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를 엎어놓은 모양의 산봉우리[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북 괴산군 편
  • ▲ 구름이 걸려있는 시루봉.ⓒ진경수 山 애호가
    ▲ 구름이 걸려있는 시루봉.ⓒ진경수 山 애호가
    시루봉(해발 914m)은 백두대간의 희양산과 이만봉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산명은 산봉우리가 마치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희양산과 이만봉의 위엄에 눌려 마루금을 벗어나 북쪽으로 물러나 앉아 있다.

    시루봉을 오르기 위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번 산행은 ‘은티마을 주차장~은티마을입구~산행입구~희양폭포~병풍바위~성재세거리~안부네거리~시루봉 고스락~시루봉 갈림길~시루봉쉼터~은티마을 주차장’의 원점회귀 코스다.

    주차장을 출발하여 은티마을로 향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노송과 장승, 은티마을 유래비, 그리고 동고제(洞告祭)를 지내는 제단에 세워진 남근석(男根石)을 만난다.

    은티마을은 풍수지리상 자궁혈(子宮穴) 형상을 이루고 있어 포근하고 물이 많아 사람 살기에 좋은 땅이지만 기(氣)가 너무 세다는 설에 따라 마을 입구에 소나무 숲(陰毛에 해당 됨)을 가꾸고 남녀간 기(氣)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근석을 세웠다고 한다. 
  • ▲ 은티마을 입구의 남근석.ⓒ진경수 山 애호가
    ▲ 은티마을 입구의 남근석.ⓒ진경수 山 애호가
    남근석을 지나는 포장길을 걷다가 이어 개울 다리를 건너 0.4㎞를 이동하면 ‘시루봉(3.2㎞)과 구왕봉(3.3㎞)’ 이정표를 만난다. 이번 산행은 시루봉 방향으로 하행하고, 구왕봉(희양산) 방향으로 상행하기로 한다. 산행입구로 이동하면서 좌측으로 구름이 걸려있는 시루봉을 조망한다.

    희양산과 구왕봉 세거리인 산행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지름티재·희양산(3.6㎞)」 방향이고, 우측으로 가면 「호리골재·구왕봉(3.0㎞)」방향이다. 백두대간 희양산의 표지석이 세워진 지름티재 방향으로 이동한다.

    세거리 길에서 좌측 커다란 바위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객들이 정성 들여 쌓아올린 돌탑이 반갑게 맞이한다. 계곡 바위에 떨어진 낙엽이 쌀쌀한 기온과 함께 쓸쓸함을 더한다. 계곡을 지나 구릉을 지나면서 곳곳에서 이끼를 잔뜩 머금은 바위덩어리를 만난다.

    갈색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산길에서 아침 햇살을 온 가슴으로 받으며 걸으니 상쾌하고 맑고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이어 완만한 비탈길을 혼자서 걷자니 낙엽을 밟는 바스락대는 소리가 적막을 깨트리며 귓전을 때린다.
  • ▲ 희양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희양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비스듬하게 놓인 바위에 끼워놓은 나뭇가지가 산객들의 희롱인지 진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심하게 지나간다. 갈색 낙엽이 마치 양탄자를 깔라놓은 듯 포근하고, 그 속에서 회색빛 몸체를 드러낸 바위가 빛을 쬐는 듯하다.

    폭포수 대신 낙엽이 흐르고 있는 희양폭포를 만난다. 일전에 희양산을 다녀오면서 하행할 때도 물이 흐르지 않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 친 곳이다. 계곡에 물이 없으니 폭포라는 실마리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폭포를 이루는 맨 위의 넓적한 바위를 건너서 산행을 계속한다. 조릿대와 참나무 숲 사이를  걸으면서 좌측으로 길게 누운 암반이 마치 매트리스를 깔아 놓은 듯하다. 매트리스 암반 끝자락을 지나면서 ‘모자 바위’를 만난다.

    한 걸음 더 이동해서 뒤돌아보면 바위 덩어리가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모자 바위는 놀라서 눈이 튀어나온 형상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놀란 얼굴 바위’를 지나고 산을 둘러싼 장엄한 ‘병풍 바위’의 호위를 받으며 산길을 오른다.
  • ▲ 놀란 얼굴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놀란 얼굴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늦가을 산행은 숲에 가려진 기암괴석의 모습이 잘 드러나서 재미를 더한다. 병풍 바위를 지나면서 가지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마치 바위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것들은 제각기 생긴 모습 그대로 그들답게 그 자리를 지킨다.

    바위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가파른 오르막을 힘차게 오른다. 저 앞에 석성(石城)이 보이고, 계곡 아래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진다. 석성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경사는 가팔라지고 길을 거칠어진다.

    성벽을 올라서면 해발 988m의 ‘시루봉(2.2㎞)·은티마을(3.2㎞)·희양산(1.0㎞)’ 갈림길의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좌측의 성벽을 따라 약 20m 이동하고 이어서 아직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조릿대 구간을 걷는다.

    앙상한 참나무 덕택에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 조릿대가 더 맑게 드러난다. 조릿대 구간을 지나고 작은 제1 봉우리의 왼쪽으로 우회한다. 발아래에는 낭떠러지기로 험준하지만 그 덕분에 희양산과 구왕봉을 조망한다.
  • ▲ 제1 봉우리를 우회하면서 바라본 희양산.ⓒ진경수 山 애호가
    ▲ 제1 봉우리를 우회하면서 바라본 희양산.ⓒ진경수 山 애호가
    제1 봉우리를 하행하면서 우뚝 솟은 제6 봉우리를 조망한다. 바윗길인 제1 봉우리에 이어 제2 봉우리부터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바위들이 박혀있는 능선을 걷는다.

