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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트레킹] 부여 부소산성, 백제의 꿈 그리며 걷는 ‘고란사길’

고즈넉한 운치… 百花亭 아래 낙화암·삼천궁녀 슬픔 서려
유네스코 세계 문화도시 부여 사비궁‧정림사지 5층석탑 등 문화재 즐비
서동과 선화공주 전설 유명한 남궁지 10만평에 연꽃… 연잎밥 ‘향긋’

입력 2020-03-11 23:21 | 수정 2020-05-03 19:05

▲ 충남 부여 삼천궁녀가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백화정(百花亭).ⓒ김정원 기자

‘백마강에 고요한 달 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부여. 충남 부여군 부여읍 ‘고란사(皐蘭寺)’ 가는 길은 ‘백마강’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당군에 의해 패망 당시 백제의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는 낙화암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고란사 길에는 겨울비가 주척주척 내렸다. 백제의 문무백관과 삼천궁녀가 나당 군에 의해 통한의 패망과 함께 낙화암으로 쫓기며 흘리는 비통의 눈물이 마치 비가 돼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여 부소산성은 야트막한 산이다. 백제시대의 성터로 평시에는 왕궁의 후원이었다고 한다. 전쟁 때는 최후 방어성인 부소산 산성에는 군창지, 낙화암, 고란사, 영일루, 사자루, 삼충사 등이 있다. 또한 고대 중국‧일본과의 교역로 역할을 했던 백마강이 바로 옆으로 흐른다. 부소산성 숲은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2002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소산성 둘레길은 부소산에 만들어졌는데, 흙길과 계단이 많고 약간 급경사도 있었다. 고란사길이 다른 트레킹 코스와 사뭇 다른 것은 고란사로 가는 길이어서 옛 것을 그대로 복원하려는 흔적들이 묻어나며 고즈넉한 운치를 내뿜고 있다. 

고란사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다. 부소산 북쪽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높이 솟구친 ‘낙화암(落花巖)’은 바위 절벽인데, 절벽 아래에 낙화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낙화정 정상에는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기리기 위한 육각 정자 ‘백화정(百花亭)’이 세워져 있다. 이 정자는 백제 패망 당시의 그 비통함을 달래 주려는 듯 노송의 여러 그루와 솟구친 암벽이 백화정을 감싸안고 있었다. 

▲ 충남 부여 백마강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낙화암(落花巖).ⓒ김정원 기자

백화정에 올라서면 그 옛날 백제의 멸망 당시 나당군에 쫓겨 혼비백산 낙화암으로 급히 피신했던 왕궁의 문무백관과 궁녀 들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낙화암에 올라 절망감에 얼마나 많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려온다.

백화정 아래 낙화암에서는 백마강이 한 눈에 펼쳐진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친 백마강은 슬픈 역사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고 강물만 유유히 흐르고 있다. 황포돛배만 쉼 없이 오르내리며 백마강 노래만 구슬프게 흘러 나왔다. 

이어 발길을 재촉해 백화정을 거쳐 고란사 방향을 내려다보니 부소산 자락에 고란사가 내려다보였다. 비가 내려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밟고 내려오니 고란사 대웅전과 범종각이 ‘일자(一)’로 늘어서 있다.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세워진 고란사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낙화암에서 목숨을 바친 백제 여인네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고란약수’를 즐겨 마신 백제 임금은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 걸렸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고란 약수를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고 하니 안 마실 수가 없었다. 고란약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니 온 몸에 기운이 금세 샘솟는 듯했다. 

고란사 뒤편에는불로초로 불리는 희귀식물 고란초도 볼 수 있다. 고란사 고란초는 방문객들이 반드시 보고가는 코스가 됐다.

이어 고란사 나룻터에서 황포돗대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따라 구드레나룻터에 도착하니 구드레조각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 부소산 북쪽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높이 솟구친 낙화암(落花巖).ⓒ김정원 기자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대에 태자들이 산책을 했던 태자길(홍토길) 순례도 할 수 있다. 

