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명 넘는 전문자격사... ‘손해평가와 손해평가사에 관한 법률’로 답해야
  • ▲ 정기옥 손해평가사.ⓒ뉴데일리
    ▲ 정기옥 손해평가사.ⓒ뉴데일리
    농작물재해보험은 이제 더 이상 주변적 제도가 아니다. 
    2025년 기준 가입자는 63만2천 명, 가입면적은 70만ha, 순보험료는 1조3300억 원에 이르렀고, 지급보험금도 1조3932억 원에 달했다. 
    올해 대상 품목이 78개로 확대됐다. 
    이미 이 제도는 농업인의 생계와 국가재정이 함께 걸린 핵심 정책보험이 됐다.
    이에 발맞춰 보험금 지급의 출발점이 되는 손해평가 역시 그에 상응하는 공공성, 독립성, 책임성을 갖춰야 한다. 

    ◊ 보험사 중심 ‘위탁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손해평가는 농업인의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보험가액과 손해액을 산정해 최종 보상 수준을 사실상 결정하는 절차다. 
    단순한 현장 확인이 아니라 공적 판단 기능에 가깝다. 
    그러나 현재 운영구조는 여전히 보험사 중심, 위탁 중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손해평가요령은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 손해평가반에서 배제하도록 하고 있다.
    손해평가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증조사와 재평가 절차 등도 두고 있다. 
    제도 스스로 공정성과 독립성의 필요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취지가 실제 운영에서 충분히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구조적 이해충돌이 가장 큰 문제... 손해평가 보험금 지급 당사자가 좌우
    가장 큰 문제는 구조적 이해충돌이다. 
    보험금 지급의 당사자인 보험사가 손해평가의 배정, 수수료 책정, 검증 구조에 실질적 영향력을 갖는 한, 농업인은 평가 결과를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손해평가사가 국가자격사임에도 현장에서는 독립된 전문직이라기보다 보험사에 종속된 조사 인력처럼 취급돼서는 더욱 그렇다.
    국가가 자격사를 선발해 놓고 정작 현장에서는 민영보험처럼 손해사정 체계의 하위 인력처럼 운용한다면, 이는 자격제도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 ▲ 손해평가 현황과 개선방향.ⓒ정기옥 평가사
    ▲ 손해평가 현황과 개선방향.ⓒ정기옥 평가사
    ◊ 손해조사비 재보험 부보 통해 1인조사 강행 벗아나게 해야
    예산 구조도 문제다. 
    2026년 사업시행지침에 따르면 순보험료(위험보험료와 손해조사비가 포함)  및 부가보험료에 1조 500억 원의 공적 지원예산이 투입된다.
    그럼에도 손해조사비는 실무상 탄력적으로 운용되지 못해 대형 재해 시 조사 지연, 1인 조사 압박, 품질 저하 우려를 낳고 있다.

    손해조사비는 2011년까지는 운영비로 분류되어 100% 국고로 지원되었다.
    2012년부터는 IFRS를 농업재해보험에 적용하면서 손해조사비를 순보험료로 분류하였고, 따라서 국고지원도 50%로 낮아졌다.
    이로 인해 사고율이 높아지면 보험금과 손해조사비가 다 같이 증가하는 구조가 형성됐지만 이에 대한 보완은 미루어 지고 있다.
    사고율이 높아져도 지급보험금은 재보험에 부보하여 안정성을 확보하였으나,  손해조사비는 이에 대한 보완책(재보험 부보)을 미룬채 2인 조사를 1인 조사로 강요하고, 조사 수당을 세분하는 방식 등으로 손해평가사에게 이를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손해평가가 공정하려면 그에 필요한 조사비 역시 안정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는 재해보험을 시작한 지 25년이 넘어, 가입 금액이 30조 원을, 순보험료와 지급보험금도 각각 1.3조 원을 넘어섰고, 손해평가 전문 인력인 손해평가사도 12년 차애 걸쳐 7000명 넘게 양성되어 제반 여건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관련 규정도 부분 보완이 아니라 법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 

    ◊ 전문자격사 제도 정착위해 국회·정부가 답해야
    ‘기존 관례를 답습’하고 있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방치·조장하고 있는  현행 농업재해보험법 제 11조(손해평가 등)와 동법 시행령 제13조(업무위탁) 규정 등을 하루 빨리 손질해야 한다. 
    부동산 분야에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이 있듯이, 농업 분야에도 ‘손해평가와 손해평가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새 법규에는 손해평가의 공공성, 손해평가사의 독립적 법적 지위, 등록·교육·윤리·징계 체계, 공정배정, 재평가, 직접 보수지급 원칙, 감독 책임이 분명히 담겨야 한다. 
    손해평가를 보험사의 보조업무가 아니라 농업인과 보험사 사이에서 사실과 손해를 공정하게 가르는 독립적 공적 기능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손해평가의 독립성은 특정 직역의 이익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농업인이 정당한 피해보상을 받게 하고,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정책보험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 책무다. 

    손해평가를 언제까지 민영보험사 손에 맡겨 둘 것인가? 
    제도가 이만큼 커졌는데도 법과 감독이 제자리에 머문다면 그것은 미비가 아니라 방치다. 
    이제 국회와 정부가 답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분명하다. ‘손해평가와 손해평가사에 관한 법률’ 제정이다.

    정기옥 <한국농어업재해보험협회 손해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