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단편 ‘아펜니노에서 안데스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동화이다. 

    이탈리아 ‘아펜니노산맥’ 끝자락의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까지, 약 1만 2000㎞에 이르는 거리를 9살 어린 소년 ‘마르코’가 돈 벌러 떠난 엄마를 찾아 남미 아르헨티나행 배를 타고 이탈리아를 떠난다. 여행을 함께 하는 친구는 작은 원숭이뿐, 마르코는 험난한 자연과 냉정한 어른들을 만나 고생도 하고 착한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결국, 마르코는 목장에서 일하다 병이 들어 위독해진 엄마를 만난다. 그리던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급속도로 회복되고, 두 모자는 고향 제노바로 돌아간다는 줄거리의 이야기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G7 회원국인 경제 대국 이탈리아에 사는 마르코 엄마가 왜 가난한 나라 아르헨티나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는지 의문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이탈리아는 갓 통일된 신생 국가여서 가난하고 혼란했던 반면에 아르헨티나는 1880년부터 1930년대까지 농·목축업으로 곡물과 육류를 유럽에 수출하여 부를 축적했고, 그에 따른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가 많이 생겨서 유럽의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경제 사회적 배경에서 이탈리아 제노바에 살던 마르코의 엄마가 부자나라 아르헨티나로 돈을 벌러 떠났던 게다.

    20세기 초에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부자나라 아르헨티나가 1946년 후안 페론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페론은 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곳간을 열어 인기몰이 정책을 쏟아내면서 국력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페로니즘이라는 포퓰리즘이 부자나라 아르헨티나를 가난한 나라로 이끈 것이다.

    #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액화천연가스 값이 크게 올라서 강추위에 난방기를 쓰는 가정의 난방비가 예년에 비해 크게 올랐다. 30평대 아파트의 지난달 난방비가 30만 원 넘게 부과되어 여론이 들끓자 정치권은 들끓는 여론을 두고 네 탓 내 탓하면서 서로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국제 가스값은 이미 올랐지만, 정부에서 가스값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바람에 가스공사가 8조 원 이상 적자를 내고 있고, 앞으로도 가스값이 더 오를 전망이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에선 수입 가스값이 오를 때마다 그때그때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여 난방비 급등으로 인한 혼란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난방 취약계층을 우선 보듬는 일이다. 다소 어렵더라도 중산층 이상의 국민은 고통 분담 차원으로 인내하고 감수해야 한다. 또 차제에 국민은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가스를 전량 수입해야 하므로 소득이 더 올라가더라도 에너지 절약 일상화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3. 상황이 이러함에도 야당은 자신들이 여당이었던 때의 실정(失政)을 반성하지 않고 현 정권이 무능하다고 여론전을 펼치면서 주특기인 추경을 들먹인다. 추경으로 7조 2,000억 원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만들어서 소득 하위 80%의 가구에 10만 원~25만 원씩 나눠주자고 한다. 참 황당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다. 

    전 정권은 경제정책 실패와 코로나를 이유로 살포한 재난지원금 등으로 국민에게 1,000조 원 넘는 빚을 안겨줬다. 그러면서도 거대 야당의 위세로 다시 추경을 꺼내 들고 시내 곳곳에 ‘추경으로 난방비 보전해주자’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야당이 무책임하게 추경안을 들고나오면 이를 저지해야 할 여당에서도 당 대표로 출마할 거라는 한 의원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긴급 난방비 지원에 나서야 한다”라면서 6조 4천억의 추경 편성을 주장한다.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의문스럽다.

    세상에 공짜와 공돈을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다행히 국민이 깨어 있어서 야당의 추경안 주장이나 여당 의원의 추경 주장에 국민 대부분은 시큰둥해한다. 지금 단물 좀 먹자고 후손에게 빚 물림 하는 데 찬성할 만큼 이제는 어리석지 않다는 얘기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 속의 부유한 나라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몰락을 익히 알고, 차베스의 포퓰리즘이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몰락시켰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의 혈세를 마구 뿌려대다가 곳간이 비면 바로 채워 넣을 능력이 있는가? 그럴 신통력도 없으면서도 제 돈인 양 나랏돈을 푸는 게 자신의 정치 능력이라 착각하고 행동한다면 훗날 합당한 대가를 분명히 치를 게다. 

    일부 국민은 잠시 열광하고 좋아할지 모르겠으나 툭하면 돈이나 뿌려 인기를 얻겠다고 생각하는 자가 집권한다면 대한민국은 10년도 안 되어 나라는 거지가 되고 국민은 쪽박을 찰 거다. 아르헨티나는 식량을 자급하고 자원도 풍부한 나라이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이 세계 1위인 나라인데도 포퓰리즘에 쪽박을 차고 어려움을 겪는데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포퓰리즘으로 곳간을 비우면 영원히 곳간을 못 채울 것이고 국민은 쪽박 신세가 될 게 뻔하다. 

    난방비 폭탄 맞았다고 돈 살포 얘기부터 꺼내는 야당 대표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돈 풀어 민심을 얻는 그런 포퓰리즘적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어서 포퓰리즘은 정치가 아니다. 돈 풀어 민심 얻는 행위는 동네 강아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나서서 포퓰리즘을 막아야 한다. 그런 연유로 취약층 지원이 아닌 전 국민 대상의 난방비 추경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