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 죽도록 사랑한 가네코 후미코 부강으로 돌아오다’

박열의사 부인 가네코 후미코, 옥사 92년 만에 독립유공자 ‘서훈’
제국주의 저항 ‘일왕 암살’ 계획 발각 ‘사형선고’…꽃다운 나이에 옥사
1912년 일제시대 7년간 세종시 부강면 고모집서 거주
이규상 전 부용면장, 가네코 후미코 생활한 집‧학교 등 ‘고증’

김정원·김동식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12.05 15:48:52

▲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 의사.ⓒ박열의사기념관

“식민지 조선을 죽도록 사랑한 여인, 세종시 부강으로 돌아오다.”

가네코 후미코, 일본 여성으로 대한민국 독립 운동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한 여인이자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1902~1974)를 도와 일왕(日王)을 폭사시키려 했던 강단 있는 여성. 꽃다운 나이(23세)에 감옥에서 순국한지 92년 만에 그의 숭고한 독립운동정신이 재평가됐다.

지난 17일 제79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정부가 건국훈장을 추서한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가 세종시 부강면에서 7년 간 살며 3·1 운동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일본인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나약한 여인의 몸으로 “박열과 함께 죽겠다”며 처절하게 몸부림 쳤다.

일본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출생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양육을 거부당해 출생신고가 되지 못했던 가네코 후미코는 무적자(無籍者)라는 이유로 학교를 제때 다니지 못하는 등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일본에 있는 친척집에 맡겨져 자라던 중 9살 때인 1912년 충북 청원군 부용면 (현재 세종시 부강면 부강리)에 살던 고모의 집에 들어갔으나 할머니에게 학대당하며 약 7년간 살며 부강심상소학교에서 수학했다. 그 동안 3·1 운동을 목격하면서 조선인들의 독립의지를 확인하고 이에 동감했다.

이 후 1922년 박열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흑도회와 흑우회에 가입하고서 기관지를 함께 발행하는 등 박열과 뜻을 함께했다.

그녀는 히로히토 일왕을 폭살하기 위해 박열을 도와 천황 암살을 계획하고 폭탄을 반입하다가 적발돼 사형선고를 받고, 다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옥살이 중 1926년 7월 숨졌다. 옥사 당시 그녀는 한창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꽃다운 23세에 불과했다.

박열과 옥중에서 결혼 서류를 작성하고 서류상 박 씨 문중의 사람이 된 가네코 후미코(한국이름 朴子文子·1903년 1월 25일~1926년 7월 23일)는 옥중에서 박 의사와 서류상으로 결혼했기에 박열의 형이 유골을 인수해 고향인 문경에 매장했다.

그 뒤 1973년 독립지사들이 그녀의 묘역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세웠으며, 박열의사기념관이 2003년 조성한 기념공원에 묘를 옮겨 안장했다.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관에 따르면 국가보훈처가 순국선열의 날인 지난 17일 가네코 후미코를 독립유공자로 발표했다. 그녀가 옥사한 지 92년 만이다.
  
보훈처는 일본인으로서 일제의 만행에 저항한 사회주의자 가네코 후미코를 독립운동자로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는 한편 이날 여성 32명을 포함해 독립유공자 128명에게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일본인이 우리나라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것은 가네코 후미코가 두 번째다.

이에 앞서 일본제국의 조선인 토지 강탈에 대항해 한국인을 변호했던 후세 다쓰지 변호사가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바 있다.

박열의사기념관은 지난해 영화 ‘박열’ 개봉 이후 들끓은 국민들의 지지와 새로운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재조명해 가네코 후미코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 백원기 문화유산 한옥 대표와 이상욱 세종시 부강면장, 이규상 전 청원군 부용면장 등이 지난 20일 청주 한 음식점에서 가네코 후미코 독립유공자 서훈을 기리는 모임을 가진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김정원기자

박열 기념관은 “그동안 박열 의사의 지원자 역할만 한 것으로 알려진 가네코 후미코가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로서 이름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석교초등학교 인근 음식점에서 백원기 문화유한 한옥 대표 주최로 ‘가네코 후미코 독립유공자 서훈’ 을 기리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이상욱 세종시 부강면장과 박상일 청주문화원장, 이규상 전 청원군 부용면장(삼버들작은도서관장), 손부남 서양화가, 이강선 청주향교 국장, 임재한 세종시 문화해설사회장, 윤기택 청주대 교수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가네코 후미코의 서훈과 관련해 “늦었지만 식민지 조선을 죽도록 사랑한 여인, 부강으로 다시 돌아오시다”라며 그의 92년 만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기뻐했다. 또한 백 대표는 “한국인이 된 박문자(한국이름 朴子文子)님 사랑합니다”라고 했으며 이상욱 세종시 부강면장은 “부강의 여인, 당신을 존경한다”며 그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렸다.

가네코 후미코가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기까지는 박열의사기념관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규상 전 청원군 부용면장의 공이 컸다.

이 전 면장은 28일 뉴데일리와의 전화에서 “지난 17일 일본인으로서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가네코 후미코가 부강면 부강리 258번지에서 약 7년간 살았던 사실을 확인한 뒤 고증자료를 박열기념관과 정부에 넘겨줬다”고 밝혔다. 

이 전 면장은 “가네코 후미코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기까지는 박열기념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했다”면서 “청원군 부용면장 재직 당시 일제시대 가네코 후미코가 부강에서 7년간 생활한 집과 학교, 일본군이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잡아서 고문해던 장소, 그리고 그녀가 자살하려고 했던 곳 등에 대해 고증을 했다”고 전했다.

이 전 면장은 “청원군 부용면장(청주시와 통합되기 전) 재직 당시인 2010년 ‘부강생활’ 에도 게재했다”고 전했다.

세종시 이상욱 부강면장은 “가네코 후미코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부강면에서는 뜻깊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기회가 되면 부강에서 가네코 후미코와 관련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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