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운동가, 무장독립투쟁 초석 다진 ‘현천묵’ 선정

북간도 망명…독립기념관에 사진 등 7점 전시

김정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9.27 11:28:58

▲ 북로군정서에서 사용한 무기류.ⓒ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현천묵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린다. 

1862년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꾸준히 한문을 수학한 현 선생은 학업에 대한 관심은 교육으로 이어져 1906년부터 민족교육의 산실인 보성학교 학감과 교감을 맡는다.

이어 현천묵은 학생들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1908년에는 대한협회 경성지회장으로 선출되며 민족교육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갔다.

대한협회 경성지회는 의병을 지원하거나 군자금을 조달하며 항일전을 이끌었는데, 계속된 일제의 탄압으로 1910년 전후의 활동은 점차 위축됐다.

현천묵은 대종교 수용을 통해 항일 의지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포교활동과 새로운 활동근거지를 찾아 북간도로 망명했다. 이후에도 대종교에서 설립한 교육기관의 교장을 맡아 북간도 한인사회의 민족교육을 이어갔다.

1919년 현천묵은 이주한인의 규합을 위해 중광단 조직에 힘을 보탰고, 이후 더 조직적인 무장투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총재 서일을 중심으로 대한정의단이 조직됐고, 현천묵은 50대 후반에 부총재를 맡아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다. 이후 북로군정서로 이름을 바꾸고 1920년 10월 홍범도 부대와 연합한 북로군정서는 청산리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일제는 패전을 설욕하기 위해 한일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는데, 이에 책임을 통감한 총재 서일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후 현천묵이 총재를 맡은 북로군정서는 직접 투쟁보다 대종교 포교와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앞장선 현천묵은 1925년 신민부가 만들어지기까지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나섰고, 1928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정부는 현천묵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10월1일부터 31일까지 한달 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현천묵 사진 등 7점을 전시한다.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newdaily.co.kr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
Copyrights ⓒ 2005 뉴데일리뉴스 - 무단전재, 재배포 금지
※ 청소년에 유해한 댓글 과 광고/반복게재 된 댓글은 작성을 금지합니다. 위반된 게시물은 통보없이 삭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