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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 시사칼럼] ‘씹다가 버린 껌’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칼럼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19-03-15 08:50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이 휴전된 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국내 여러 곳에 미군 주둔기지가 생겨났다. 필자가 자랐던 고향에도 규모가 큰 미군부대가 도시 곳곳에 있었는데 미군부대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미제 ‘껌’을 얻으려고 지나가는 미군들을 졸졸 따라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껌’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다양하겠지만 필자에게는 어릴 적의 그런 광경이 ‘껌’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1950년대에는 필자 또래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형뻘의 아이들도 미제 ‘껌’을 얻으려 미군 뒤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그러다가 운수 좋은 날에 ‘껌’을 하나라도 얻으면 단물이 다 빠지도록 씹었고, 그것도 아까워 씹었던 ‘껌’을 벽에 붙여 놨다가 다음날 떼서 다시 씹곤 했었다.

출생년도가 1940년대이거나 1950년대 초반 연배의 국민들의 ‘껌’에 대한 추억도 필자의 추억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게다. 이 세대들은 국민소득 67달러 시대부터 오늘의 3만 달러 시대까지의 전 과정을 다 겪으면서 살아온 대한민국 역사의 산증인들이자 우리 사회의 원로계층이다. 삼시세끼조차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웠던 시절에 길거리에서 어쩌다 얻은 ‘껌’을 간식거리로 여겼을 정도로 곤궁했던 시절, 우리 사회 원로들 가슴이 아리는 기억의 잔영에 ‘껌’이 존재한다.

1960년대 들어 국내 제과회사가 외국 기술을 도입하여 국산 ‘껌’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껌’은 아이들이 미군에게서 얻어먹던 ‘껌’에서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서 먹는 ‘껌’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껌’은 여전히 아이들에겐 종일토록 씹을 수 있는 간식거리였다. 단물만 빼먹고 버리는 게 아니었다. 

문재인 정권의 2기 내각의 통일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인사가 과거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린 인신공격성 글이 논란이다. 그는 SNS에서 “안철수의 실패, 새것이라 아무거나 주어먹으면 피똥 싼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추미애는 감염된 좀비이다.”, 그리고 2016년 당시 민주당 비대위 김종인 대표에 대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씹다 버린 껌”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그의 과거 행보를 두고 학자는 원래 사회를 비판하는 게 정상이고, 그런 비판적 글을 올렸다고 해서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걸고넘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비판 글에도 품격이 있고 함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의 글의 품격은 시장잡배들의 것보다도 못하여서 문제인 게다. 

특히 필자는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해 던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씹다 버린 껌”이라는 글이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씹다 버린 껌’은 부모를 빗댄 욕만큼이나 매우 인격 모독적이다. 그런 품평에 대하여 당사자인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상황 따라 말하는 사람의 말에 관심 없다”라면서 애써 무시했지만 여든에 가까운 사회 정치원로가 느꼈을 모멸감의 크기가 작지 않을 것 같다.  

통일부장관 지명자가 그동안 발표했거나 SNS에 올렸던 글에서 이념 편향성 정치적 발언에 대하여는 여러 언론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으므로 그것대로 평가를 받겠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인신공격성 또는 인신모욕성 인물평을 만인이 들여다보는 SNS에 꺼리 낌 없이 올렸던 지명자의 뇌구조와 인성을 더 따져보고 장관 자격을 논하라는 주장이다. 칼럼의 모두(冒頭)에서 ‘껌’ 얘기를 꺼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필자 세대에서는 껌을 씹다가 아무렇게 함부로 버리지도 않았다. 

대통령은 이념이 통하고 코드가 일치해서 그를 통일부장관으로 지명했겠지만 국민들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판명이 난 인사를 장관으로 임명 강행한다면 그 또한 대통령의 실책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타인을 그렇게 혹평하고 함부로 재단할 권리를 가지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가 자기 자식을 함부로 평할 권리가 없는 게 요즘 세상이다. 김 지명자가 평소 본인 성격대로 살려면 국민들이 검증하고 따지는 장관자리를 넘보지 말아야지 장관자리 던져준다고 덥석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본인 성격대로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살려면 여태까지와 같이 대학 교수직에나 만족하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고 본인에게도 편한 길이 될 것이다. 

살면서 타인 평가를 공개적으로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님을 반성하는 기회로 여기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장관지명자 자리에서 자진해서 물러남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가 본인도 언젠가 ‘씹다가 버려질 껌 신세’가 될 지 누가 알겠는가? 껌 얘기를 그렇게 함부로 내뱉은 업보가 작지 않음을 깨달을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대통령께 감사하고 물러나는 게 본인과 국민과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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