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km 완주 3시간 30분… 참나무‧솔향기 물씬, 물비늘 관찰 ‘쏠쏠’정절 지키려 벼랑에 투신한 며느리 넋‘진달래꽃’ 환생… 금강 물비늘 ‘조망’도
  • ▲ 충북 옥천 향수호수길 중 가장 아름다운길. 이 길은 좌측에는 마성산, 우측에는 금강을 끼고 걷기에 최적화된 트레킹 코스다.ⓒ김정원 기자
    ▲ 충북 옥천 향수호수길 중 가장 아름다운길. 이 길은 좌측에는 마성산, 우측에는 금강을 끼고 걷기에 최적화된 트레킹 코스다.ⓒ김정원 기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鄕愁)의 고장 충북 옥천에서 정지용 시를 되뇌이며 ‘향수호수길’을 걷는 것은 또 다른 감흥과 묘미를 준다. 

    ‘향수의 고장’ 옥천은 정지용 시인(1902~1950)의 생가가 아니더라도 곳곳에 그의 시가 내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향수호수길도 예외는 아니다. 트레킹을 하다보면 잠시 쉬어가며 정지용의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한 것을 보면 역시 향수의 고장답다.

    옥천에 새로운 트레킹 코스 향수호수길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향수호수길은 경부고속도로 옥천IC에서 보은 방면으로 조금 가다가 우측 길로 접어들어 고 박정희 대통령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졸업한 죽향초등학교~대성사(육영수 생가)~금강물환경연구소를 넘자마자 선사공원이 나타난다. 향수호수길은 선사공원 반대쪽인 마성산 산자락에 조성돼 있다. 트레킹 코스 내내 좌측은 산자락, 우측엔 금강을 끼고 끝없이 이어진다. 

    향수호수길에 막 들어서자 송명석 씨(68)가 버스킹 공연을 하며 환영했다. 음악은 향수호수길 걷는 이들에게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향수호수길 초입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는 길에 대한 설레임을 음악으로 대신해 줬고 완주한 사람들에게는 지친 걸음을 가볍게 해줬다. “구읍에서 연주를 하다가 이날 처음으로 이 곳에서 공연을 했다”는 송 씨는 쌀쌀한 날씨에도 가수 노사연의 ‘바람’ 등 2시간이 넘도록 음악을 선사했다. 

    향수호수길은 초입의 시멘트 포장길을 넘어서면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비교적 안전한 곳은 시골길처럼 걷기 편한 길이 이어지고 험한 곳은 데크길을 조성해 놓았다. 이어 전망탑(취수탑)으로부터는 금강 주변 산자락에 조성된 데크길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끝이 없는 데크길’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마성산과 금강을 조망하면 된다. 
  • ▲ 옥천 향수호수길 초입. 완주는 이곳에서부터 3시간 30분이 걸린다.ⓒ김정원 기자
    ▲ 옥천 향수호수길 초입. 완주는 이곳에서부터 3시간 30분이 걸린다.ⓒ김정원 기자
    데크길은 두 사람이 마주치더라도 교행이 가능할 만큼 불편하지 않다. 문제는 향수호수길이 완주에만 3시간 30분이 소요돼 무리했다가는 탈나기 십상이다. 현재는 갔던 길을 되돌아 와야 한다. 옥천군은 탐방객들이 편도를 완주한 뒤 출발지로 되돌아 올 때는 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를 띄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곧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이 길은 우축에 대청호(금강), 좌측은 높은 산이 이어져 오전이 아니면 해를 볼 수 없어 햇볕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된다. 향수호수길 좌우측에는 마성산(409.2m)의 참나무와 소나무가 늘어서 솔향기가 바람이 불어올수록 그 향기가 짙게 풍겨 난다. 오후에는 금강을 휘휘 저으며 청둥오리가 “꽥꽥” 소리를 지르고 낮은 호수 주변에는 황소개구리가 토종 개구리를 밀어내고 그의 울음소리가 적막감을 깨운다.  

    향수호수길은 김재종 군수가 취임한 뒤 조성되기 시작해 2019년 12월에 공사를 끝내고 준공식을 갖지 않을 정도로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길이지만 트레킹을 하기에는 최적화된 코스다.

    5.6㎞의 향수호수길은 옥천선사공원에서 출발해 물비늘 전망대~황새터~용댕이(황룡암)~주막마을까지 이어지고 중간에 오대앞들~다람쥐쉼터, 참나무쉼터~고비군락지~솔향쉼터~우름지테크~산새놀이터~원추리군락지~용댕이쉼터~바위솔군락지도 탐방할 수 있다. 향수호수길이 끝까지 걸어도 좋고 성이 차지 않는 사람들은 마성산과 이슬봉(454m)을 등반하면 된다. 

