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 사망·1명 중상·14명 투옥면 단위서 민족대표 33인 중 신석구·권병덕 2명 배출
  • ‘쌀안장터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및 독립의 횃불 행진’행사에 참석한 주민들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선열들의 뜻을 되새기고 있다.ⓒ박근주 기자
    ▲ ‘쌀안장터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및 독립의 횃불 행진’행사에 참석한 주민들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선열들의 뜻을 되새기고 있다.ⓒ박근주 기자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의 ‘쌀안(미원면의 옛 지명)장터 3·1만세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려 그동안 잊혔던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쌀안장터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추진위·위원장 박희갑)는 5일 김종대 국회의원(정의당·비례대표), 정정순(더불어민주당·상당지역위원장) 전 충북도 행정부지사, 박문희 충북도의원, 남일현·최충진·한병수 청주시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원천 잔디공원에서 ‘쌀안장터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및 독립의 횃불 행진’ 행사를 개최했다.

    쌀안장터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0일 당시 충북 청원군 미원면 장날 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낭성·가덕면, 괴산군 청천면, 보은지역 주민 1500여 명이 참여해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 침탈에 항거한 애국운동이다. 

    추진위와 충북도 등에 따르면 이날 미원장터 독립만세 운동은 신경구·이용실·이수란 선생 등의 주도로, 3월 30일 오후 2시 미원장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시작됐고, 이들이 동참을 호소하자 1500여명의 주민과 장꾼들이 합류해 확대됐다.

    이에 일본 헌병이 출동해 신경구 선생을 연행하자 이용실·윤인보·이성호 선생 등이 시위대를 이끌고 헌병 주재소로 몰려가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 담장을 무너뜨리고 돌을 던졌다.

    시위대 기세에 눌린 일본 헌병들이 발포해 그 자리에서 장일환·이병선 선생이 순국하고, 정무섭 선생의 팔이 잘려나가는 중상을 입었다.

    출동한 일본 헌병에 신경구·이용실·이수란·윤인보·성규원·김진환·신정식·서정렬·오교선·최봉원·이성호·이서구·신성휴·신학구 선생 등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애국지사들은 이날 만세 운동에 그치지 않고, 특히 오교선·박우동 선생은 미원면 성대리 이상옥 선생의 집에서 31일 다시 미원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하고 격문을 만들어 미원과 낭성면 내의 마을에 배포했다.

  • ‘쌀안장터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및 독립의 횃불 행진’행사 참가자들이 당시 표지석 부근에서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박근주 기자
    ▲ ‘쌀안장터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및 독립의 횃불 행진’행사 참가자들이 당시 표지석 부근에서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박근주 기자

    다음날인 31일부터 4월 1일 새벽 1시께까지 다수의 주민을 규합해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특히, 31일 밤 낭성면 주민 상당수는 면사무소를 습격해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자 직원들이 도망갔고, 다음날에는 괴산 청천 3·1운동에서 돌아오던 미원면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한 300여 명의 주민들이 항일 운동을 이어갔다.

    4월 7일 미원면 운교리 산 위에서는 이성태 선생이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고, 이후로도 만세 운동은 계속 됐다.

    이 쌀안장터 3·1만세운동은 결국 2명 사망, 1명 중상, 14명 투옥 등으로 아쉽게 끝났다.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쌀안장터 3·1만세운동은 당시 청주군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가운데 가장 격렬하고, 규모가 컸던 것으로 기록됐다.

    특히, 이러한 저항정신은 앞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신석구(미원면 금관리)·권병덕(미원면 종암리) 선생을 배출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박 추진위원장은 “100년 전 오늘 이 쌀안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으로 민족 자주의 길을 열었던 우리지역 애국지사들의 커다란 외침을 다시 되새기자”며 “이 분들의 힘찬 함성이 헛되지 않도록 지역과 민족, 국가를 위한 희망의 촛불을 들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애국애족 운동의 본 고장인 미원에 이분들을 제대로 선양하기 위한 기념비 하나 없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념식에서 박문희 충북도의원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두 분을 배출했고, 3·1운동 당시에는 가장 격렬하게 저항운동을 펴 일제의 특별 감시 지역에 분류됐던 독립운동의 성지에 이 분들을 제대로 기리기 위한 기념비 하나 없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며 “충북도지사와 충북도교육감, 청주시장, 국가보훈처 등은 자라나는 후세들을 위해서라도 이 분들의 정신을 교육시킬 기념관을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