짱이던 북문로 ‘가네기 커피홀’에서 영태전자, 삼화전기, AMK, 해태제과 공순이의 넘사벽으로 아주 잘 나가던 심용훈을 섭외하고, 청주대와 청주사대 무용과 여학생들이 득시글하던 문화동 공무원연금매장 2층 ‘맨하탄 나이트클럽’ DJ 철호를 섭외하고, 1978 MBC 대학가요제 출신 청주대학교 동아리 셀레멘더스 1기 78학번 최병일을 섭외하여 진용을 구축했다. 지금도 그때 그 노래 ‘헤어진 후에’를 들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오는 손님 족족 커피는 쳐다도 안 보고 스카치만 ‘아작내니(결딴내니)’ 오히려 손해가 막심하다. 무한리필은 아니지만, 그냥 줬다. 폭삭 망했다. 인건비도 많이 들고 원가도 높아서 마이너스 8만 원이 되었다. 

    쫄보는 이십 대의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쫄보는 뒤도 안 보고 돌아갈 것이기에 1980년대 그늘이 아름답고 시원하다. 삼천리 자전거 페달을 밟아 사직동 제사공장을 따라 십여 리를 달려 청원군 강서면 검문소 입구 플라타너스 길에 섰다. 

    ​그 해 무지하게 뜨거운 여름날 남문로 동강백화점을 지나다 준용이를 만났다. “잘 돼가니?” “뭐가?” “왜 이래…. 금란이랑….” 까맣게 잊혀갈 즈음 금란이가 소환된 것이다. 순간 가슴이 꿈틀댄다. 황금란. 

    ​2024년 3월 28일.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리 왜 이렇게 힘들어. 사랑은 또 왜 이리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 어찌 알겠소. 이재룡 플라타너스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는 봄 햇살을 모아 글로 빗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