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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 시사칼럼] 그럼에도 ‘MZ 세대’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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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7-04 19:56 | 수정 2021-07-05 13:55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명예교수

#1. 2019년 3월 15일 자 한 학회의 ‘뉴스레터’지에 ‘스카이캐슬’ 식 수학교육, 바람직한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교육부 장관도 국무회의에서 사교육 문제로 드라마를 언급할 정도로 장안의 관심을 끌었던 한 TV 종합편성채널의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두고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칼럼이었다. 

그 칼럼에서는 마침 조선일보 2019년 3월 2일 자 주말 섹션 ‘아무튼 주말’에 지방대 출신이 최초로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한 청년 변호사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그에 대하여도 언급하였다. 

아버지는 증권회사 직원,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였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은 학창 시절 부모에게서 “공부해라”라는 잔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고,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아는 게 좋다며 트럼펫을 배웠고,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며 YMCA 캠프 등을 다녔다고 했다. 본인 생각과 판단대로 마이스터고에 진학했는데 부모님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셨다. 

마이스터고 졸업 후 위탁교육으로 부산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는데, 대학에서 회계 관련 수업을 듣고 재미를 느껴 공부하다 보니 공대 재학 중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덕분에 대학 졸업 후 공군 재정 장교로 임관됐다. 재정 장교는 외부업체와 계약할 일이 많은데, 사건 사고가 터지면 법으로 해결해야 해서 군 법무실에 들락거리며 규정을 찾다가 법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는 게다. 군 복무 중이라 로스쿨에 갈 수 없어서 시간을 절약하여 사시를 준비했다. 사시 합격 후 연수원 때 공부는 사시 공부와 달라서 연수원생들에게는 모두 새로운 공부여서 법학 전공이 아니었어도 전공자에게 뒤처질 이유 없어서 같은 조건으로 공부하다 보니 수석 수료했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공부해라”, “어느 대학에 가야 한다”라는 말씀을 안 하시고 “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행복하면 된다”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방목형 교육’으로 중고등학교 때 공부에 방전(放電)된 적이 없어서 나이 들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로펌 김앤장 소속 김진수 변호사 이야기인데 기사의 말미에 기자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의 앞으로의 30년이 더 궁금해졌다.’ 필자도 그의 앞으로의 30년이 궁금하다고 썼다. 방목형 교육의 결과가 궁금해서였다.

#2. 필자가 주말섹션 ‘아무튼 주말’을 빠뜨리지 않고 다 읽는 이유는 늘 그때 꼭 맞는 기사 대상을 찾아내는 안목에 공감해서이다. 지난 7월 3일 자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에 나온 ‘넥타이도 못 매는 이 남자 ‘AI 혁명’ 최전선에 서다 (김미리 기자 취재)‘도 앞서 김진수 변호사 이야기 이상의 감동이었고 지금 시점과 맞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본다. 

2008년 가을 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덕 캠퍼스, 졸업으로 직진하는 대부분의 KAIST 천재와는 달리 7년째 학부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전산학과 ‘02학번’ 학생이 있었다. 
하루는 선배가 학과 사무실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건넸다. 핀란드 알토대 ‘인공지능(AI)’ 석사과정 프로그램 모집 공지였다. 미래가 희미했던 공학도는 이듬해 무작정 핀란드로 떠났다.

13년 전 졸업을 걱정했던 그 청춘이 지난달 모교 KAIST 전산학과에 1억 원을 쾌척했다. 장학금 이름은 '임미숙 장학금', 지원 대상은 여학생이었다. 임미숙은 기부자의 어머니다. 세계적 AI 석학으로 꼽히는 조경현(36)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인공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몬트리올대 교수와 함께 발표한 ‘신경망 기계 번역’ 개념은 기존 기계 번역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버렸다. 구글 번역기 등 대부분 번역기가 이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2015년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얼마 전엔 국내 최고 권위 학술상인 '삼성 호암상' 공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타는 족족 기부하고, 남성 공학자이지만 여성 공학자 육성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최첨단 AI 전문가인데 정작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인문학이라고 역설한다. 조 교수는 젊은 나이인데도 줄기차게 기부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삼성 AI 연구자상’을 받고 상금 전액을 몬트리올대에 기부했다.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는 족족 내놓았다. 

부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받는 월급이면 저 혼자 충분히 삽니다. 학계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어요. 지금은 기회 불평등 때문에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 차이가 더 나요. 형편이 되는 한, 형평성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호암상 상금으로 지금까지 세 가지 기부를 했다. 석‧박사를 한 알토대에 3만 유로(약 4000만 원), 모교 KAIST에 1억 원, 한국 고전 연구자를 위한 ‘백규 고전 학술상’ 제정에 1억 원을 기부했다. 

AI에서는 ‘젠더 균형’이 더 중요해요. AI는 간단히 말하면 알고리즘 안에 데이터를 넣어서 학습하는 건데, 이 데이터가 젠더·지역 등 여러 측면에서 대표성(representation)을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편향된 데이터는 알고리즘을 거치면서 편향성이 증폭돼요. 여성과 소수 집단이 배제되면 점점 더 배제되는 거지요. 다양성을 높이는 게 무척 중요해요.

아버지가 고전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을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전’ 아들은 ‘AI’라는 전혀 다른 갱도를 파고 있는 듯했지만, 父子는 ‘언어’라는 공통분모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부는 AI 사업 등 과학기술산업엔 몇조 원씩 지원하면서, 인문학 분야는 거의 지원을 안 합니다. 정부는 미래를 위해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분야에 장기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그는 “AI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과연 ‘지능이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라고 했다. 

저는 심심하게 사는 사람이에요. 필요한 거라고 해 봐야 맥주 정도? 10원짜리 하나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기부할 거예요. 가상 세계를 움직이는 서른여섯의 천재 공학자는 이미 물질세계로부터 초탈한 듯했다.(조선일보 2021년 7월 3일, B1‧B2면에서 발췌 인용)

#3. 신문 2면짜리 본문에서 꼭 인용해야 할 내용으로 요약했음에도 인용이 길어졌다.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MZ 세대’가 뜨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얼마 전 정치판에 청년 세대의 돌풍을 일으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비슷한 연배인 조경현 뉴욕대 종신 교수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래도 우리나라는 정치가 엉망진창이어도 반듯하게 성장한 젊은이들이 있어서 쉽게 망하진 않겠구나’라고 안도하게 된다. 아울러 방목형 교육과 스스로 책을 가까이하며 자라게 한 교육이 생각이 깊고 유능한 인재를 만든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조 교수와 같은 연배인 설치예술 작가 ‘문 아무개’ 씨의 근래 행적과 대비가 되어 좀 씁쓸하다. 푸른 지붕 집 어떤 수석이 ‘문 작가가 세계적인 어쩌고’라고 강변하던 모습이 오버랩되어 헛웃음도 나온다. 

언필칭 세계적인 인물은 적어도 조경현 교수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세계적 인물이란 미래를 보는 안목과 비움으로 선행(善行)하는 여유로움과 탄탄한 실력으로 세계적 업적을 쌓는 사람에게 붙이는 명칭일 진데, 그들의 처신과 변명이 정말 찌질해서 많은 국민이 혀를 찼다는 사실이나 알아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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