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출신 작가가 쓴 정책소설
  • 최백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러 작가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다. 기필코 이룰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은 위암 수술을 하면서부터였다.
    더 이상 발버둥을 치다가는 단 몇 년도 더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절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든 욕심을 버리는 것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사실도 알았다. 죽음 앞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최백수는 가슴이 답답하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자신이 쓴 책과 다른 사람이 쓴 책이 반반씩 섞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신이 쓴 책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다 비판적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형식이든 간에 다 날카롭게 세상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그런 글로는 성공할 수 없다.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감각적인 것이다. 사랑과 미움뿐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세상과 야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책을 쓰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성격 때문이다. 그런 성격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마디로 팔자소관이다.
    최백수는 다시 자신의 사주팔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금(金) 기운이 너무 강한 게 병이라는 사실을 또 발견한다.
    강한 금 기운이 마침내 글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금은 정의이고 개혁성이다. 잘못된 것을 보면 개혁하고 싶고, 말을 듣지 않으면 공격하고 싶은 본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쓰던, 칼럼을 쓰던 다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최백수는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성격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흩어본다.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본다.
    “저 책 한권 한권을 쓸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저 책으로 뒤틀리기 시작한 자신의 인생을 바로 잡고 싶었다. 저 책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싶었다.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출판 계약을 맺고 돌아오며 얼마나 기뻐했던가?
    꿈과 희망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책만 출판하면 세상이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았다. 최백수는 차마 책장에서 책을 끄집어 내지 못한다.

    지나간 세월이 울컥 치밀어 올라서다. 그렇게 가슴을 졸였으면 뭔가 변했어야 했다. 무엇이든 보상을 받았어야 했다. 그게 공평한 것이고, 그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최백수는 울컥 치미는 감정을 억제하고 책 한 권을 꺼내든다. 나쁜 신문이란 제목을 바라본다. 신문개혁을 위한 정책소설이란 부제도 음미해 본다. 한국의 언론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는 누구나 다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사회 비리를 고발하려고 신문을 만드는 것인데, 정작 신문사는 사회보다 더 썩었다. 그게 문제의 발단이다. 기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 신문사가 부지기수다.
    기자들은 밖에 나가서 공갈 치고, 사기 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의의 탈을 쓰고 강도와 같은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사실을 고발하려고 쓴 책이다.
    그게 바로 나쁜 신문이란 3권짜리 소설이다. 그래서 신문개혁을 위한 정책소설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책 세 권으로 한국의 언론환경을 혁신시켜 놓고 말겠다는 각오가 넘쳤던 책이다.
    최백수는 나쁜 신문이란 책의 뒤표지를 바라본다. 이 책을 쓴 동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위한 전략이었다.

     “신문에 나지 않는 신문 이야기란?”
    이 책을 사서 읽으면 신문에 나지 않는 신문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호기심이 부쩍 든다. 비록 자신이 쓴 책이라도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벌컥 호기심이 든다. 도대체 신문에 나지 않는 신문이야기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글을 읽는다.  
    “누워서 침을 뱉을 수 없는 참담한 이야기(신문인)
    후환이 두려워서 고백하지 못하는 이야기(공직자, 기업인 등)
    신문개혁의 당위성엔 공감하면서도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이유(정치인)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관망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독자) 실체적 경험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상술은 계속된다.
    “안기부 출신으로 신문사 논설실장을 역임한 작가의 예리한 시각으로 한국 신문의 실태와 문제점과 대책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한국 최초의 정책소설이다.”
    최백수는 옛날에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특히 안기부 출신이란 말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안기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은 세상 물정에 밝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다.

    순진한 판단이었다. 세상이 국정원 출신을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순진한 생각을 한 것이다. 도처에 국정원을 증오하고, 그곳 출신까지 미워하는 의식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한 말이다.
    세상이 얼마나 국정원을 미워하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들려온다. 최백수는 그 말을 들으며 얼굴을 붉힌다. (계속)