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해송 위 걷는 ‘스카이워크’ 전망대 아찔… 스릴 만끽바닥에 쫙 깔린 ‘맥문동’거센 바람에 ‘신나는 춤사위’가을 보랏빛 꽃 맥문동, 곰솔과 환상적 ‘콜라보’…과거 세계 열강 각축장
  • 충남 서천군 장항산단로 34번길 솔바람숲 둘레길. 곰솔 사이로 난 길이 환상적이다. 곰솔 아래에는 늘푸른 맥문동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김정원 기자
    ▲ 충남 서천군 장항산단로 34번길 솔바람숲 둘레길. 곰솔 사이로 난 길이 환상적이다. 곰솔 아래에는 늘푸른 맥문동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김정원 기자
    충남 서천군 장항산단로 34번길 ‘솔바람숲(송림산림욕장)’ 둘레길은 몹시 바람이 불었다. “쐐잉~” 바람소리에 몸은 자꾸 해안가를 피해 곰솔(해송) 군락지 속으로 파고든다.

    이처럼 엄청나게 센 바람을 온 몸으로 맞는 것도 평생 처음 경험한다. 거친 바람은 아프지 않았지만, 해안의 모래가 바람에 의해 날아와 얼굴을 강타했다. 모자가 벗겨지고 스카프가 날아가는 것은 예사다. 바람은 안고 걷는 것조차 가누기가 힘들었지만 바람을 등 뒤로 하면 떠밀듯이 저절로 걸어갈 정도다. 

    솔바람숲 곰솔군락지(27만㎡)에는 50~70년 생 1만2000여 주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곰솔 숫자도 엄청나지만 군락을 이뤄 빽빽하게 들어찬 아름다운 자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군락지에는 늘푸른 맥문동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또 사계패랑이·갯패랭이·해국 등 600만본이 뒤덮여 있었다. 가을에 보랏빛 꽃의 맥문동은 곰솔과 환상적인 콜라보를 이뤄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조차 어렵다.

    모래 날림과 해풍을 방지하기 위해 심은 인공조림인 곰솔 군락지는 1945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2년생의 곰솔을 심으면서 오늘날 멋진 군락지가 됐고 2014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우수상(산림청·유한킴벌리)을 받기도 했다.

    바람에 따라 순종하듯이 곰솔은 바다 반대방향으로 일렬로 기울어진 채 자라고 있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해송 밑기둥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지만, 나무 정수리를 보면 곧 부러질 것처럼 흔들림이 컸다. 

    바닷가는 썰물로 광활한 갯벌이 바닥을 드러냈고 모래는 아주 고왔다. 하얀 모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끊임없이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작은 갈대는 거센 바닷바람에 90도 꺾여 흔들리고 있었는데, 갈대가 숙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식물들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한창 진행중인 현장이었다.

    서해 바다, 이 곳이 신라시대와 근대시대,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다고 하니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 충남 서천 솔바람숲길.ⓒ김정원 기자
    ▲ 충남 서천 솔바람숲길.ⓒ김정원 기자
    곰솔군락지 남서쪽 끝 저멀리 전망산에는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높이 치솟아 있고 전망산 우측에는 군산일반산업단지, 좀 더 안쪽에는 새만금방조제가 눈에 들어온다.

    곰솔군락지는 바람의 영향으로 쭉쭉 하늘로 뻗은 나무는 찾기 힘들지만 삐뚤삐뚤 커가는 모습이 더 정겹고 아름답다. 곰솔 사이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흙을 깐 뒤 롤러로 단단하게 다진 아기자기한 길이 나 있었다. 길은 곰솔군락지 바깥쪽, 안쪽에 여러갈레 길이 나 있고 곰솔군락지 종단으로도 길을 내 바다로 쉽게 나갈 수 있도록 돼 있다.

    곰솔군락지에는 늘푸른 여러해살이풀인 ‘맥문동’이 쫙 깔려 있다. 마치 푸른 바다위에 떠 있는 곰솔군락지처럼 보였다. 숲속의 반그늘에 자생하는 맥문동은 바다 반대방향으로 일렬로 잎이 일어설 틈조차 없을 정도로 거센 바람을 경쾌한 음악으로 삼아 ‘춤바람’에 신이 나 있었다. 

    곰솔해수욕장 둘레길 해안은 썰물로 광할한 갯벌이 펼쳐졌다. 바닷물이 빠진 갯벌은 그야말로 살아 있었다. 손으로 각종 어패류와 낚지 등을 잡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날씨만 좋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갯벌에 뛰어들 수 있었지만 거센 바람이 갯벌 진입 자체를 막고 있었다. 

    송림갯벌은 아이들의 갯벌체험장으로 인기가 높다. 여름방학 등 겨울을 제외하고는 갯벌체험을 위해 인근지역에서 아이들이 물밀듯이 찾아오는데, 이 날은 쌀쌀한 탓에 갯벌에 나온 사람을 만나보기 힘들었다.

    곰솔군락지 인근 갯벌체험장에는 해수부가 모래 유실 등 바다 침식을 막기 위해 나무를 두줄로 갯벌 위에 박아 놓은 것이 이채롭다. 언뜻 과거 전통방식의 고기잡이 시설로 보기 십상이다. 
  • 서천 솔바람숲 둘레길에 군락을 이룬 곰솔군락지와 맥문동 꽃이 아름답다. 가을에는 보랏빛 향기와 곰솔군락지가 콜라보를 이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서천군
    ▲ 서천 솔바람숲 둘레길에 군락을 이룬 곰솔군락지와 맥문동 꽃이 아름답다. 가을에는 보랏빛 향기와 곰솔군락지가 콜라보를 이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서천군
    솔바람숲 둘레길은 너무 예뻐 여러차례 숲길을 돌다가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거센 바람에 버티지 못하고 곰솔숲 장항스카이워크(기벌포 해전 전망대)로 올라오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펜데믹과 거센 바람의 영향으로 문이 닫혀 있었다. 

