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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의 시사칼럼] 봉고파직(封庫罷職) 시키고 위리안치(圍籬安置)하렷다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1-10-04 22:47 | 수정 2021-10-05 11:30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조선일보 9월 30일 자 [정민의 世說新語] ‘무성요예(無聲要譽)’에서 발췌 인용한다.
<이상황(李相璜·1763~1841)이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갔다. 어둑한 새벽 괴산군에 닿을 무렵, 웬 백성이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혀 꽂고 있었다. 수십 보를 더 걸어가 새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히더니 다시 이를 세웠다. 이렇게 다섯 개를 세웠다. 

어사가 목비(木碑)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무언가?” 
“선정비(善政碑)올시다. 나그네는 저게 선정비인 줄도 모르신단 말씀이오?” 
“진흙칠은 어째서?” 
그가 대답했다. 
“암행어사가 떴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방이 저를 불러 이 선정비 열 개를 주더니, 동쪽 길에 다섯 개, 서쪽 길에 다섯 개를 세우랍디다. 눈먼 어사가 이걸 진짜 선정비로 여길까 봐 진흙을 묻혀 세우는 게지요…”.
그는 괴산군으로 들어가 여타 비리와 함께 가장 먼저 진흙 묻힌 목비를 세우게 한 죄를 꼽아 고을 사또를 봉고파직(封庫罷職) 시켜 버렸다. ‘목민심서’에 나온다.>

‘봉고파직’은 조선 시대 어사나 감사가 부정한 관리를 파면하고 그 창고를 봉하여 잠그고 관리의 업무 수행을 정지시키는 징치(懲治)의 하나이다.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폐주 연산은 강화도 교동에 위리안치되었다가 두 달만이 사망했다. 인조반정으로 1623년 왕위에서 밀려난 광해군도 강화도 교동에 위리안치 유배되었다가 제주도로 이배되어 1641년에 생을 마쳤다. 추사 김정희도 1840년에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어 8년을 보냈다.

위리안치(圍籬安置)는 형기 동안 죄인이 탈출하거나 타인을 접촉하지 못하게 가시울타리(탱자나무)를 집 주위에 둘러쳐서 막아놓은 것으로 중범죄자나 왕족, 고위직 벼슬, 정치범 등에게 내린 형벌이다.

#2. 위리안치, 봉고파직이라는 조선 시대 형벌 이야기가 2021년 문명사회 자유대한민국에서 나돈다. 지난 5월 ‘조국의 시간’이란 회고록을 발매한 조국 씨가 자신을 ‘위리안치의 극수(棘囚)’라 표현하며 책을 쓴 목적의 글을 SNS에 올려서 위리안치라는 말이 회자 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왕따 울타리에 갇힌 ‘형극(荊棘)의 수인(囚人)’임을 강조하며 본인이 지금 엄청나게 부당한 큰 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선택한 단어이다.

지난 9월 29일 여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국민의힘 지도부가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 원 퇴직금’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서 이준석 대표는 국민을 속인 죄를 물어서 ‘봉고파직’, 김기현 원내대표는 남극 섬에 ‘위리안치’해야 한다고 말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조국이든 이재명이든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겐 반대파를 향하여 시원하게 배설하는 발언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3자의 처지에서 보면 이재명 경기지사의 언어 선택이 매우 경망하다. 정치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하긴 시대가 자꾸 천박해져서 요즘 사회 상층부의 도덕 윤리가 뭉개졌으니 언어도 타락하고 품격이 천박해진 탓도 있다. 이 나라 고위 법관 출신 지도층이라는 자들의 드러난 행태가 조선 시대 오리(汚吏)들의 그것을 뛰어넘으니 그들에 대한 혐오적 표현이 도를 넘는다. 가장 공정하고 엄격해야 할 법조계가 흔들리고 있다. 사회가 흉흉하고 각박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3. 반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저잣거리 서민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성남 분당구 대장동 사건은 팍팍한 삶을 사는 서민의 아린 가슴에 소금 친 격이다. 거론되는 돈의 단위가 너무 커서 서민들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급등하는 수도권 집값의 단위가 심리적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서 이젠 1, 2억이라는 돈은 주머니 쌈짓돈 취급당하는 판이다. 현실은 안 그런데 돈에 대한 배포가 커진 게다.

