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평가사는 손해사정사 '업무 보조인'으로 전락농협손보 "오랜 관행 이유" 불공정 지적 외면규정 등 개정을 통해 손해평가 법인 설립·운영 길 열어야24년 국감 이슈 부각... 현재까지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어
  • ▲ 손해평가사가 양파 피해상황을 조사히기 전 식재간격을 확인하고 있다.ⓒ뉴데일리
    ▲ 손해평가사가 양파 피해상황을 조사히기 전 식재간격을 확인하고 있다.ⓒ뉴데일리
    농어업재해보험 손해평가를 담당하는 국가전문자격 '손해평가사' 제도가 도입 12년 차를 맞았지만, 법 규정 미흡과 운영상의 구조적 모순이 속속 드러나면서 현장 평가사들의 개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농작물·가축·양식수산물 재해보험을 합쳐 연간 약 1조 원 가까운 국고가 투입되는 정책보험인데도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와 농업정책보험금융원(농금원)은 적극적인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올해 8월 29일 제12회 손해평가사 2차 시험이 치러지고 11월 합격자까지 합치면 손해평가사 국가자격증을 보유한 평가전문인은 8천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현행 농어업재해보험법(농재법)과 동법 시행령, 관련 규정 등은 손해평가사가 스스로 손해평가업자로 인정받아 손해평가 업무를 하거나 법인을 설립·운영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어, '제도의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 ▲ 2015년부터 년도별 배출한 손해평가사 현황.ⓒ뉴데일리
    ▲ 2015년부터 년도별 배출한 손해평가사 현황.ⓒ뉴데일리
    ◇ 7,378명 자격자 중 절반은 "장롱면허"

    손해평가사 제도는 2024년 6월 농어업재해보험법 일부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동법 제1조의 2는 '농식품부장관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손해평가를 촉진하기 위하여 손해평가사 제도를 운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25년 12월 말 기준 손해평가사 자격증을 발급받은 인원은 모두 7,378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인생의 제2막'을 꿈꾸며 어려운 자격시험에 도전, 성공한 60대 내외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손해평가사 2차 시험 평균 합격률은 12%대로, 최근 3년(2023~2025년) 손해사정사 2차 시험 평균 합격률이 13~15%대 인점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 않은 자격시험이다.

    (사)농어업재해보험협회(농재협)와 (사)한국손해평가사협회(한손협)에 따르면, 손해평가자 합격자들은 양 협회에 2800여 명이 소속돼 활동하고 있고 980여 명의 손해평가사는 손해사정법인의 업무 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문제는 전체 자격자 중 절반에 가까운 3500여 명이 손해평가 업무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제3회 합격 후 매년 평가에 참여해 온 윤우종 평가사는 "3~4년 전부터 같이 평가에 참여했던 동료 평가사들이 하나 둘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평가사로 일해도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구조 마련이 시급함을 느끼고 있다"며 평가사로 기본 생계조차 어려운 상황을 토로했다.

    ◇ 법은 '전문자격사' 현실은 손해사정사 '보조인'

    농어업재해보험법은 손해평가사의 업무를 ▲피해 사실 확인 ▲보험가액 및 손해액 평가 ▲그 밖의 손해평가에 필요한 사항으로 규정하고, 농식품부장관이 고시하는 '농업재해보험 손해평가요령'에 따라 손해평가인·손해평가사·손해사정사가 5인 이내의 손해평가반을 구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손해사정법인들은 '보험업감독규정' 제9-15조(보조인의 활용) "손해사정사는 손해사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금융감독원장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보조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활용해 손해평가사들을 일시 고용하고 조사비의 절반 정도만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양 협회에 소속돼 평가업무를 수행하는 것보다 연중 평가업무를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1,000여 명 가까운 손해평가사들이 ‘손해사정법인의 업무보조인’을 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기옥 평가사는 "법 규정은 전문 자격사지만 실상은 손해사정법인에 소속된 손해평가사는 손해사정사의 업무 보조인에 지나지 않고, 농재협이나 한손협 소속 손해평가사는 조사비 단가인 보수 체계에서 손해사정사 보조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개탄했다.
  • ▲ 손해평가현장에서 가입내용과 실제 현황의 일치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뉴데일리(자료사진 2장 합성)
    ▲ 손해평가현장에서 가입내용과 실제 현황의 일치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뉴데일리(자료사진 2장 합성)
    ◇ 시행령에 손해평가업자 조항 없어 법인 설립 길 막혀

    제규정에 농어업·축산 분야에서 손해평가를 담당하는 손해사정사와 손해평가사를 정의하고 규율하는 규정부터 확연한 차이가 난다. 