    물비늘 전망대는 옥천읍에 상수도를 공급하던 취수탑이었으나 1982년 이원정수장이 건립되면서 운영이 중단돼 지금은 향수바람길 전망대로 이용된다. 전망대가 금강 호수 안쪽에 설치돼 있어 탐방객들이 향수호수길과 금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데다 아름다운 금강의 물비늘까지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여서 들르지 않을 수 없다. 
  • ▲ 옥천 향수호수길에 들어서면 초입을 지나 옛날 시골길 처럼 흙길이 나온다. 이길을 계속 걷다보면 전망탑이 나오고 그 곳부터는 데크길이 끝없이 이어진다.ⓒ김정원 기자
    ▲ 옥천 향수호수길에 들어서면 초입을 지나 옛날 시골길 처럼 흙길이 나온다. 이길을 계속 걷다보면 전망탑이 나오고 그 곳부터는 데크길이 끝없이 이어진다.ⓒ김정원 기자
    데크길을 가다보면 강 건너 보이는 오대리 ‘오대앞들’이 나온다. 오대앞들은 과거 ‘며느리재’를 넘어 ‘황새터 여울’과 ‘한밭 여울’을 이용해 쉽게 접근이 가능한 농촌마을이었으나 대청댐 완공으로 여울이 사라지면서 현재는 배로만 다닐 수 있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며느리재 전설이 탐방객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며느리재는 옛날 비가 오던 어느 날 고개를 넘던 며느리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벼랑에서 수십 길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는데, 며느리의 애틋한 넋이 진달래꽃으로 피어났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수호수길을 걷다보면 ‘산너머 저쪽’, ‘산에서 온 새’ 등 정지용 시(詩)도 읽을 수 있다.

    향수호수길 좌측의 마성산에는 참나무가 많다. 트레킹 코스에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로리묵을 먹어보고 상시 수라상에 올리라고 해 ‘상수리’라고 불렀다는 ‘상수리나무’를 비롯해 껍질의 골이 깊은 ‘굴참나무’, 짚신에 잎을 깔아 신었다는 ‘신갈나무’, 잎으로 떡을 싸서 쪄먹었다는 ‘떡갈나무’, ‘갈참나무’, 참나무 중 가장 잎이 작은 ‘졸병’이라는 의미에서 ‘졸’자가 붙여진 ‘졸참나무’ 등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참나무가 유난히 많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가을엔 묵의 원재료인 도토리를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향수바람길은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옥천읍 수북리~동이면 석탄리~안남면 연주리로 이어지는데 거리만 23.2㎞에 이르고 ‘풀섶이슬길’(7.2㎞), ‘넓은벌길’(4.1㎞), ‘성근벌길’(7.4㎞), ‘전설바다길’(4.5㎞) 등 모두 4공간으로 조성돼 있다.
  • ▲ 옥천군 옥천읍 지용생가와 문학관.ⓒ옥천군
    ▲ 옥천군 옥천읍 지용생가와 문학관.ⓒ옥천군
    향수호수길의 트레킹을 마치고 옥천읍으로 나오는 구읍에는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정지용문학관에 들러 정지용 시인의 밀랍인형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그의 아름다운 ‘시(詩) 세계’를 여유 있게 둘러보는 호사를 누리는 것도 꽤 유익하다. 

    이어 생전에 정지용 시인과 한 동네 선후배로 살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1925~1974)의 생가를 둘러본 뒤 작지만 아담한 전통사찰인 ‘대성사’ 등을 관람하는 것도 또 다른 추억으로 남길 만하다.   

    포도‧복숭아의 고장으로 유명한 옥천은 먹거리가 무엇보다 풍성하다. 금강을 끼고 있어 민물고기가 풍성해 청산 ‘생선칼국수’를 비롯해 피라미에 고추장을 발라 프라이팬에 바삭하게 튀긴 ‘도리뱅뱅이’는 물론 ‘쏘가리’, ‘민물매운탕’, 호박꼬지가 들어간 ‘짜글이’ 등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 ▲ 옥천 향수호수길 초입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은 송명석 씨(68)가 지난 1월 17일 향수호수길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가졌다.ⓒ김정원 기자
    ▲ 옥천 향수호수길 초입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은 송명석 씨(68)가 지난 1월 17일 향수호수길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가졌다.ⓒ김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