    산길의 돌부리들이 낙엽에 덮여있어 마치 독사가 도사리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게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데, 인적이 없어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하여 자신의 낙엽 밟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드디어 제6 봉우리에 도착하여 하행하는데 산길을 중심으로 우측에만 조릿대가 번식하고 있다. 참으로 자연의 신비란 오묘하다. 안부에 도착해 ‘시루봉(0.9㎞)‧이만봉(2.0㎞)‧은티마을(2.4㎞)‧구왕봉(2.8㎞)’ 네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시루봉 방향으로 이동하는데 평원이 형성되어 있다. 자칫하면 등산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흔적을 찾아 돌길을 걷는다. 숲이 우거지지 않아 시야가 확보돼 그나마 다행스럽다.
  • ▲ 안부 네거리에서 시루봉 방향으로 펼쳐진 평원.ⓒ진경수 山 애호가
    ▲ 안부 네거리에서 시루봉 방향으로 펼쳐진 평원.ⓒ진경수 山 애호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완만한 경사의 평원지대를 0.6㎞ 정도 이동하면 ‘시루봉(0.3㎞)‧이만봉(2.3㎞)‧구왕봉(3.6㎞)’ 세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시루봉으로 오르는 산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의 돌길이다. 능선을 0.1㎞을 오르고 나면 시루봉과 진촌리 갈림길과 마주한다.

    시루봉 능선에는 날카로운 돌이 박혀있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고도가 가장 높은 산머리에 도착했지만 비좁은 돌길이고 등산리본만 붙어 있다.

    이곳에서 약 3~4m을 더 나아가니 시루봉 고스락 돌이 설치된 전망대에 도착한다. 성재 네거리에서 제1 봉우리로 향할 때 조망이 있은 이후 두 번째로 맞는 조망점이다.
  • ▲ 시루봉 전망대.ⓒ진경수 山 애호가
    ▲ 시루봉 전망대.ⓒ진경수 山 애호가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전망이 시원하게 터지면서 동공이 확장하고, 찬바람도 제법 불어와 흘린 땀에 적은 몸이 서늘한 찬기를 느끼면서 땀구멍이 좁아든다.

    해발 914m의 높이에서 연풍읍과 연풍휴게소를 내려다본다. 동쪽으로 주흘산이 위용을 뽐내고 북쪽으로 신선봉, 깃대봉, 신선암봉, 그리고 조령산의 능선이 아름다운 산군을 이룬다.

    그런 산군 뒤로 까마득하게 월악산이 가물거린다. 얼마전만해도 청록으로 생기가 넘쳤던 산야가 이젠 갈색과 암청록의 반점으로 변했고, 조만간 하얀 서리나 눈이 내린 순백으로 변할 것이다.

    마치 우리네 삶이 연륜이 쌓일수록 탐욕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담백해졌을 때 더욱 고상하고 그윽함이 짙게 묻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 ▲ 시루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령산.ⓒ진경수 山 애호가
    ▲ 시루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령산.ⓒ진경수 山 애호가
    전망대에서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혹처럼 툭 튀어나온 바위 앞에서 좌측으로 선행자의 흔적을 따라 하산한다.

    산비탈은 가파른 경사와 산돌과 낙엽이 뒤섞여 미끄럽고 까칠하고 험난하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 사이를 잇는 밧줄에 의지해 천천히 하행한다.

    너널지대를 지나 산비탈을 무사히 하산하니 시루봉에서 하행한 거리가 1.5㎞이라고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러나 체감한 거리는 그 두 배가 훨씬 넘게 느낄 정도로 험난했다.

    이곳에서 하행한 산길이 아닌 좌측으로 안부 네거리를 거쳐 시루봉으로 오를 수 있는데 그 거리가 2.1㎞이고, 은티마을로 하행하는데 1.4㎞를 더 이동해야 한다.
  • ▲ 시루봉 계곡.ⓒ진경수 山 애호가
    ▲ 시루봉 계곡.ⓒ진경수 山 애호가
    하행하는 좌측으로 계곡을 끼고 드문드문 만나는 등산 리본을 연결하며 이동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시루봉 계곡의 깊숙하면서도 메마른 골짜기는 음산하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자연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계곡에는 기암괴석과 기이한 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끼를 잔득 머금은 바위에 쌓인 낙엽과 울창하게 들어선 숲이 원시림의 맛을 풍긴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산길은 낙엽이 수북하게 쌓은 완만한 길로 이어진다.

    이어 평탄한 길을 걷다보면 상수원보호 철망에 붙어있는 형형색색의 등산 리본을 만나고, 그 뒤로 시루봉(3.0㎞)과 은티마을(0.6㎞) 이정표를 만난다.
  • ▲ 가을 오후의 들판을 품은 희양산(좌)과 구왕봉(우).ⓒ진경수 山 애호가
    ▲ 가을 오후의 들판을 품은 희양산(좌)과 구왕봉(우).ⓒ진경수 山 애호가
    이곳에서 포장길(은티중리4길)을 따라 은티마을로 내려오면서 가끔씩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시루봉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다.

    마분동의 산등성과 은티마을의 갈색 단풍잎이 아름다운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으로 테마가 있는 시루봉 쉼터를 지난다.

    좌측으로 가을 오후의 들판을 품고 있는 희양산과 구왕봉을 한 눈에 담아간다. 이어 ‘시루봉(3.2㎞)‧은티마을(0.4㎞)‧구왕봉(3.3㎞)’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에서 포장길을 따라 은티마을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약 8㎞의 시루봉 산행은 깊은 가을을 넘어 겨울 문턱으로 들어가는 순수하면서도 투박한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