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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음식 품으면 부패 안돼…사람엔 신성한 그릇”

청주 ‘본정공방’ 문현동 匠人, 15세부터 57년째 고집스레 발물레 돌려 전통옹기 제작
“플라스틱·스테인리스에 밀려 전통옹기 기술 사라져 가고 제자 못 키워 안타까워”

입력 2020-02-28 15:12 | 수정 2020-03-03 15:22

▲ 15세부터 옹기 일을 시작해 57년째 발 물레를 돌려 전통 옹기를 만들고 있는 본정 공방 문현동 장인.ⓒ김정원 기자

‘전통옹기’가 사용하기 편리한 플라스틱 용기와 스테인리스 등으로 인해 점차 우리 일상생활에서 밀려나고 있다. 

옹기는 과거 우리 삶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생활도구로, 그 쓰임새는 안 쓰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 조상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가재도구였다. 

하지만 우리 조상 대대로 사용해온 옹기의 무거운 단점 등을 보완한 플라스틱 등 편리한 옹기가 등장하면서 그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고집스레 옹기를 만들고 있는 장인이 있어 그를 소개한다. 

아직도 현역으로 옹기를 만들고 있는 문현동 장인(71·匠人),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대로 86 ‘본정공방 옹기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옹기장이’로 살아온 인생 풀 스토리를 보면 한편의 드라마로 다 쓸 수 없을 만큼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

충남 부여군 구룡면 구봉리가 고향인 문 장인은 15세부터 부친(고 문기만)으로부터 옹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옹기를 배우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고 다소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낮에는 옹기를 배우고 밤에는 ‘백자(白磁)’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부여군 은산면 부암리 옹기 공장에서 일을 했던 문 장인은 낮에는 옹기공장에서 부친에게 하루 종일 옹기 일을 배우고, 밤에는 도자기 공장 사장에게 사정을 해가며 1~2시간씩 도자기 기술을 익혔다. 부친은 이미 고인이 됐지만 6‧25참전용사로 68세에 작고했다.

그는 공부를 잘했다. 옹기를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24등의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뒤 2학년 1학기까지 다녔으나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결국 무기정학을 당해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당시 집에서 돈을 주지 않아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부친은 아들에게 “옹기를 배워라”고 권하는 바람에 옹기 만드는 일이 삶의 전부가 됐다.

이후 부친은 문 장인이 19살 때 경기도 용인시 송전면 곽터로 이사를 갔다. 그 곳에서 옹기의 일을 한동안 하다가 다시 충남 아산군 인주면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러나 옹기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21살 때 군 제대 후 결혼을 한 뒤 머문 곳이 여주시 이포면 이포리 옹기공장이다. 그는 이 곳에서 1년 간 일을 하다가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산이리 옹기공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다. 문 장인은 30대 후반부터 7년간 옹기토기에서 공장장으로 일을 할 정도로 옹기 기술에 관한한 인정을 받았다.

그 후 충북 청주에 오게 됐다. 그 동기는 심유승 작가가 운보 김기창 화백에게 문 장인을 천거한 것이 계기가 돼 1990년부터 ‘운보의 집’(청주시 내수읍 형동리 2구)에서 산업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시 운보 화백의 그림과 그의 옹기기술을 접목해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크게 유명세를 탔다. 

그는 1995부터 운보공방 실장을 맡아 김 화백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 뒤 가마에 구워내기 시작했다. 문 장인은 2006년까지 운보의 집에서 근무하다가 공방이 없어지면서 그 일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됐다. 

▲ 문현동 장인이 본정 공방에서 이종태 사장과 갖 만들어진 백자 옹기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김정원 기자

시련뒤에 기회도 찾아왔다. 

2010년에는 갑자기 부인이 작고하는 바람에 2년 간 방황했다. 그러던 중 2012년에 초콜릿회사 본정에서 함께 일을 하자고 제의가 들어와 70대의 나의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옹기 초콜릿 항아리를 옛날 조상들의 옹기를 만드는 전통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문 장인은 “옹기의 장점은 음식을 안에 넣으면 부패가 안 된다. 사람에게 무해하고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아주 사람에게는 ‘신성한 그릇’”이라고 평생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옹기를 배우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어릴 때 3년 간 무보수로 도제식으로 옹기 기술을 배웠고 아버지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쳤다. 적어도 3년간 옹기를 배워야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배우는 사람도 없다. 이러다가 전통 옹기기술 마저 사라질 위기다. 지금 거의 전통방식의 옹기는 거의 사라졌고 기계화되면서 전통방식은 거의 나 혼자 지키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옹기 기술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문 장인은 “가끔 TV에서 옹기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데 그것은 한마디로 ‘쇼’다. 거의 기계로 만드는 것이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문 장인은 “전통방식을 만드는 전수도 필요하지만, 15세부터 57년째 옹기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 옹기 제조법을 가르쳤지만 이들 대부분이 한 두 달 배우고 그만둬 이들 역시 제대로 만들 수 없어 안타깝다”면서 “그 중 유일하게 한 사람이 있었으나 지금은 어느 곳에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다”고 탄식했다.

그는 옹기 기술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크게 안타까워했다. 지금이라도 배우겠다면 전통 옹기 만드는 법을 가르칠 요량이다. 

