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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의 시사칼럼] 역사에 가정(假定)이 없다지만 가정해보자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1-05-10 08:56 | 수정 2021-05-10 14:26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지난 4년을 역사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이 있는 과거이고 아직 진행 중인 일들 많지만 2017년의 오늘로 되돌아 가보자. 역사에서 가정(假定)이란 게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정을 해서 지난 4년을 반추해보자. 

2017년 5월 10일에 현 문재인 대통령이 보궐선거로 궐위 중인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오늘로부터 꼭 4년 전이다. 그때 취임식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에게 정말 감동과 울림을 주는 연설을 했다.

#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 정권은 적폐 청산 명분으로 과거만 헤집고 전 정권과 전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지난 4년을 보냈다. 그 결과 통합이 분열로, 공존이 진영 갈등으로 바뀌어 나라가 시끄럽고 미래로 나갈 비전도 사라졌다. 4년 전의 약속대로 머리에 가득한 통합과 공존의 청사진으로 새 세상을 이루었다면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지금도 하늘을 찌를 것이고, 국민과 함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가고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지만 대통령 한 번 더 하시라는 청원이 올라올 수도 있을 거다. 

#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모두를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대통령이 진영논리에 안 빠지고 국민 모두를 섬겼다면 국민통합은 물론이고 취임 당시의 지지율보다 외려 더 높은 지지를 받는 인기 대통령이 되었을 거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결별’ 약속을 명분으로 친일청산 프레임을 만들었다. 진영논리를 동원하여 70년 찬란한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했다. 신년 기자회견 한 번 하는 것도 버겁고 부담스러워했다. 수시로 국민과 소통하였다면 오늘과 같은 파행적 정치판은 안 만들어졌을 거다. 일방적 공수처법, 일방적 선거법 개정에 여당과 대통령의 내로남불 눈높이는 국민 눈높이에서 한참 멀어졌다. 이제 그 후유증을 감당해야 할 판이다.

# “안보 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문 대통령에게 북측은 ‘삶은 소대가리’ ‘떼떼’ ‘겁먹은 개’ ‘말더듬이’ ‘정신이상’ ‘특등 머저리’ 같은 막말로 대했다. 북한에 어떤 약속을 했는지 몰라도 그런 도 넘은 막말을 듣고도 대꾸도 못 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국민은 안보 위기 해소는커녕 자존심만 상했다. 북한은 위협적인 신형 핵무기를 속속 개발하는데도 실전훈련을 안 하고 탁상 훈련만 하는 국군을 두고 국민은 안보에 불안해하는데 한반도에 평화가 정말 오겠는가?

#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해서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야당 인사들과 대화를 몇 번 했는가? 정례화해서 수시로 만났는가? 야당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대했는가? 만일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여겼다면 국회 상임위원장 싹쓸이도 막아야 했고, 야당 몫의 법사위원장 자리를 꿰차는 것도 말렸어야 했다. 이제 훗날 찾아올 부메랑을 막을 채비를 잘해야 할 거다. 

#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를 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대통령의 고른 등용 약속은 실제론 ‘코드 등용’이었다. 문 대통령이 등용한 인재들의 행적 요건이 국민 눈높이에서 너무 멀어져 있었다. 여야 합의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임명 강행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고른 등용과 유능 인재의 삼고초려 약속은 국민에게 농담 따먹기로 한 거밖에 안 되었다.

#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만일 상식이 통하는 선순환 경제정책을 폈다면 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서 소득이 높아지는 경제체제가 이뤄졌을 텐데 건건이 그에 반대되는 정책을 펴서 스텝만 꼬여버렸다. 그 부작용으로 계층 간 세대 간 갈등만 증폭되었고 국민경제 양극화만 더 심해졌다. 

노조 편향 정책으로 노조의 기득권 보호에 청년 일자리는 더 줄어들었다. 조국 전 장관 가족이 저지른 불법 · 편법은 ‘기회의 평등 · 과정의 공정 · 결과의 정의’라는 걸 헛구호로 만들었고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 국민적 공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문 대통령 취임사의 백미인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명언은 취임식에서 언급하기 2년 전인 2015년 4월에 이미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서 같은 의미의 글로 실렸던 걸로 알려져서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비록 표절 구호였지만 그 구호대로만 실천했더라면 대통령에 대한 신망이 취임 초기처럼 여전했을 게다.

#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겸손한 권력이 돼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길에 함께 해주십시오.” 

가정이지만 2017년 5월로 되돌려서 보자. 문 대통령께서 마음을 비워서 취임사의 약속대로 오직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탕평·공정·능력’ 위주로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등용했다면, 지금쯤 대한민국은 코로나 팬데믹도 거뜬히 이겨냈을 거고 경제도 초호황을 구가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코로나 백신 개발도 선진국 수준의 속도로 완성하여 백신 선진국 반열에 올랐을 거다. 앞선 기술력으로 반도체 품귀 사태에도 거뜬히 대처하고 있었을 게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1년의 임기 내내 전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며, 존경의 박수로 가득한 퇴임식을 하게 될 것이다. 국민은 같은 정당의 후보를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정권 재창출로 보답할 것이며, 그 후임 대통령과 연도를 가득 채운 국민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평화롭게, 정말 평화롭게 경남 양산의 사저로 금의환향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정(假定)이 모두 부질없고 모두 도루묵이 될 거 같다. 지난 4년의 문 대통령 치세에서 취임사 약속이 실현된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 2021년 5월 10일은 문 대통령께서 취임한 지 꼭 4년째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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