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官)은 자신을 다스리는 자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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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백수는 벌떡 일어선다. 6층 아파트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창공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늘 조급하고 공격적인 성격 때문에 문제가 된 삶이었다. 공격성은 승리할 때는 호쾌하지만, 언제나 이기고 살 수만은 없는 게 인생살이다. 

    그래서 남을 공격하기보다는 방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삶이다. 요즘 들어 최백수가 가장 감명 깊게 생각하는 글귀가 하나 있다. 바로 '운(運) 둔(鈍) 근(根)'이란 말이다.

    삼성 그룹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운(運)이 좋아야 되고, 매사를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鈍)는 것이다. 작은 일에 너무 민감하면 큰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게 끈기(根)라는 것이다. 일본말로 '곤조'라는 뜻인데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근성을 말한다. 이렇게 '운·둔·근' 세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었을 때 비로소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백수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 세 가지 조건 중에서 한 가지는 갖추었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운(運)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고관대작이나 부자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던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단 한 번의 취직시험으로 공무원이 되었고, 직장을 퇴직해서도 실패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이것은 자신의 노력 덕분이 아니라 순전히 운이 좋았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매사에 너무 조급하거나 민감해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백수의 생각은 다시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약 조금만 더 민감하지 않았다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꾸 난다. 충분히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었지만 너무 민감한 성격 때문에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후회한다. 입사시험에 합격해서 같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동기생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고 느끼는 감회다.
    막 출발할 때 우수했던 동료들이 끝까지 1등은 아니었다. 처음엔 다소 뒤처졌더라도 끝까지 완주하는 게 중요했다. 1~2년 늦게 진급하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승진이 다소 늦는 게 오히려 유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묘미를 터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오판했다. 얼마든지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렸던 것이다.
    “누가 옆에서 조언만 해주었더라도….”

    최백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없다. 누군가가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처럼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명만 해주었다면 그렇게 조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눈길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끈기가 있었다면…”
    만약 어린 시절 누군가 운(運) 둔(鈍) 근(根)이란 말을 해주고, 가슴에 새길 수만 있었다면 자신의 인생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을 느낀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며 최백수는 역학 책을 뒤적인다.
    왜 그렇게 조급하고 참을성이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다. 역학적인 관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관(官)'이 부족한 때문이다.”
    최백수는 중대한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관은 무엇인가? 바로 나를 다스리는 자제력이다. 금(金) 기운(氣運)이 많은 사람에게 관은 화(火)다. 무쇠 덩어리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대장간에 가서 불로 녹여야만 비로소 연장으로 만들 수 있다. 무쇠는 낫이나 쇠스랑 칼 등으로 만들어야만 쓸모가 있다. 공직자로 출세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관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특성이 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겐 관보다 재(財)가 더 필요하다. 그런 사례를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국무총리나 장관을 임명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처야 하는 과정이 인사청문회다.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곤욕스러워하는 게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 등이다. 세상살이를 하다가 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자식을 위해서 학군이 좋은 곳으로 위장전입을 해본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논문 표절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문제이지 석박사가 되기 위해서는 남의 논문을 표절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총리나 장관이 되려는 사람에겐 문제가 된다.
    그냥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로 인해서 낙마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관(官)이기 때문이다. 공직자는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직책이라서 그렇다. 공직자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국민을 다스릴 자격이 없다. 고위 공직자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치부나 하고 여자나 탐하고 다니면 나라 꼴이 되겠는가?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바르게 사는 습성을 키워야 한다. 다른 사람이 다 바람을 피워도 절제해야 하고. 동료들이 다 돈을 탐해도 돌처럼 봐야 한다. 인사청문회는 절제된 생활이 몸에 배지 않으면 공직자가 될 수 없다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최백수는 이런 경우에 딱 맞는 사례가 있다고 손뼉을 친다. 바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최태원 SK 회장이다. 두 사람이 다 내연녀의 혼외자식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채동욱 검찰총장은 그 문제로 임기도 못 채우고 떨려났지만 최 회장은 아직도 건재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