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계약서의 ‘갑을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 대하여 부당한 행위를 할 때 흔히 ‘갑질’이라 말한다. 반면에 어떤 집단에서 권력 과시적인 행동으로 집단이나 개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할 때 ‘완장질’이라고 한다. 갑질과 완장질은 유사한 악덕행위이지만 갑질과 완장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2. 1970년대에 나돌던 우스개 얘기이다.
    시골에 사는 한 아버지가 군대에 입대한 아들 면회를 다녀온 뒤 동네 사람 몇 명을 불러 주막집에서 술 한 잔을 사면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앞으로 이장은 일하기 쉽지 않을 겨.”
    궁금한 동네 사람이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그 아버지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내 아들이 헌병인데 별이 세 개여, 그리고 길 가운데서 손만 들면 집채만 한 쇠구루마가 척척 서는 겨.”

    아마도 아버지는 좌우에 커다랗게 별이 그려진 헌병 헬멧을 쓰고 팔에 헌병 완장을 차고 부대 앞에서 교통정리 하는 아들을 본 모양이다. 아들의 신호에 따라 큰 군용트럭이 정지하는 광경에 아버지는 아들이 무척 출세한 것으로 생각한 게다. 그렇게 출세 완장을 찬 아들을 두었으니 동네 이장이 알아서 잘 모시지 않으면 자기가 부리는 ‘꼬장’에 동네 이장이 일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오만의 거드름에서 나온 말이었던 게다. 완장질 해보겠다는 ‘주막선언’을 한 것이다. 

    #3. 1980년 초에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윤흥길의 ‘완장’이라는 소설이 있다. ‘갑질’이나 ‘완장질’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떠올리는 소설이다. 

    무위도식하다가 보잘 것 없는 저수지 감시인으로 채용된 ‘임종술’이라는 주인공이 완장을 차고 낚시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단속한답시고 행패를 부린다. 그러다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까지 못하게 단속하다가 해고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완장을 차고 저수지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가 경찰과 수리조합 직원과 부딪치고 결국에는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마을을 떠난다. 완장질이 심한 우리사회를 풍자한 대표적 소설이다.

    #4.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지 6개월 밖에 안 된 여당 초선 국회의원이 지난 20일 김포공항에서 벌인 행태에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김포공항 탑승장 출입구에서 안전수칙에 따라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 보안요원에게 자신이 국토교통위 소속 국회의원이라며 신분증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으며 소리 지르고 옥신각신 했던 행적이 22일에 한 언론에 보도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히려 내가 갑질 당했다.’는 입장문을 올렸다. ‘방구 뀐 놈이 성을 낸 격’이다.

    그의 입장문 내용처럼 공항보안요원이 그에게 갑질을 했다고 믿으려 해도 전후 정황을 살펴보면 오히려 국회 국토교통위원이라는 완장으로 공항보안요원에게 완장질을 했다는 사실을 자백 꼴이다. 그에 더하여 ‘이 사건의 배경에는 나에 대한 견제가 있고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의 안목과 지력이 기껏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들끓는 비난 여론에 마지못해 성탄절인 25일에 본인이 잘못했다는 사과 기자회견을 하였지만 진정성 없는 억지 사과로 비쳐져서 국민 여론은 더 싸늘하다. 국민들 앞에서 ‘삼배구도구(三拜九叩頭’(병자호란 때 조선조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올린 항복의 예)를 한들 국민들의 화가 풀리긴 어렵겠다. 

    24세의 신입 보안요원의 배포가 아무리 크다 한들 국토교통위원인 국회의원에게 감히 갑질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국회의원이 갑질을 당했을 거라 믿을 국민은 아무도 없을 터인데 기껏 다시 궁리해낸 변명이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하는 공항공사의 음모라니 그런 발상을 하는 자질이 의심스럽고 참으로 유치찬란하다. 

    문제는 이런 자질 낮은 자들이 완장 차고 국정을 한답시고 국회에 앉아 있으니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게다. 어쩌다 처음 국회의원이 되어보니 그 완장의 위세를 부리고 싶어 안달이 난 게고, 그 참에 새파란 공항보안요원이 그 완장을 몰라봤으니 화도 많이 났을 게다.

    사오십년 전의 우스개 얘깃거리인 군대 면회 다녀온 아버지의 ‘주막선언’이나 소설 ‘완장’ 속의 주인공 임종술이 완장차고 나대던 행태나 2018년 끝자락에 벌인 여당 초선 국회의원의 완장질이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렇찮아도 준비 안 된 정권의 갑질과 완장질에 나라경제가 뭉개지고 안보가 흔들리고 있어 국민들 불만과 불안이 점증하는 판국에 정치 소인배의 완장질까지 봐줘야하는 국민들은 왕짜증이 날 판이다. ‘김포공항 갑질 사건’이라 언론이 보도하고 있지만 훗날 ‘2018년 국토교통위 여당 초선의원의 김포공항 완장질 사건’으로 기록해야 할 것이다.

    해가 바뀔 때면 으레 새해에는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었는데, 그런 희망은 없고 짜증날 일만 터지는 세밑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새해맞이하기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