문 장인은 “본정(本情)에서 옹기를 만드는 것으로 옹기 일은 끝내겠지만, 아쉬운 것은 평생 제대로 된 후계자 한 명을 키워내지 못한 것”이라며 “내 옹기 작업장이 없다보니 내 자식에게도 가르치지 못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돈벌이에 치중해 살다보니 옹기 기술을 전수하지 못한 것이 그동안 답답했고 아쉬웠다. 옹기 기술 전수도 그 가치와 활용도가 점차 밀려나면서 여의치 않아 중단했다”고 들려줬다.

그는 “우리 조상의 지혜로운 삶의 도구인 전통옹기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손으로 옹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려면 본정 공방에나 와야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초콜릿 항아리, 옹기국‧밥그릇, 옹기 빙수그릇, 반찬그릇, 옹기솟대, 저금통 등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경기가 좋을 때는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인기가 좋았고 다른 사람들이 보리밥을 먹을 때 우린 쌀밥을 먹을 정도로 잘 나갔다”는 문 장인은 “하지만 옹기가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플라스틱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모든 사람들이 가볍고 편리한 것만 찾게되고 주방용품으로 스테인리스 용기가 나오면서 옹기가 완전히 밀려났다”고 지난시절을 되짚었다.

아직 울산과 인천 서곳마을에 옹기마을이 있고 여주 이포에 옹기공장은 아직도 가동하고 있다.

현대화된 가마로 인해 옹기 제조과정은 편리해졌다.

문 장인은 “지금은 전기 가마에 옹기를 굽지만, 과거엔 옹기를 터널가마를 이용했다. 일본에서 봉우리 가마를 만들어 나무를 연료로 옹기를 구웠다. 옹기를 만들어 4t 트럭으로 7~8대의 분량의 나무로 엄청난 많은 옹기 구워냈다. 옹기를 굽는 것은 밤낮으로 5일간 소요된다. 지금은 기계화돼서 가스 가마, 전기 가마, 기름 가마로 굽기 때문에 참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옹기를 굽는 내내 사람이 5일을 지켜서야 했지만 지금의 가스 가마는 온도계만 보면 되는 참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 문현동 장인이 청주 본정 공방에서 가마에 굳기 전에 옹기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김정원 기자

그는 지금도 돌이켜보면 옹기를 배우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전통방식의 옹기를 배우는 사람이 없고 옹기가 점차 밀려나는 것은 참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나라 선조 때부터 집에 사용하던 모든 그릇과 농사용 씨앗까지 옹기에 담아 사용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옹기가 없으면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다.  

옹기가 모여 있는 장독대는 한국여인의 설움을 달래주는 곳이었다. 며느리들이 시집살이에 고달프면 장독 뒤에서 울었고, 어머니들이 정한 수를 떠놓고 자식 잘 되라고 기도했던 곳도 장독대다. 

이런 소중한 문화가 모두 사라지고 있다. ‘청수동이’ 즉 정화수 만드는 사람은 지금은 없다. 어머니들이 목욕재개를 한 뒤 새벽에 약수터 등에서 맑은 물을 청수동이에 떠다가 저녁에 기도할 때 바친다. 이런 과정이 모두 정성이 담겼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는 어머니들도 없다.  

문 장인은 “이렇듯 소중했던 옹기 기술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과거 작품 전시장에 어떻게 알았는지 한 대학생이 찾아와 청수동이와 관련해 논문을 쓰는데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어 주고 자세하게 알려 준 적이 있다”고 했다.

청주 본정 이종태 사장은 “문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전라도 몽탄옹기에서 10년 동안 옹기를 공급 받다가 청주시첨단문화재단 안승현 팀장으로부터 그를 소개 받아 운보공방을 문 닫고 용암동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고 있던 문 선생을 만나 직원으로 채용해 본정 옹기공방을 차려 초콜릿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8년 넘게 옹기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 문 선생님과 함께 점차 사라지고 없어질 전통옹기를 만들고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화된 제품과 접목할 수 있는 창의적인 제품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옹기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고 전통옹기는 사업성은 없지만, 초콜릿 제품을 담은 문화상품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전통을 계승시키는 부분에 효과가 크고 젊은층이 초콜릿 옹기를 구매함으로써 과거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것을 소중하게 느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옹기에 초콜릿을 담아 주니 신기해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의 소품으로 옛날 향수를 느낄 수 있어 옹기 백자 등을 아주 만족해하고 구입해 간다”고 말했다. 

이어 “옹기 공방은 문 선생의 재능을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에서 옹기를 전시·판매하고 있으며 젊은 사람들이 우리 전통의 질그릇을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급하기 위해 제품개발을 하고 있다. 또 해외여행 또는 해외출장을 가는 분들이 많이 초콜릿이 담긴 옹기를 많이 구입해 간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단골 고객도 많다”면서 “홍삼·매실 초콜릿이 옹기에 담겨 있어 더욱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더욱 좋은 것은 회사에 문 선생님 같은 어른이 계시다보니 직원들의 ‘규율’이 생기고 잘 따른다. 문 선생님은 어른으로서의 위치가 크고 저에게 “매일같이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거꾸로 제가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본정 공방에 문 선생님이 오시던 첫날 아버지 때부터 썼던 156년 된 발 물레를 가져오실 때 가슴이 뭉쿨했다. 본인도 발 물레를 다시 돌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고 강조했다.

▲ 문현동 장인과 부친 등이 156년 동안 사용됐던 발 물레.ⓒ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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