    다시 찾은 장항스카이워크는 고개를 들어 바라만 봐도 아찔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나선형계단을 올라가야 스카이워크 길을 걸을 수 있는데, 스카이워크 위 바닥에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다. 

    걷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려 한발짝을 떼기가 힘들다. 어렵사리 난간을 잡고 전망대 끝부분까지 도착은 했으나 되돌아 갈 일이 캄캄했다. 눈을 질끔 감고 한 발짝이 발걸음을 옮겨 겨우 내려 올 수가 있었다. 이 맛에 스카이워크에 올라가는 맛이 아닐까.

    솔바람숲 둘레길 위에 치솟은 스카이워크는 곰솔숲 위를 가로질러 바다로 이어지는데, 무려 높이가 51m이고 길이가 250m가 되다보니 공포감을 느끼기에 딱 좋은 위치에 설치돼 있다.  

    장항 스카이워크는 ‘시인의 하늘길’ 100m는 곰솔 위를 걷는 것으로 곰솔 나무 끝부분을 보며 걷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철새하늘길’ 100m는 서천군에 머무는 철새에 대한 이야기길이며, ‘바다하늘길’ 50m는 바다 위를 걷는 멋지고 오금이 저리지만 이곳에 와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환상적인 코스다. 장항 스카이워크에 왔다면 반드시 관람하고 가야 후회가 없다. 
  • 서천 솔바람숲에 설치된 장항 스카이워크(기벌포 해전 전망대). 스카이워크 뒤쪽으로 전망산에 높이 솟아 있는 장항제련소  굴뚝이 보인다. ⓒ김정원 기자
    ▲ 서천 솔바람숲에 설치된 장항 스카이워크(기벌포 해전 전망대). 스카이워크 뒤쪽으로 전망산에 높이 솟아 있는 장항제련소 굴뚝이 보인다. ⓒ김정원 기자
    다시 솔바람숲 둘레길을 지나 곰솔과 해안 길 사이를 통과하니 갈대숲이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졌고 해안에 설치된 생태탐방로(해안길) 1.6㎞를 걷기 시작했다. 생태탐방로 테크길은 폭이 넓고 안전했다. 하지만 좌우에 설치된 나무 펜스가 너무 높게 설치돼 시야를 가리는 것이 흠이었다. 

    여전히 이곳에도 거친 바람이 불어 걷기 힘들었지만 코스가 그리 멀지 않아 곧 종착지에 도착해 다시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솔바람숲 둘레길을 한참 걸은 뒤 산림욕장과 모래찜질체험장, 마사토산책로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가까운 신성리 갈대밭도 유명하다. 갈대밭은 금강이 서해로 유입되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 규모가 무려 23만㎡에 이른다. 국내 최고의 자연생태학습장이다.

    서천은 1경 마량리 동백나무숲을 비롯해 신성리 갈대밭, 한시모시마을, 문헌서원, 춘장대해수욕장,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 금강하구철새도래지, 장항송림산림욕장과 스카이워크, 유부도와 서천갯벌 등 9경이 있다. 9경 모두를 관람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중 한 두 곳을 경유한다면 더욱 유익한 여행이 될 것이다.
  • 충남 서천 해안에 설치된 생태탐방로(해안길) 1.6㎞.ⓒ김정원 기자
    ▲ 충남 서천 해안에 설치된 생태탐방로(해안길) 1.6㎞.ⓒ김정원 기자
    솔바람숲은 전북 군산과 가까운데, 승용차를 이용해 호남고속도로 또는 서천~공주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먹거리는 해산물이 풍부한데, 서천 특화시장과 홍원항을 찾으면 된다. 

    ◇기벌포 해전…신라 당나라 20만 대군 격파

    기벌포 전투는 675년 신라와 당나라가 서천군 장항읍 기벌포 앞바다에서 벌인 전투다. 금강하구 기벌포 앞바다에서 벌어진 전투는 신라가 이 전투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격파하며 나당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뒀다.

    앞서 당은 육로로 신라의 한강 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을 어렵다고 판단하고 기벌포에 ‘설인귀(薛仁貴)’가 이끄는 함대를 침입시켜 신라의 측면을 공격한 것이다. 신라는 ‘사찬’과 ‘시득’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로 향했지만, 당군의 선제 공격으로 대응에 실패하면서 패배했다. 

    그러나 신라와 당군은 22번의 크고 작은 전투 끝에 당나라는 상당수의 전함과 4000여 명의 군사를 잃고 물러났다. 

    기벌포 전투는 신라가 서해에서 제해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됐고 7년 간의 나당 전쟁에서 신라가 최종 승리를 거두고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물아낸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 곳이 바로 기벌포해다.
  • 해수부가 모래 유실 등 바닷가 침식을 막기 위해 나무를 갯벌에 촘촘히 박아놓았다.ⓒ김정원 기자
    ▲ 해수부가 모래 유실 등 바닷가 침식을 막기 위해 나무를 갯벌에 촘촘히 박아놓았다.ⓒ김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