부소산성은 세 갈래길이다. 정문을 통과해 왼쪽 길로 가면 서복사지 절터가 나오고 곧장 올라가면 광장에서 모두 함께 만난다. 광장에서 다시 내려가면 태자길, 왼쪽으로 가면 낙화암 고란사길이다.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삼충사(계백장군, 성충·흥수선생)에 3명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나온다. 

백제시대 왕들이 목욕재계를 한 뒤 대신들과 함께 정사를 논했다는 ‘영일루’ 누각이 있고, 조금 더 가면 군량미를 저장했던 ‘군창지’, 사비성이 반달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반월루’가 나오는데 사비도성에서 부여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삼충사에서 부소산성 남문지로 올라가는 또 하나의 길은 토성 부소산성을 확인할 수 있다. 

부소산성은 봄과 가을에는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승지다.

부소산성 둘레길은 부소산문이나 구문 매표소에서 올라가야 하지만, 이날 부소산 입구를 닫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부소산 산자락을 타고 어렵사리 고란사 방향을 찾느라 진땀을 뺐다. 평소 부소산성에서 고란사까지 30~40분이면 족한데 10여분 더 걸렸다. 

배를 타고 백마강을 따라 고란사 나루터에서 내려 고란사~낙화암~산성 뒤편으로 가는 것도 괜찮다. 

▲ 삼천궁녀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부소산 고란사.ⓒ김정원 기자

부여는 부소산 낙화암과 고란사를 비롯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도시로서 문화재가 많아 볼거리가 즐비하다. 유네스코 유산등재는 부소산성과 그 아래 관북리 추정왕궁리 등 정림사지 5층 석탑, 능산리 고분군, 나성 백제사리도성의 외곽 등 4곳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진품이 전시돼 있고 국보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288호), 백제관음보살입상(국보 293호), 왕사지출토사리함(327호) 등 4개, 전시실 정 중앙에는 부여석조(194호) 등 보물 5개도 부여를 방문했다면 반드시 보고가야 할 소중한 문화재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36년간 근무했던 박기현 부여군 문화관광해설사(65)는 “낙화암은 많은 궁인들이 나당군에 쫓겨 낙화암으로 갔는데 잡혀서 치욕을 당하느니 죽는 길을 택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스스로 절개를 지키기 위해 뛰어내렸다. 고려시대 때까지 ‘파사암’으로 불렸고 실학자 김흔에 의해 최초로 ‘삼천과 낙화암’이라는 글귀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천궁녀는 숫자 ‘3000궁녀’가 아니라 많다는 뜻으로 의자왕을 ‘폄하’ 하고 있는데, 이는 승자의 입장에서 나온 이야기다. ‘신동국신증여지동국승람’에 사비의 가구 수가 1만호에 불과한데 삼천이라는 숫자는 말이 안 된다”며 세상에 잘못 알려진 점을 안타까워했다. 

▲ 충남 부여 고란사와 낙화암을 끼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백마강.ⓒ김정원 기자

박 해설사는 “백제역사 유적지구는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사전 제428호·제5호)과 정림사지(사적 제301호), 능산리 고분군, 나성 등이 있고 1400년 전의 백제시대를 재현해 놓은 백제문화재단지, 궁람지, 서동요 테마파크, 천정대, 백마강 수상관광 등 볼거리가 많다”고 소개했다.  

백제 때 도읍지인 사비성에 백제 사비시기의 중궁을 재현해 놓은 사비궁이 있다. 궁의 중심이 되는 천정전과 동쪽의 문사전 등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형태로 14개 동 4492㎡ 규모다. 

천정전은 궁궐 내 가장 으뜸이 되는 상징적 공간으로 신년하례식, 외국사신 접견 등 국가 및 왕실의 중요행사 시에만 사용하는 공간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높이 19m의 2층 규모로 건립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인 궁남지는 연꽃으로 유명하다.

매년 7월이면 백제 우왕(634년)인 서동과 선화공주의 전설로 유명한 ‘남궁지’에서 서동연꽃축제가 열리는데 10만평에 50여종의 연꽃을 심는다.

부여의 대표적인 음식은 ‘연잎밥’ 정식이 먹을 만하다. 부여읍에는 백제연밥‧향우정 등 연잎밥 음식점만 10여 곳이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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