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시사칼럼] 평화가 온다는데, ‘국민은 불안하다’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관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남북정상이 평양선언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손을 맞잡고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정부친화적인 언론매체에선 핵 위험은 사라지고 평화가 온 듯 얘기하고, 통일이 임박한 듯 분위기를 띄운다. 과연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을까?

필자는 13년 전인 2005년 7월에 학술교류차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과 백두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북한에 다녀온 후 논설위원으로 있던 충청매일에 ‘천지에 발을 담그니…’라는 칼럼을 썼는데, 대통령의 평양 행보와 백두산 등정을 보면서 그 칼럼을 다시 떠 올렸다. 그 때나 지금이나 북한이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여서 아래에 그 때 게재했던 필자의 칼럼에 약간의 추고를 해서 전재한다.

다음은 2005년 8월 12자 충청매일에 게재됐던 ‘천지(天池)에 발을 담그니…’칼럼 내용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 읽히던 책 중에 ‘학원(學園)’이라는 청소년 잡지가 있었다. 그 책에서 어느 인사가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있는 간헐온천 ‘올드페이스풀’에 다녀와서 쓴 기행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언제 나도 그런 곳에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시의 우리나라 살림 형편에 미국이라는 곳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런 명승지를 구경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기 어려운 때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제3회 아시안게임을 설명하시면서 “우리는 언제 쯤 그런 큰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을까?”라고 물으신 적이 있었다. 아시안게임이 그랬으니 올림픽은 정말로 머나 먼 부자나라의 일로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우리 국민 소득이 아마도 100달러도 안되었을 때였으니 모두의 생각이 그럴 만도 했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은 일제 강점기 때 찍은 금강산 사진첩을 실물화상기로 보여주시면서 “우리 세대에 금강산 구경을 할 수 있을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1960년 중반이었으니 그 당시로는 불가능한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휴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강산 구경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백두산 천지야 말할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요즘이야 흔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백두산 천지 사진은 희귀사진 중의 하나였으니 말이다.

필자가 사회인이 되어서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면서도 우리는 언제 월드컵 축구대회를 개최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게 엊그제 같은 데, 우리는 아시안게임을 두 번이나 치렀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개최할 만큼 나라의 능력이 신장되었다. 이미 1988년에 올림픽을 치렀고, 월드컵 축구대회도 유치했고 4강신화도 이뤄냈다.

40~50여 년 전, 우리는 참 못 살았었다. 지구상에서 끝에서 몇 번째 안 되는 그런 가난한 나라에서 살았던 게다. 그런 시절에 글로써, 사진으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읽고 보고 들으며 머나먼 곳의 일로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참 대단하고 우리 민족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필자가 연수차 교환교수로 미국엘 가서 예의 그 국립공원의 간헐온천을 구경하면서 느낀 감회가 참으로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 때 가족들에게 초등학교 때의 생각을 얘기하면서 초등학교 때의 꿈이 변하여 나타난 현실의 감격을 말한 적이 있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그 간헐온천은 40여 년 전의 한 소년의 꿈을 보여주었던 그런 곳이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은 그래도 우리나라 안에서 치러진 행사라 느낌이 많기는 했지만 간헐천을 보면서 처음 느꼈던 그런 어린 시절의 꿈의 실현 같은 그런 감회만큼은 아니었다.

필자는 2005년 7월 20일부터 7박8일간 남북학술회의 참석차 백두산과 평양을 다녀오면서 천지의 호수 물에 발을 담그는 감격에서 미국 옐로스톤의 간헐온천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특별한 감회를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중국을 통하여 백두산 천지 관광을 하기는 했었지만 북녘 땅으로 올라간 백두산은 더 특별한 것이었고, 중국 땅에서 보았던 천지보다 더 멋있고 웅장한 광경이었다.

남들은 몇 번의 등정에 겨우 천지의 전모를 구경했다는데 운 좋게도 맑은 날을 맞아 한 번에 천지를 조망할 수 있었던 행운도 그랬고, 동행한 북측 고위 인사의 배려로 케이블카를 타고 천지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었던 행운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천지 호수까지 내려가서 발을 담갔을 때 고통에 가깝도록 뼛속까지 저려오던 신선한 차가움도 그랬지만, 천지 호수에 발을 담그면서 감회가 벅찼던 것은 필자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상상하기 조차도 쉽지 않았던 꿈의 현실화 때문이었다. 
   
천지는 그렇게 필자에게 다가왔고 40년 전의 소년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감회를 만들었다. 거울 같이 맑고, 한 눈에 다 넣을 수 없어 가슴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거대한 천지 호수에 발을 담그고, 우리 세대에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해온 통일도 이렇게 꿈의 실현으로 머지않아 이뤄질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우리 세대에 통일이 될 것인가?”라던 실현 불가능할 것 같았던 꿈을 가졌던 기억에서, 그 때의 꿈 중에서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이 통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지에 발을 담그면서 통일도 꿈이 아닌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일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13년 전의 백두산 천지방문기를 위에 전재한 이유는 평양의 경관이 조금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 보았던 북한이나 13년 지난 지금의 북한이나 그들 속셈은 달라진 게 없고 핵무기 개발을 마친 수순으로 경제적 필요에 의해 정치적 몸짓을 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3년 전 그 당시 필자의 머릿속에는 ‘통일의 날이 그리 멀지 않았고, 남쪽의 국력으로 북녘 동포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겠구나’ 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쩌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와 허탈감이 생겼다는 게 그 때와 달라진 점이다.

그 때는 비록 정치가 좌우파로 갈려 다툼이 있었지만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슬로건으로 승승장구 발전하던 우리나라였는데, 지금은 경제가 정체되고 청년들은 ‘헬조선’이라고 자조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세계가 호황인데 우리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나라를 잘 추스르면 얼마든지 속도를 내어 발전할 수 있는데, 과거만 캐는 국가 리더십에 나라가 정체되고 국민들은 불안해한다.

사상전에 능한 북한을 상대로, 핵무기를 포기할 리 없는 북한을 상대로, 우리가 어떻게 평화협상을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평화가 온다고 하는데 국민들은 더 불안해지는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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