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관람료 없는 화복 쪽이 좋아”

  • 최백수는 모처럼 속리산을 오르고 있다. 당초엔 법주사 쪽으로 가려고 했다. 법주사 쪽은 무엇보다 등산을 하기위한 기반시설이 잘되어 있다. 중간 중간에 휴게소도 있고, 볼만한 구경거리도 많다.
    보은하면 속리산이, 속리산 하면 법주사가 생각날 정도로 연관성이 높은 곳이다. 속리산이란 명칭이 말해주듯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지친 사람들이 기력을 상실했을 때 숨어들 듯 찾아와서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심산유곡 한적한 절간에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심신을 달래고 싶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최백수도 지금 지쳐있다. 무슨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순 없지만 몹시 피곤하다. 사람 만나는 게 무섭다.

    잠시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자연을 벗 삼아 쉬고 싶다. 사실 등산은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가 최고다. 단풍 절정기를 일부러 피한 것은 사람 때문이다. 산을 찾는 것은, 특히 속리산을 찾는 것은 사람을 피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산에 와서까지 사람들에게 시달린다는 생각은 하기도 싫다. 그래서 단풍도 다 지고, 사람도 거의 없는 초겨울에 속리산을 찾은 것이다. 막 첫눈이라도 내릴 것처럼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괜히 이쪽으로 왔나?”
    너무 호젓하다는 기분이 든다. 간혹 마주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등산하는 맛이 나는 법인데, 한 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혹시 멧돼지라도 나타나면 어쩌지? 머리털이 서는 기분이다.
    최백수가 이쪽으로 오면 이럴 것이란 사실을 잘 알면서도 굳이 화북 쪽을 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법주사에선 문화재 관람료를 받기 때문이다. 까짓, 돈 몇천 원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분 문제다. 돈을 줄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돈을 준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강탈당한 기분이 든다. 문화재를 구경한다면 당연히 관람료를 내는 게 원칙이다. 문화재는 법주사 사찰 경내에 있고, 사찰은 들어가지도 않는데 관람료를 낸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식당에서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근처를 지나간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옛날 조선시대에 탐관오리들이 낳지도 않은 아이에게 세금을 걷는 것이나 비슷한 거 아닌가.

    탐관오리가 판치는 조선 시대 같으면 그런 일이 통한다고 치자. 지금은 문명시대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횡포를 부리면 격렬한 저항을 받는다. 재벌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라! 갑질을 타도하기 위한 을의 저항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실감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세상인데도 수혜자 부담 원칙에 반하는 게 두 개 있다. 하나는 사찰에서 문화재관 관람료를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KBS가 시청료를 징수하는 것이다. 방송도 수혜자 부담원칙에 따라 시청하는 사람에게만 시청료를 받는 게 원칙이다.

    시청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단지 TV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시청료를 강제로 징수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문화재 옆에는 가지도 않는 등산객에게 관람료를 받는 것이나 비슷한 횡포다.

    만약. 한전에서 전기도 사용하지 않는 빈집까지 전기료를 받는다면 가만히 있겠는가? 그거와 무엇이 다른가. 꼭 시청료를 징수하겠다면 합리적인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집집마다 시청료 계량기를 달아놓고 사용량에 따라서 요금을 징수하는 것이다.
    그게 합리적인 게 아닌가? 조금이라도 부당한 일을 하면 바로 잡는 일을 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많은데도 시정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하다. 우선 무슨 일만 있으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언론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뒤처리를 하는 게 행정기관이다. 관할 시청이나 군청 등에서 감사를 한다, 징계를 한다, 야단법석을 떤다. 그것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경찰서에서 수사를 한다고 오라 가라 하면 검찰로 이어지고, 결국은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끝이 난다.
    물 샐 틈 없는 구조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부당한 것을 밝혀내고 시정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는 사회에서 문화재 관람료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째서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한 마디로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종교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신도들이 벌떼처럼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표를 잃게 되어 대통령이고, 국회의원이고, 시장, 군수고 간에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자치단체나 수사기관 등은 자연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왕초도 못 건드리는 종교 문제를 잘못 건드려 봉변당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누적되다 보니 종교가 치외법권의 성역이 돼버린 것이다.

    최백수는 법주사 쪽으로 등산하려면 이런 생각을 해야 하니까 골치가 아프다. 골치 아픈 일을 잊기 위해서 산을 찾는 것인데 구태여 골치 아픈 일을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에서 방향을 튼 것이다.
    최백수는 숨이 턱에 닿는 기분을 느낀다. 더 이상 억지로 산을 오르다간 머리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기분으로 앉을 자리를 찾는다. 다행히 널찍한 바위 하나를 발견한다.
    앞이 확 트인다. 갑자기 머리가 개운해진다. 골치를 아프게 만들었던 세속적인 일들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는 것 같다. 한 살림 차리기라도 하려는 듯 자리를 잡고 앉는다.
     “내려올 산을 뭐하러 기를 쓰고 올라가니?“

    비웃던 친구의 말을 생각하면서 최백수는 씽긋 웃는다. 쓸쓸하다는 생각이다. 마음 맞고 얘기가 통하는 친구와 동행했다면 문장대까지 2시간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역시 어울려 살아야 살맛이 나는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매주 월수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