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필자가 초등학교 때 들었던 이야기이다. 당시 국민소득이 60달러의 세계 최빈국이어서 국민들이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그 때 시중 계란 한 갯값이 100환 쯤 되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 비서관에게 계란 값을 물었다. 비서관이 대통령께 계란 1개 값이 10환이라고 답하니까 100환을 주면서 계란을 10개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는데, 비서관이 아무리 그렇게 말했더라도 대통령이 너무 물가를 모른다면서 시중에 나돌았던 이야기였다. 

    요즘처럼 소셜네트웍크가 잘 되어 민심이나 시중의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없던 때였으니 대통령이 저잣거리에 잠행하면서 직접 민심을 살피지 않는 한 그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을 게다. 문제는 권력의 힘이 강하고 커질수록 국민들의 실제 삶을 바르게 아뢰는 충직한 사람보다는 권력자에게 거짓으로 아부하는 무리가 많아지고 그들에게 둘러 싸여서 권력자의 판단이 흐려지고 결국에는 파탄이 난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세 좋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갈수록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특히나 경제와 안보관련 정책이 국민들 상식과 거리가 생기고 서민들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는데, 그런 시중의 서민 사정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것 같다.  

    달마다 집계되는 실물경제지표가 나아지지 않고 더 나빠지기만 하니까 당·정·청이 부산하게 대책회의를 한답시고 연일 회의를 하고 있지만 뉴스로 전해오는 대책회의의 결과는 ‘그럼에도 소득주도성장정책 Go Go’이다. 고스톱 판에서 ‘피바가지를 뒤집어쓰더라도 Go’ 한다더니 꼭 그런 꼴이다. 판돈 다 잃고 쪽박 차기 십상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의 나쁜경제상항에 대한 원인을 모두 남 탓으로 돌리고 있다. 청년 일자리가 준 것은 청년 인구가 줄어들어 취업한 청년이 적어서 그런 것이므로 몇 년 후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고 청년 취업률이 올라갈 거라 한다. 고용률이 준 것은 장마철 영향이어서 일시적이라고 한다. 일자리가 준 것은 폭염 탓이라고도 한다. 국민들 울화만 돋우고 있다.

    그러다가 지금의 고용부진은 지난 정권 때 잘못된 정책 탓이란다. 지난 10년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성장 잠재력이 낮아져서 그 결과가 지금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때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하여 다른 산업에 투입해야할 예산 26조원을 4대강 사업에 투입했기 땜에 제 때에 인력을 양성하지 못하여 지금의 고용부진사태를 초래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4대강 사업 22조원이면 연봉 2200만 원짜리 일자리 100만개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삼성이 가지고 있는 사내유보금 20조원만 풀어도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22조를 2200만으로 나누면 100만이고 20조를 1000만으로 나누면 200만이 되니까 계산이 틀리지는 않은데, 초등학교 저학년 산수계산의 답이다. 그걸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 사회 수준과 경제규모가 그런 초등학교 저학년 산수로 설명할 만큼 지적능력이 낮지 않을 텐데 정치인들은 그런 말로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국민들이 핫바지가 아닌데 그런 레토릭으로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용기가 대단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연말쯤이면 소득주도성장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므로 정부를 믿고 연말까지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국민들은 그 효과를 똑똑히 잘 보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장만 효과가 이미 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첫눈이 내릴 때 쯤 알게 되려나?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최저임금 인상에 사회적 약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주 52시간 근무제로 서민들이 저녁 있는 삶을 가지긴 커녕 줄어든 가계수입을 채우기 위해 ‘겹벌’이 알바이트하는 저녁이 되고 있다. 이 모든 게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분명한 효과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런 효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채 하고 있는 게다. 100환인 계란 1갯값을 10환이라고 보고했던 60년 전의 경무대 비서관과 대통령이 그 보고대로 100환으로 계란 10개를 사오라는 것과 지금의 상황이 뭐가 다른가? 경제의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인데, 뭘 하려면 고집만 부리지 말고 좀 제대로 해야 된다.

    경제파탄의 임계점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은데, 초등산수 수준의 숫자놀음으로 국민들 눈 가린다고 현상타파가 될 리 없다. 민심의 인내도 한계가 있을 터이다. ‘민심은 곧 천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