소득 3만 달러 시대이고 억대 연봉자가 많아졌다고 하더라도, 1억이라는 돈이 적은 액수가 아니다. 미국의 서민들에게도  10만 달러는 큰돈이다. 그런 액수의 큰돈이 국민소득이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대한민국에서는 쌈짓돈 취급당하는 판이다.
 
대장동 사건으로 터져 나오는 돈의 단위가 기본 50억이다. 6년 근무한 대리급 직원의 퇴직금이 산재 비용과 합쳐서 50억이라는 기사에 2030 청년 세대들은 자신의 처지를 한 번 더 되돌아본다. 대부분 서민은 30년 이상 봉직하고도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이 5억은커녕 2~3억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름만 걸어 뒀다는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월 고문료가 1,500만 원인 걸 보면 고위 법관 출신 법조인이 많은 서초동 세상은 서민들과 다른 하늘 위의 세상이다. 

팬데믹으로 불과 몇백만 원이 없어 폐업하거나 극단 선택을 해야 하는 자영업 서민들에겐 정말 천상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대장동 이야기는 서민들에게 더 염장을 지르고 있다. 

#4. 그냥 지나친 사람이 많았겠지만, 곽상도 전 의원 아들 퇴직금이 세전 50억에 세후 28억이라는 뉴스를 보고 우리나라의 고세율에 또 한 번 놀란다. 집값이 급등한 데다 고세율 땜에 부동산 관련 고액 보유세가 서민들 코앞으로 다가와서 서민과 고령 은퇴자의 생활이 더 팍팍해졌다. 심지어 빚내서 세금을 내야 할 사람도 적지 않다. 

보유세가 너무 올라 집을 가진 사람이 팔려고 해도 쉽게 팔지 못한다. 살던 집 팔고 세금 내고 나면 살던 집 규모의 집을 되살 수 없기 때문이다. 집이 없는 사람은 너무 오른 집값에 집을 감히 살 수가 없다. 집을 사려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와도 살까 말까인데 그런 서민들에게 대출 문턱까지 높였거나 대출 길을 막아놨으니 더욱 집을 살 수 없다. 이렇게 서민을 못살게 하는 정권은 처음 봤다.

전·월세도 마찬가지이다. 집값이 오르니 전·월세 물건이 없거나 턱없이 올랐다. 전·월세금이 올라도 임대인에게 좋은 것도 아니다. 괴물 같은 부동산 3법 때문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임대인이나 임차인이나 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주택 소유자도 오른 재산세와 종부세, 건강보험료에 등골이 휜다. 그런 판에 대장동 게이트 문이 열렸다. ‘누구는 50억 받았더라. 누구는 100억을 받았더라’라고 나도는 얘기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삶이 궁핍해진 서민, 특히 청장년층을 허탈하고 화나게 한다.

아직 대장동 복마전 실체가 다 드러나지 않아서 뭐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천문학적 돈이 움직인 사건이라서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 거 같다. 지뢰의 뇌관이 되어 내년 대선에서 정치권 전체의 판을 뒤집는 빅뱅이 될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국민의 시선으로 볼 때 진영에 무관하게 정치권과 법조계가 크게 오염되어 있다는 게다. 또 힘없는 늘공(처음부터 공무원)보다 낙하산이나 코드인사로 차지한 어공(정치하다 어쩌다 된 공무원)이 더 문제라는 사실이다. 

옛날 잣대로 볼 때, 정권이 바뀐다면 여의도 정치가나 관가 쪽의 벼슬 중 국민 이름으로 봉고파직(封庫罷職) 시켜서 위리안치(圍籬安置)할 자들이 차고도 넘친다. 아마도 지금 뒷골이 당기고 써늘한 사람이 많을 거다. 그래서 그들은 정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거다. 이런 상황임에도 국민 60% 이상은 정권 교체를 원하고 있다.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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