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자식에게“한양 벗어나는 순간 기회 사라지니 한양서 버텨라”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정약용 ‘경세유표’)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이채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 두물머리에서 태어나 그 칠흑같이 캄캄한 밤 양철 배를 타고 천진암을 오가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시대를 앞서간 천재 정약용이다.

    ​한때는 정조와 ‘쿵짝(장단)’이 너무도 잘 맞아 궁중에서 펄펄 날았다. 정조가 죽자 채 1년도 안 되어 정약용은 아주 길고도 긴 18년간의 귀양살이가 시작된다. 구실이야 천주학쟁이라지만 실상은 정조의 측근이니 정치적으로 제거할 목적이었다. 귀양이 무서운 건 ‘선빵(선제공격)’으로 곤장 100대를 맞고 시작된다. 진짜 곤장 100대를 맞으면 죽는다. 그냥 처형당하는 게 깔끔하다. 여자고 지랄이고 열외는 없다. 곤장 100대를 맞고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 

    형장에서 죽어 나가던지 반신불수가 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정적을 귀양 조치해 놓고는 곤장을 통해 죽여서 제거하는 방법을 툭하면 써먹었다. 정약용이 곤장 100대를 맞았다는 기록은 보질 못했으니 참 이상하다. 정약용이 곤장 대신 속전이라는 벌금을 내서 면제를 받은 건지, 곤장을 대신 맞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건지 모를 일이다. 똑소리 나게 면제받는 방법도 있었다. 정치적인 문제로 귀양을 갈 때 국왕이 곤장을 면제해 주었다. 그렇다면 허수아비 순조보다는 섭정을 맡은 정순왕후에게 ‘짜웅’해서 면제받았나? 잘 모르겠다. 

    ​일단 실록 기록 어디에도 진짜 곤장 100대를 맞았다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10대 정도 때리고 나머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내면서 요식행위로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맞은 사람은 골반뼈(엉덩이뼈)와 허리가 부러진 채로 귀양살이가 시작된다고 보아야 앞뒤가 맞는다.  

    ​누구는 18년 동안 장기독재를 하였고 누구는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성씨만 다를 뿐 그 기간은 오십보백보였다. 
     
    ​정약용은 ‘노론’ 송시열과 ‘남인’ 윤선도 틈바구니에서 신하가 주군을 죽이는 불충(不忠)의 시대, 장인이 사위를 죽이는 불륜(不倫)의 시대, 부인이 남편을 죽이는 부정(不淨)의 시대에 살아야 했다. 조선 후기 격랑의 소용돌이가 피바람을 몰고 온다. 예나 지금이나 같다. 

    ​탓하지 않았다. 까닭을 묻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구실이나 핑계로 삼지도 않았다. 귀양 가기 직전 감옥에 갇혔을 때 꿈을 꾸었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소무(蘇武, 701~762)는 19년 동안 참았는데, 지금 너는 19일도 못 참느냐?”라고 꾸짖었다. 정약용은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감옥살이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유배 가서 쓴 시는 절절하고 슬프고 비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탓하지 않았다.   

    ​조선 땅에는 온통 빨간색과 파란색이 난무한다. 하늘색이나 주황색은 새 발의 피만큼도 안 되어 색을 버린 채 희석되었다.  

    ​파란 잔디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춘 사월이 되었다. “나이스 샷”, 줄여서 “굿 샷”을 오지게 질러댄다. 행여 생뚱맞게 오비(OB) 구역으로 볼이 사라지면 탓이 연출된다. 지난밤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느니, 운전하고 오느라 리듬이 깨졌다느니, 옆에 있는 동반자가 (구찌 갠세이) 떠들어서 ‘삑사리(헛치기)’가 났다느니, 맞바람이 불어서 당황했다느니, 날파리 때문이라느니, 티박스가 미끄러워서 그렇다느니 천 가지만 가지 이유를 들어 합리화시킨다. 그렇다고 멀리건(Mulligan)을 주지도 않을 것인데 쪽팔린 게 싫어서 탓을 뱉는다. ‘쪽팔린다’보다는 ‘부끄럽다’가 어울림에도 굳이 우긴다. 

    쪽팔린다는 남이 보기에 체면이 깎이는 부정적인 감정이고, 부끄럽다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말하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부끄러움은 양심에 이어진 감정으로 스스로 떳떳하게 느끼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이다. 북조선에서는 ‘쪽팔린다’ ‘오빠’ ‘자기’ 등의 남한 말투를 단속하는 ‘평양문화어 보호법’을 채택했다. 

    정약용은 1836년 두물머리에서 마지막 시 ‘회혼시’를 남기고 죽는다. 죽기 전 자식들에게 신신당부 이른 말이 남아있다.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텨라”

    ​2024년 4월 16일. 똥을 버린 자에게 곤장 50대를 처하라. ‘기분자장오십(棄糞者丈五十)’ 이재룡 똥은 유용한 거름 자원인데 이를 함부로 버리면 곤장 오십 대라 하니 똥을 모아 글로 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