    2026년 1월 1일 현행 농어업재해보험법 시행령(대통령령) 제13조(업무위탁)는 업무위탁을 받을 수 있는 자를 ▲지역농·축산 협동조합 등 관련 농·수·축협 ▲보험업법에 따른 손해사정업자 ▲민법 제32조에 따라 농식품부장관 인가를 받은 비영리법인(농재협, 한손협)으로 한정하고 있어, 독립 손해평가업자나 손해평가법인 설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손해사정 업무처럼 손해평가 법인의 설립·참여나 독립 손해평가사의 업무위탁은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같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비교 대상인 감정평가사는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제29조와 시행령 제25조에 따라 감정평가법인 설립 인가를 받거나 영리법인 형태로 영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갖고 있다.

    ◇ '오랜 관행' 명분으로 건당 단가·업무 배정 차별

    이러한 법률상 제한에 따라 손해평가사는 업무 배정과 보수 체계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농금원과의 '농업재해보험 약정'을 통해 간접 보조사업자로 재해보험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농협손해보험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농재협과 한손협 양 협회는 95만2831건의 조사 업무를 수행하고 379억7700만 원의 조사비를 받았다. 반면 손해사정법인들은 92만245건을 수행하고 617억3100만 원을 수령했다. 건당 단가로 환산하면 협회는 약 3만9857원, 손해사정법인들은 6만7081원으로 차이가 약 1.7배에 달한다.

    농협손보 측은 "손해사정법인들은 영리법인으로 관리비와 이윤을 반영해 주고 있어 차이가 나는 것"이라며 "오랜 관행으로 해오던 일이라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농금원 측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손해사정법인에 관리비와 이윤을 보장해주고, 협회 소속 평가사들에게 시설원예 등의 평가업무를 배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농협손보와는 약정을 체결하고 평가업무를 진행하고 있고, 평가업무 위탁은 농협손보의 방침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며 “불공정거래 행위여부에 대해서는 농금원의 판단사항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수행하는 업무에서도 차별은 뚜렷하다. 

    농재협·한손협 소속 손해평가사들은 가축(소) 손해평가에 투입되는 소수 인원을 제외하고는 마늘, 양파, 감자, 과수 착과수 조사, 고추, 벼, 콩, 감귤 등에 국한돼 업무를 배정받고 있다. 반면 손해사정법인들은 손해평가협회가 배정받은 업무뿐 아니라 시설원예, 인수 점검 등 주요 항목에 업무가 배정되고 소를 포함한 다수의 축산 분야 평가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농협손보는 "시설원예 같은 경우 손해사정서를 작성·제출해야 하는 사항이라 손해사정법인에 배정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손해평가사들은 이미 자격시험에서 시설원예 조사를 검증받았고 "보수교육 등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고, 일부 평가사는 현장 교육까지 담당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 ▲ 24년 10월 18일 국회 농수산위 국정감사에서 문금주 의원이 손해평가업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한국 농정신문 자료 사진 캡쳐
    ▲ 24년 10월 18일 국회 농수산위 국정감사에서 문금주 의원이 손해평가업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한국 농정신문 자료 사진 캡쳐
    앞서 지난 2024년 10월 18일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문금주 의원이  "손사법인과 협회가 받는 조사비 차이가 크고, 조사 단가가 높은 원예시설 손해평가는 손사법인에만 배정하는 등 부당한 구조"라는 지적을 하며 개선을 촉구했으나, 강호동 농협회장, 서국동 농협손보 대표는 “지적사항을 적극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을 하고 현재까지 뚜렷한 개선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협회 역할 재정립·법인 설립·특수노조 결성 모두 검토해야

    윤보선 평가사(제6회)는 "일반 민영보험과 농작물재해보험·정책보험 일부를 사실상 연계하면서, 민간 영리 손해사정법인에는 더 넓은 참여 구조와 물량을 부여하고, 농재법에서 전문 자격사로 육성한 손해평가사들에게는 축소된 물량과 차등 단가를 적용하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손해평가사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며 "해결을 위해 협회·농식품부·농금원·농협손보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윤 평가사는 해결 방안으로 ▲협회의 역할 재정립 ▲농어업재해보험법 시행령 제13조(업무위탁) 규정에 손해평가업자를 추가해 법인 설립·운영과 업무 수탁 지위를 인정 ▲손해평가사 권익 보호를 위한 노조 활동 등을 제시했다.

    특히 협회 역할에 대해서는 "현재처럼 농협손보에서 일감을 받아 중개하고 평가사로부터 중개 수수료를 받아 협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사협회로서 회원 권익 보호, 교육연수 강화, 제도 개선 건의 등을 하는 대변자로 변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기우 평가사는 “농작물재해보험은 순보험료의 50%(지자체 35% 별도 차등)와 운영비 전액을 국고로 보조하고 있고, 2001년 사과·배 2개 품목으로 도입된 뒤 현재 78개 품목까지 확대된 정책보험”이라며, “제도의 무게가 커질수록 손해평가의 공정성과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손해평가사 제도가 '전문자격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능을 회복하려면, 농식품부와 농금원이 더는 미온적 태도를 버리고 법·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