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대학교 명예교수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며칠 전에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이 하나 있다. ‘토드 로즈’가 지은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다. 이 칼럼을 쓰려고 급히 머리말을 읽고 속독으로 후루룩 일별했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ADHD 장애 학생으로 중퇴하고 최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공부해서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가 된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평균주의에 함몰돼 있는 교육과 평가 시스템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낸 책이다.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 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비교할 때 곧잘 평균을 들먹이면서 비교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교육관련 수치이다. 학교성적을 얘기할 때면 당연히 평균을 들이대면서 비교한다. 그러나 ‘평균의 종말’에서 말한 것처럼 평균은 만능이 아니다. 통계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평균은 그저 어떤 통계 수치를 대표하는 여러 가지 대푯값 중의 하나일 뿐이고, 절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필자가 과거 교과서 심의책임을 맡았을 적에 어떤 교과서에서 달리기나 멀리뛰기 등의 기록을 주고 평균을 내라는 문제를 제시한 사례가 있었다. 그 자료의 평균을 단순히 계산할 수는 있겠지만, 달리기 기록이나 멀리뛰기 기록의 평균이 통계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저자들이 간과하여 그런 적절하지 않은 통계자료를 교과서에 제시했던 것을 지적하고 정정케 했던 적이 있었다.

    ‘평균의 종말’에서도 평균적인 신체 치수, 평균적인 지능, 평균적인 성격 같은 것이 없다고 했다. 평균적인 학생이나 평균적 직원도 없고, 평균적 두뇌도 역시 없다. 이런 일상화된 개념 모두 잘못된 과학적 상상이 빚어낸 허상이고 평균적 인간과 관련된 이런 개념은 엄밀한 진실이 아니라 인간들의 잘못된 통념이라는 게 ‘토드 로즈’의 주장이었다. 당연히 학문적 통계로도 이런 자료들은 의미가 없다.   

    칼럼의 모두에 필자가 이렇게 평균의 허상을 꺼낸 이유는 금융감독원장으로 새로 임명된 김기식씨가 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시절 때의 적절치 않은 행적 때문에 거의 모든 언론 매체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고, 사퇴하라는 여론의 압박을 받고 있는 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13일에 발표한 서면 메시지가 너무 황당해서이다.

    문대통령은 메시지에서 “김 원장이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 피감기관 지원 해외 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 관행에 비추어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 국회의원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위법 여부를 떠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국민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라고 밝혔는데, 필자는 ‘도덕성의 평균’이라는 말에 폭소하지 않을 수 없다.

    비리 부정부패를 따질 때는 ‘도 아니면 모’일 뿐이다. 비리를 저질렀거나 청렴했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지 거기에 무슨 평균적 도덕성 운운하는 대통령의 발상이 너무 황당무계하다. 평균적 관행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김기식씨라면 국민들이 이렇게 실망하면서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금융계의 검찰이라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그런 부적절한 행적을 남긴 자가 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눈높이기 때문이다.

    나라 안팎이 위중한 이때에 적폐몰이로 일 년을 허송하던 촛불정권의 눈높이가 여기까지가 아님을 보이려면 대통령은 지체 없이 김기식 금감원장을 퇴출시켜야 한다.

    투전판에서 손을 떼야할 때 과감히 손을 떼지 못하고, 이번에는 대박치겠지 하는 기대와 미련으로 앉아 있다가 폐가망신하고 내쳐지듯, 권력의 자리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눈높이는 김기식씨가 금감원장의 자격도 없을 뿐 아니라 마땅히 사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임을 알고 한시라도 빨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