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맛에 허겁지겁…체면 따윈 버려야 ‘참맛’
  • ▲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호떡.ⓒ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호떡.ⓒ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5일장’ 구경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해가 뉘엿하다. 믿거나 말거나 여기는 한때 시장 바닥에서 어슬렁대던 개들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던 노다지다. 

    보은군 내북면 창리 탄광에서 색시 구경하러 쏟아져 나온 막장 광부들 때문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불야성을 누렸던 니나노 소리와 방석집 근방에 빼곡했던 천막이 하나둘 걷히고, 마을버스 타고 왕림했던 어르신들이 소여물 쑨다고 밀물처럼 빠져나가 장마당이 썰렁하다. 

    미원5일장에서 장만한 봄 냉이 한 근을 달랑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미원에서 낭성을 가자면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갈마울(성대리) 지나면 삼거리 길목 노상에서 화물차를 개조하여 매일같이 호떡을 굽는 부부가 진을 치고 있다. 길바닥 터줏대감이다. 장날에 발정 난 개처럼 좌판을 싸다니다 눈이 푹 꺼진 채 부부의 헛간을 뒤지는 재미가 쏠쏠하여 허기진 참새가 되어 눈을 부라리고 날개를 퍼덕인다. 

    참새는 화물차의 탄착점을 노린다. 오늘따라 부부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하여 대뜸 물었다. “왜 그러슈?” 머쓱한지 파리하게 말한다. “면 소재지 상인들이 호떡집에 불이 났다며 자꾸 민원을 넣는 통에 툭하면 면사무소에서 단속을 나와 더는 버틸 힘이 없어 장사를 접어야 할까 봐유.” 

    주둥이를 대뜸 내밀고 거들었다. “아따 면 소재지는 고개 너머 한참 거꾸로 가야 하고, 상권이 겹치는 것도 아닌데 참 극성스럽네유. 호떡은 대한민국의 길거리 음식이니 당연히 길바닥에서 팔아야지 웬 호들갑을 떨고 그런댜.” 가는 날이 장날이더냐 왜 이리도 인심이 사나워졌더냐. 

    ​언제부터인지 호떡 마니아 동의도 없이 대한민국 호떡값이 1500원으로 굳어졌다. 할머니의 옛날 호떡이라나 뭐라나 하며 지랄 맞게 1700원이 당연한 것처럼 호객하는 길거리 자객도 있더라. 나 원 참 쫄깃한 호떡 한 장 값을 보고 놀라 자빠져 혈압이 오른다. 
  • ▲ 청주 미원 5일장.ⓒ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청주 미원 5일장.ⓒ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호떡에는 그리움과 낭만과 아련하고 따사로운 추억이 흑설탕 속에 녹아 있어 늘 그립다. 그러니 호떡은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요 맛이다. 오죽하면 꿀 호떡이라 했겠다. 호떡값을 흥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객은 여차여차 추억을 노렸다. 

    ​밀가루 내지는 찹쌀가루 반죽을 기름에 쫄깃하고, 바싹하게 튀겨내 미각을 후벼 파는 식감, 손바닥에 반죽을 올려놓고 엄지로 가운데를 꾹 누른 다음 흑설탕 한 숟가락 푹 넣고 조물조물 만든 소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겨울철 먹거리로 따봉이다. 

    먹을 때는 여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먹다 보면 뜨겁게 달궈진 설탕물이 찍 하고 삐져나와 입술을 데어 물집이 생기거나 행여 때때옷에라도 떨어지면 큰 낭패다. 맛에 홀려 허겁지겁 먹다 보면 체면 따위는 내다 버려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손등에라도 떨어지면 흠칫 놀라 호떡을 땅에 떨구기도 일쑤다. 그러니 호호 불어 야금야금 뜯어먹어야 옳다. 

    ​호떡 장수에게 설은 호사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남영동 숙명여대 인근에서 호떡 하나로 밑바닥을 배웠다. ‘노점이 최고의 사업장’이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와이셔츠에 넥타이, 요리사 위생모 차림으로 호떡을 구웠다. 손님이 한 손으로 던져주는 동전을 밀가루 묻은 두 손으로 받아가며 필드 감각을 키워나갔다. 

    호떡에는 간절한 마음과 절실한 마음이 녹아 있다. 양복 입은 길바닥 호떡 장수는 이번 설에 프랜차이즈 1000개를 돌파했다. ‘본죽&비빔밥’이다. 그만큼 호떡에는 성공 신화가 따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양복 입은 호떡 장수를 본 적도 만나 적도 없다.  

    ​갈마울(성대리) 지나 삼거리 길바닥에서 화물차를 개조하여 매일같이 호떡을 굽는 터줏대감 부부나 남영동 숙명여대 인근 길바닥 양복 입은 호떡 장수나 매일반이다. 다만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이 달랐을 뿐이다. 호떡을 뒤집듯 세상을 뒤집어 볼 용기도 부족했다. 
  • ▲ 청주시 미원면 시장에 한 때 번창했던 방석집(술집)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청주시 미원면 시장에 한 때 번창했던 방석집(술집)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호떡에 묻는다. 대체 호떡이 뭐길래? 비비고 누르고 지지고 튀기고 건지고 뜯니? 

    ​닷새 뒤 미원5일장 구경을 또 와야겠다. 

    ​2024년 2월 10일(설날) 새해 새달의 첫날 낭성 가는 내리막길에는 호떡이 지천이더라. 이재룡 잘 구워진 호떡을 반으로 접어 종이컵에 넣고 길손에게 두 손으로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